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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02. 2020

왜 나야?

난 착하게 살았는데

어두컴컴한 방에 움츠리고 앉아 나는 그저 눈만 뜨고 있을 뿐다.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핸드폰으로 열심히 병원을 찾고 있었다. 서울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서울의 대형병원을 알아본다. 꾸준히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6시가 되자 예전에 친했던 언니에게서 랜만에 전화가 왔다. 이 언니는 내 상황을 모르는데. 무슨 일이지?

회사 다닐 때야 단짝이었지, 나는 지금 전업주부고 그녀는 아직도 회사원이다. 통화를 자주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언니 목소리가 그리워 이내 받았다.

웬일로 전화를 다 했냐며 나는 기분 좋게 물었고 언니는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회사에서 퇴근했어. 이게 정말 몇 달만칼퇴근인지 모르겠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너한테 전화하는 거야. 회사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

언니는 한참 동안 신나게 얘기했고  웃으며 호응했다. 하지만 점점 내 목소리는 가라앉았나 보다. 언니가 대뜸 물어왔다.

"오래간만에 전화했는데 목소리가 왜 그래?! 언니 안 보고 싶었구나! 근데 너 감기 걸렸어?"


언니의 질문을 듣고 난 잠시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할까말까... 하지만 숨길 자신도 없어서 '사실 오늘 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자기가 방금 뭘 한 건지 모르겠다며 자책했다. 암 진단받은 애한테 본인의 즐거운 하루를 나불거린 거냐고, 그걸 왜 듣고 있었냐며 나를 살짝 원망도 했다. 그리고 언니는 수차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나는 그렇게 언니의 행복한 순간을 깨버리고 말았다.




언니와의 통화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서울의 대형병원에 전화를 했다. 집에서는 꽤 먼 곳. 하지만 남편회사와는 가까워서 좋았고 무엇보다 의료인 친구가 추천한 곳이었다.

진료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오늘 암 진단을 받았다하니 내가 편한 날로 잡아주었다.


남편은 내게 타이르듯 말했다. 병원도 예약했으니 마음 편하게 기다리자고,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게 현실인지 조차 모르겠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나의 생각도 무참히 흘러갔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밤이 오자 내 마음도 밤이 되었고 갑자기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학창 시절 친구 한번 안 괴롭히고 남한테 민폐 안 끼치려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데!

아빠 빚 갚느라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며 돈 버는 기계로 살는데!

엄마 없이 고생만 하다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이제 아프다고? 죽을 수도 있다고?...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세상이 나한테 나쁜 짓을 한 거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이 세상에 나보다 훨씬 나쁜 사람 많은데 도대체 왜.. 왜 내가 아파야 하는 거냐고...


기가 막혔다.

누구에게든 욕을 퍼붓고 울고 매달리며 왜 하필 나냐고 따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잡아내어 당신 탓이라고, 내 인생 내놓으라고 따귀라도 수백 대 갈기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내 분노를, 슬픔을, 원망을 그 사람에게 떠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남편과 내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두 사람. 화를 낼 수도, 화를 내서도 안 되는 내 가족.


나는 조용히 안방으로 가서 문을 닫고 이불 두 겹을 뒤집어쓴 채 소리도 나지 않는 울분을 토해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온갖 것들을 원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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