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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ul 31. 2020

암환자가 되었다.

당황스럽게도 그러했다.

"암세포가 나왔어요."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은 철저하게 비워져 갔다. 

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내 표정은 누가 봐도 '나 지금 무슨 일 있어요.' 였을 거란 거다. 적어도 나를 바라보는 간호사들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보니 날씨가 흐리고 습했다. 덥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끈적였고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거리에 마냥 서있었고 누군가를 잠시 떠올렸으며 몇 번의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일단 걸었다. 집까지는 40분 거리.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남편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진료 봤는데... 암이래. 암세포가 나왔대."


그러자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암이래? 그렇구나... 치료하면 되지. 괜찮아. 병원 빨리 알아보자. 서울로 가는 게 낫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장 조퇴하고 집으로 갈 테니 조심히 들어가 있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걸음 뗄 때마다 땅이 나를 덮쳐 오는 듯했다. 이렇게는 못 걷겠는데, 뭐라도 생각하자. 

카톡을 보냈다. 그것도 단체 카톡방에. "나 암 이래." 

그 말에 친구들은 경악했고 한두 명씩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내가 전화를 받는 순간 통곡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그저 웃었다. 아니, 차라리 웃은 건가.

내가 울지 않으니 대신 친구가 울었다. 뭐야. 이러면 내가 너를 위로해야 하잖아.

그런 이유로 집에 가는 40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아. 괜찮을 거야."였다. 




왠지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집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지?

일부러 시끌벅적한 시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건강하구나.'라든지, '사실은 저 사람도 아픈 거 아닐까?' 하는 등의 잡생각만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지쳐가니 어찌하랴. 집으로 돌아가야지. 

현관을 열고 신발을 벗는데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공간. 우리 집이 원래 이랬었나.

습기를 머금은 마루를 지나 어두컴컴한 안방으로 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고 그제야 나는 내 현실과 맞닥뜨렸다. 


37세. 5살 아이의 엄마. 7년 차 전업주부. 그리고 또 하나의 타이틀이 생겼다.


암환자. 당황스럽게도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정신 차리고 보니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집으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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