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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03. 2020

빨래를 개다가 울음이 터졌다.

아이 옷을 정리하는 매 순간

6살이 되었을 때 엄마가 사라졌다.


군인이었던 아빠는 늘 권위적이었고 사치가 심한 엄마는 집에 있기를 거부했다.

서로의 폭력에 지친 두 사람은 자식들에게 어떠한 말도 없이 각자의 길을 갔다.

아빠는 우리를 맡았고 엄마는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나는 커가면서 다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이 곁에 남겠다고.'




암 확진을 받은 후 제일 많이 걱정되는 건 아이였다. 이제 겨우 5살이 된 나의 아들.

나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말해왔다. "엄마가 지켜줄게."

진심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보호막을 내 아이는 갖게 해줄 거라고, 점점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아이가 언제나 피할 수 있는 보호막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아이의 6살은 나의 6살보다 훨씬 행복하고 안전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내 인생을 닮아가려고 한다. 하필 지금.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두려움과, 내 아이가 엄마 없는 고단한 삶을 살게 될까 봐 억장이 무너졌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음이 아파 가끔 넋을 놓더라도 일상까지 놓을 수는 없다. 나는 전업주부니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집안일을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설거지를 한 다음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렸다.

그 후 잘 마른빨래를 거실에 들고 와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하나씩 개켰다.

그러다 아이 옷이 나오는 순간, 나는 우윽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옷이 이렇게나 작은데, 크려면 멀었는데.'


아이 옷에 얼굴을 파묻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한참을 울었다.



'아이가 클 때마다 옷을 사줘야 하는데, 깨끗한 옷으로 입혀야 할 텐데, 거꾸로 입히면 안 될 텐데...'

많은 남편들이 그러하듯 우리 남편은 아이의 옷을 반대로 입히거나 더러운 옷과 깨끗한 옷을 구분하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없으면 아이가 옷을 어떻게 입을지 안 봐도 뻔했기에 아이의 옷만 보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작은 옷을 입는 아이를 두고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절대 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나를 위해 아이를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끝내 나도 그 매정한 엄마처럼 될까 봐 겁이 났다.


험난한 세상을 살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고 아이가 훗날 나를 원망할까 봐 피눈물이 나왔다.


옷 하나에 온갖 생각을 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 눈물로 인해 축축해진 빨래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 흑... 흑.. 이거 다시 빨아야겠네..... 어우우우우우... 윽..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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