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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18. 2020

암이라는 섬에 갇히다

단절

"우리 애가 밥을 잘 안 먹어. 뭘 줘야 살이 찔까?"


"어제 놀이터에서 00가 다른 애들이랑 잘 못 놀더라. 사회성을 어떻게 키워줘야 하나.."


"다음 주에 남편 휴가인데 국내로 갈지 해외로 갈지 고민 중이야"


...

...


나는 지금 애 두고 죽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참 사소한 고민을 하는구나.




불과 2주 전만 해도 나는 사람들과 섞여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앞사람, 옆사람과 눈을 맞추며 정치, 사회, 연예인, 육아 등 온갖 주제로 신나게 내 마음을 떠들어댔었다.

다들 주부로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심지어 얘기도 잘 통했다. 누군가의 말에 박수를 쳐가며 격하게 공감했고 마치 내가 겪는 일인 양 고민하며 함께 방법을 찾았다.


모인 사람 대부분이 엄마들인지라 대화의 마무리는 항상 아이들 문제였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늘 진지했다.

아이가 너무 안 먹는다, 존댓말을 안 한다, 친구들과 못 어울린다... 이 모든 것이 엄마들에겐 걱정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고 그들이 하는 고민이, 그리고 내가 하는 고민이 사소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은 이후, 나는 그 모든 것이 하찮아졌다.

매일매일 해왔던 숱한 고민들이 너무도 사소하게 여겨졌다. 다 부질없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고민들이 뭐라고.


나는 이제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소소한 고민에 동참할 수 없다.

아이가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친구가 많든 적든, 한글을 읽든 안 읽든 상관없다.

이런 고민 같은 거... 참 우습다.




나는 절대로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고민을 갖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는 엄마 없는 아이가 되겠지...'

'훗날 아이가 나를 기억하려나.'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엄마 없는 삶을 잘 버틸 수 있을까.'

...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볼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하지만 그게 끝인 상상. 현실적으로 와 닿는 슬픔도 걱정도 없는 1차원적인 상상.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다고 쿨하게 말하면서도 막상 본인에게 일찍 죽을 거라 예언하면 찝찝해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상상들이 내게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현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처지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걱정을 왜 해. 쓸데없는 걱정 말고 니 몸이나 챙겨."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는 사람과 그런 말에 전혀 위로받지 못하는 나. 


그렇게 그들은 일상이라는 무지갯빛 세상에 남았고, 나는 암이라는 섬에 갇혔다.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서로의 말을 듣지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그들과 같은 것을 볼 수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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