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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24. 2020

교수님과의 첫 만남(2)

중증환자 등록하세요

"어떡해! 내 차례야!"


진료실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어찌나 긴장했던지 손에 가 날 정도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간호사에게 가서 진료카드를 주고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 앞에 앉았다.


남편과 내가 인사하자 "네.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교수님은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아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네. 아이 한 명 있습니다."

"앞으로 출산 계획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네. 그럼~뭐.... 됐네요"

"암... 인 거죠?"

"네. 이미 암세포가 나와서..."

"상태가..."

"글쎄요~ 좋은 건 아니죠.. 일단 검사를 해보고 다시 봅시다."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간 후 교수님은 내게 짧은 설명을 하며 정밀검사부터 받아보자고 했다.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져간 자료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했고 암환자라는 것만 다시금 깨달았다.

다만, 오고 간 답변으로 한 가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출산 계획 묻는거 보니 자궁의 필요성을 보는 거구나.'


진료실을 나서자 간호사 한 명이 따라 나오며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하나님. 앞으로 정밀검사 받으셔야 하는데요, 검사 종류가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음~ 그래야 검사도 빨리 할 수 있고 결과도 바로 받을 수 있어요. 보통은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입원하시는데 검사가 빨리 끝나면 예정보다 일찍 퇴원하실 수도 있고요. 일단 오늘은 입원날짜 최대한 빠른 날로 정하셔서 예약하시고 중증환자 등록도 하셔야 해요."


"아... 입원해야 되는구나.. 근데 중증환자 등록이요?... 제가요?"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입원해야 하는 것도 심란한데 중증환자... 중증환자라... 내가?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경황이 없었다. 문득문득 남편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를 다니며 무언가를 열심히 한 것 같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나는 산정특례 등록 신청서를 받고 있었다.

 

'아~ 이거 하기 싫은데... 아프지도 않은데. 나 중증환자 아닌데...'

때문에 그 종이를 받으며 이렇게 물어봤던 것 같다.


"이거... 꼭 해야 하나요? 지금?"


이런 내 얼굴과 내 질문을 받은 직원은 모든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 살포시 웃었고 산정특례의 필요성에 대해서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렇게 정식으로 (절대 하기 싫었던)중증환자가 되었다.


암환자라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과, 당신 암환자라고 도장을 쾅쾅 찍어주는 것은...

무게감이 참 다르다.




입원 날은 3일 뒤로 정해졌다.

아산병원은 병실이 항상 부족해서 3일 뒤에 입원하는 것도 운이 좋은 것이라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가 입원하는 것에 대해 설명할 시간도 생겼으니 나름 다행이었다.


집에 가서 아이를 조금 더 안아주고 와야지.

집에 가면 아이와 이불을 펴놓고 밤새 이야기해야지.

집에 가면...


집에 가면 남은 3일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남편과 아산병원 지하 푸드코트에 앉아 시켜놓은 돈가스를 쳐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오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 3일을 어떻게 버티지? 3일 뒤에 검사받아야 하는데 많이 아프겠지?.. 무슨 검사받으려나. 결과 안 좋으면 어떡하지. 불안해... 근데 애랑 3일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하지?..."


그러나 남편은 마치 내 질문 따위는 듣지 못한 것처럼 대답했다.

"자기야. 이거 돈가스 진짜 맛있다. 빨리 먹어봐. 여기 돈가스 잘하네~"


...

가만히 남편의 얼굴을 몇 초간 쳐다본 나는 이내 돈가스를 먹었고 또다시 머릿속에 생각을 가득 채워 넣었다.




집으로 가는 길.

비가 많이 내렸다. 그것도 아주 거센 비가.

우산 쓰는 게 의미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이 내리는 비에 바지와 신발은 다 젖었고 걸을 때마다 신발 안에 차있는 빗물이 참방참방 소리를 냈다.


비 맞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인데.

비 오는 날은 집 밖에 안 나가는 나인데.


그 날은 마음에서 워낙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내 몸에 내리는 비는 별 것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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