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니랄까 봐 날씨가 어찌나 화창한지.
거실 소파에 앉아 바라보는 베란다 밖의 세상은 환하고 환하고 환하고 환하다. 열린 창문 너머로 우리 집의 어두운 공기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창밖을 맴돌던 시원한 바람이 살짝살짝 들어와 널어놓은 빨래를 흔들고 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이 얼마나 봄 다운 날씨인가.
일주일 전이었다면 이런 날을 예찬하며 신나게 이불 빨래를 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 날씨가 빈정 상한다. 나는 너무 불행한데 날씨는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집에 처박혀서 암환자로 살고 있다는 게 미치도록 억울하다.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갈지 고민하는 단톡방 지인들의 대화를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누군가는 이 날씨가 참 좋겠네.'
그때부터였나 보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나는 평소 인복이 많은 편이었다. 부모님을 잘못 만난 것 빼고는. 대신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친구들은 정말 좋았다. 그런 인연들이 없었다면 그 험난한 인생을 어찌 버텼을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가족이 없다시피한 나는 친구들에게 참 많이 의지 했었다.
암환자가 되기 전까지는.
얼마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은 직후 당혹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단톡 방에 내 상황을 나불거렸었다.(나중에 후회하게 될 줄은 모른 채...)
때문에 꽤 여러 명의 지인들이 내가 암환자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위로의 연락이 왔다.
평소라면 나를 챙겨주는 그들에게 감동하고 고맙다 생각했을 거다, 분명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며칠 째 잠 한숨 못 자며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내게 그들의 위로는 그저 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위로는 끊임없이 나를 지치게 했다.
나는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싶었다. 단 1분이라도. 예전의 평온을 느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간을 떼놨다던 용궁 속 토끼처럼 내 기억을 떼내어 서랍 깊은 곳에 숨겨놓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두려움을 잊으려 온갖 노력을 했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찾아보기도 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미친 척 웃어도 보았다.
통곡을 하다가도 뜬금없이 "난 살 거야!!! 살거라고!!"를 외치며 분발했고 남편과 아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 또 왜 저래..."라고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나는 그렇게 하루에 수십 번씩 다중인격이 되어가며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 무진히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지인들의 문자가 오는 순간 그런 노력 따위는 와르르 무너졌다.
"괜찮아? 몸 좀 어때?"
이 짧은 문구는 나를 다시 암환자로 되돌려놓았고 잊으려 했던 두려운 사실을 상기시켰다.
불안에 삼켜지지 않으려 내 영혼의 머리채를 간신히 잡고 있던 내게,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나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괜찮냐고?... 글쎄...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주위는 다시 어두워지고 고요해진다.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나는 마음속으로 쉼 없이 외쳤다
'괜찮지 않아. 생각하기 싫어... 물어보지 마. 그냥 날 좀 내버려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