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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26. 2020

입원하는 날

즐거운 가요고 나발이고.

아산병원을 다녀온 후 3일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의 짐을 시댁에 보냈고 어린이집에도 연락을 해놨고 내 짐도 싸놓고 집 청소도 완벽하게 해 놓았다. 

물론 중간중간 많은 감정싸움은 있었다. 내적 갈등이랄까.

아이 옷을 정리하면서 오열도 하고, 청소를 하다가도 내가 무슨 가정부도 아닌데 이래야 하냐며 화도 냈다가, 이겨내야 해 이깟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싸이 노래를 틀고 신나게 따라 부르다가 다시 쓰러져 울기도 했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정신으로 살다 보니 어느새 3일이 지나갔다.

이렇게 금방 올 줄이야. 


'결국 입원하는 날이 오는구나.'

 



아침을 먹은 후 아이를 시댁에 보내기 위해 챙겨놓았던 옷을 입혔다. 그리고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금방 갔다 올게, 할머니 집에서 잘 놀고 있어~ 엄마 보고 싶으면 영상 통화해. 엄마도 자주 연락할게."


5살 아이는 할머니 집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싱글생글이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엄마 뱃속에 나쁜 세균이 있어서 검사하러 간다고... 그리 말해줬을 뿐이었다.

(그때, 힘들었던 내 마음만 신경 쓰느라 아이의 감정에 소홀했던 것이 나중에 엄청난 아픔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준 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친정이 서울이라 자주 가던 길인데도 왜 그리 낯설은지, 길게 펼쳐진 도로가 야속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남편이 음악을 틀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냐며 인기 가요를 틀었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아니~ 왜 하필 이 노래야..

난 그 즐거운 음악을 듣는 순간 눈물이 팡 터졌고 남편은 이 노래를 듣고 왜 우냐며 진심으로 황당해했다.


"이 노래 너무 슬프잖아... 사랑을 했대.. 근데 추억이 됐대... 어떡해. 내가... 내가 아이한테 추억이 되면 어떡하지... 으으으으......"라고 말하며 나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 뒤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듯했다.




차에서 한 시간은 울고, 두 시간은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느덧 아산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에서 쓸 생필품이 가득 든 가방을 껴안고, 나와 남편은 접수처 앞에 앉았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받을 검사들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우리 번호가 되자 잔뜩 긴장해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내게 돌아오며 말했다.

"1인실밖에 없다는데 나중에 병실 생기면 다인실로 옮길 수 있대. 일단 병실로 올라가자"


신관 7층. 

병동으로 올라가 보니 무언가 분위기가 엄숙했다. 조용한 병동. 복도에 나와있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고 불빛이 환하긴 했지만 분위기는 어두웠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곳은 부인과 병동으로 암환자들이 많이 입원하는 곳이었다. 

 

병실 배정을 받고 남편과 함께 복도 끝 1인실에 들어가니 꽤 넓고 쾌적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 비해 두배가 넘는 병실료는 꽤나 부담이었지만 폭신한 침대에 앉은 남편은 "어쩌겠어~"라는 말을 날리며 1인실을 즐기라고 했다. 

그 후 드르륵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활짝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 환자복을 가지런히 올려놓으며 말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이따가 몸무게랑 체중 잴 거예요. 그리고 환자분 문진 한번 더 해야 하니까 병실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한 간호사는 옅지만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아산병원은 간호사를 인성으로 뽑나... 너무도 이쁘고 친절한 간호사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린 나는 창가로 가서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아산에 왔구나...'라고 중얼거리면서. 


잠시 후 남편이 나를 재촉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잖아. 빨리 갈아입어~ 간호사님 금방 오실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 싫어! 천천히 입을 거야. 환자복 입으면 진짜 환자 된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20여 분간 환자복 가지고 남편과 실랑이를 하다 결국 나는 환복을 했고 그때부터 괜히 몸이 지쳐갔다.

혼자 축 쳐져서 침대에 앉아있노라니 남편이 삐죽 웃으며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너 지금 환자 아니거든? 몸에 바늘 하나 안 꽂혀 있으면서 환자 흉내 내기는..."


나는 순간 남편을 째려봤지만 말씨름 할 기운도 없어서 고개를 돌렸고, 그때 병실 문이 다시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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