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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ul 31. 2020

행복. 나락

그리고 입조심

봄날의 어느 아침,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아이를 시댁에 보낸 후 남편과 병원에 갔고 게실염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을 받았다.

‘맹장도 아니고 웬 게실염?’ 이런 생각을 하며 아픈 배를 움켜잡고 생뚱맞은 입원 하게 되었다.

슬프게도 게실염은 금식이 원칙이라 항생제와 수액만으로 버텼고 날이 갈수록 난 병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갔다. 그렇게 하기를 6일째. 드디어 교수님의 허락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시게 되니 정신이 멀쩡해졌다. 그제야 둘러보게 되는 병실 풍경.


옆 침대에는 내 또래의 환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암환자였다. 모자를 벗은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왠지 어려웠다. 그녀를 마주보는게.

드디어 내가 퇴원하던 날 그녀의 어린 딸이 문병을 왔다. 기껏해야 네다섯 살 정도,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다. 아이는 신나서 엄마품에 안겼고,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 어린 딸을 안고있는 암환자...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하지만 사람이란 남의 불행을 보며 내 행복을 찾는다 했던가.

나도 엄마 입장이라 그들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도. 정말 나쁘게도... 나는 그랬다.




퇴원 후 친구들과 통화할 때마다 나는 병원에서 본 그 모녀 이야기를 했다.

“요즘 정말 평탄해. 살아오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 병원에서 그 환자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깨달았어. 그러고보면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인거야. 가정적인 남편과 아이가 건강하게 잘 커가니 말이야. 에혀... 그 엄마는 애도 어리던데..어떡하냐."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도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고 다닐 때, 자궁경부암 검진을 했던 병원으로부터 내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참으로 느긋하게 병원에 갔다.

전화로 들은 검진 결과는 비정형 세포.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잘 쉬면 다음에 정상 나오겠지.' 그저 그런 생각으로 병원을 찾아갔고 심드렁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 후 초음파 검사에서 자궁 내막이 두껍다는 소견이 나오면서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자궁을 깨끗하게 청소합시다. 원추절제술과 소파술을 해서 진단 겸 치료를 같이 할 거예요."

그리고 나는 투덜거리면서 받아들였다.


그 후 시술 날짜가 정해졌는데 2018년 5월 5일, 너무나도 화창해서 입원한 게 후회됐던 5월의 어린이날이었다.

내 이틀간의 입원 기간 동안 남편은 아이와 어린이 날 행사에 다녔다. 둘이는 밤에 현란한 불꽃놀이도 봤다던데 자리를 잘 잡아서 불꽃이 잘 보였다며 아빠와 아들이 어찌나 자랑을 해대던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저 행복한 가족이었다. 무엇 하나 잘못되리라 의심하지 않는 완벽하게 행복한 가족.

난 웃으며 생각했다. 시술은 잘 끝났으니 앞으로 면역이나 키우면 되겠다고.


일주일 후, 병원에 소독을 하러 갔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갔건만... 들어간 진료실에서 7년간 날 진찰해 주시고 우리 아이도 받아 주신 의사 선생님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게 될 줄이야.


"어~ 왔어요? 어서 와요.... 잠시만. 잠깐 자료 좀 볼게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떨리는 눈동자로 나의 2012년 자료부터 정신없이 훑어보았고 잠시 후, 그분 특유의 온화한 말투로 "이번에 암세포가 나왔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멍해졌다. 어떠한 미동도 없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드라마에서 보면 머리가 윙윙 울리고 벽이 막 나돌아 다니고 의사 선생님 얼굴이 두개 세개로 겹쳐 보이던데 딱 그랬다. 뭐지? 이 당황스러운 기시감은.

선생님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설명해 주었고, 나는 끊임없이... 듣지 못했다. 그날 선생님 말은 허공에 맴돌 뿐이었다.

길고 긴 설명 끝에 선생님은 최대한 빨리 대학병원을 결정해 오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전이 여부 확인하고 수술하자고. 그리고 아직 초기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나는 멍하니 병원에서 나왔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병원 앞에서 문득 그녀를 떠올렸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내 또래의 암환자,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딸을 가진 그녀.

그 모녀가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던 내 모습까지.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녀를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었구나... 나였구나. 내가 암환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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