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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21. 2020

교수님과의 첫 만남(1)

내 상태를 알려주오

암 확진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 드디어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참 지독한 시간이었다. 내 모습이 좀비처럼 느껴졌던... 내게 그 일주일은 7년과도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서울에 가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기 전, 아침 일찍 동네 병원에 들렀다. 내게 암 진단을 내린 곳.

일주일만에 본 의사 선생님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내게 잘 지냈냐 물었다.

나는 짧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네.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치료할 병원으로 생각해 놓은 곳이 있냐고 또다시 물어왔다.

서울 아산병원에 진료 예약해놨다고, 오늘 000 교수님께 진료 보러 가는 날이라고 말하니 의사는 반색하며 말했다.

"아~~~ 저 그 교수님 알아요! 저도 예전에 그 교수님 강의를 몇 번 들었는데? 실력이 정말 좋으시고~ 의사들이 생각하는 의사 중에 의사시죠. 정말 선택 잘하셨어요. 앞으로 그분께 치료 잘 받으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항상 온화했던 선생님이 갑자기 몸을 들썩이며 그리 반가워하시다니, 덕분에 왠지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산병원 이야기가 끝난 후 의사 선생님은 내게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수술할 당시엔 괜찮아 보였는데 조직검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와서 좀 의외였다, 보기엔 초기 같은데 암세포가 나온 곳이 애매하니 정확하지는 않다...

게다가 세포 성질이 좋지 않은 선암이니 최대한 없애야 한다고.

그러니 자궁은 살릴 수 없다고.

 

담담하게 자궁을 살릴 수는 없는건지 다시 물어봤지만 선생님은 단호했다.

"안돼요. 선암이 나왔으니 자궁은 없애야 합니다. 아이가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하겠지만 뭐 이미 아이는 있으니까 그게 제일 안전해요."


나는 각오하고 있던 터라 담담히 설명을 들었고 의사 선생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치료 잘 받으시고 나중에 우리 건강하게 봅시다!"


의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연신 해대며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뒤따라 나온 간호사는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라며 내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아산병원에 가져가야 할 자료들이었다.




병원에서 나오니 봄비인지 여름비인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후로 아산병원에 갈 때마다 비가 왔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으니 힘이 쫙 빠진다. 난 오늘 무슨 얘기를 듣게 될까.


남편은 차가 막힐 것 같다며 전철을 타고 가자 말했고 우리는 잠시 후 다시 집을 나갔다.

나와 남편은 전철 안에 앉아 두툼한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간호사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내용 한번 볼까"

봉투를 조심히 열어보니 안에는 검사결과지, 의무기록지, 조직 슬라이드 셀 블록 등이 들어있었다.

고진 선처 부탁드린다고 써져있는 의사 선생님의 진료의뢰서도 함께.


그런데 그곳에 써져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어찌나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던지...

'그렇구나... 악성 신생물이 암이구나. 악성 신생물... 다시는 이 글자 보고 싶지 않다...'




처음 가본 아산병원은 정말 컸다. 내 선택이 아주 좋았다고 느껴질 만큼.


먼저 동네 병원에서 가져온 두툼한 자료들을 접수한 후 간단만 문진을 하고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로 들어갔다.

내가 만나게 될 교수님은 환자들이 정말 많았는데 때문에 예약을 했어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긴 시간동안 진료실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앞을 보고있던 나를 남편이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자기야. 숨 쉬어! 숨! 너 지금 숨 안 쉬잖아. 왜 그렇게 긴장해. 얼굴이 하얘~"

"아... 어. 내가 숨을 안 쉬었나. 아~ 너무 떨려. 심장이 멈출 것 같아. 어떡하지."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계속 멈췄고 긴장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손에 있는 진료카드를 꼬옥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싶을 때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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