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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06. 2020

아빠와 블루베리

간절한 마음

내가 어릴 때 아빠는 군인이었다. 집보다 부대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직업 군인.


가끔은 지휘봉을 들고 tv에 나오기도 했고 지역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부대를 이끌고 출동하기도 했다.


아빠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했고 만족했다. 그리고 아꼈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그러나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모든 것은 변했다. 아빠는 엄마를 잡겠다며 전국을 헤맸고 끝내 군생활을 버렸다. 그 사이 언니와 나는 친척집을 전전했다. 아빠가 돌아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다.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고 종종 욕을 했고 가끔은 때렸다. 나와 언니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빠는 지인들이 연결해준 기업들을 마다하고 막노동을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빚은 점점 늘어갔고 우리 집은 가난했다. 언니와 나는 항상 굶으며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닌 기억이 없다.


언니와 나는 성인이 되면서 죽어라 일했다. 우리는 대기업에 다니며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하찮았다. 우리의 월급은 고스란히 아빠 빚 갚는데 들어갔다.

아빠에게 지친 언니는 도망치듯 해외로 떠났고, 나는 오랜 시간 혼자서 아빠를 감당해야 했다.

유약해진 아빠가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갔을 때도, 겨우 마련한 집이 경매에 넘어가 텅 비었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결혼하면 달라질 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아빠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하지만 결혼한 후에도 아빠는 조심스레 돈 얘기를 꺼냈고 지친 나는 모든 것을 놓았다. 아빠에게 화가 나서 문자를 보낸 날... 그 날을... 나는 아직도 많이 후회하고 있다.


"아빠. 이제 그만 좀 해. 이제 좀 알아서 살아. 나는 아빠 때문에 죽을 것 같아. 내가 암에 걸려 죽으면 그건 다 아빠 때문일 거야. 그러니까 연락하지 마. 나 좀 살자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1 후쯤...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수술하고 4일째.

남편은 회사를 가야 했다. 나는 혼자 일어설 수 있었고 걸을 수 있었지만 5분만 걸어도 눈앞이 핑 돌았기에 옆에 누군가는 있어야 했다.

마음이 급해져 간병을 하기로 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언제 올거야? 남편 이제 가야 돼. 나 혼자 못 걸어. 어디야!! 빨리 와~"

"알았어! 알았어! 지금 병원 앞이야. 금방 올라갈게. 니 남편 빨리 출근하라 해. 아빠 금방 도착하니까."


그런데 아빠 목소리에는 뭔가 즐거움이 있었다. 

1년 동안 보지 못했던 딸의 보호자가 된 것이 기쁜 걸까? 내가 어린아이처럼 재촉해서 뿌듯했나...


남편은 급하게 올라온 아빠에게 인사를 한 후 병실을 나갔다. 남편 대신 나를 맡은 아빠는 내게 물었다.

"자~ 아빠 이제 뭐 어떻게 하면 되나? 다리 주물러 줄까? 뭐 먹고 싶은 거는 없어?"

나는 그런 아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소파에 편하게 앉아있으라고 했다. 누워서 잠이라도 자라고.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말하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병실이 낯설었는지 보호자용 소파에 눕지 않았다.


그 날 나는 물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빠는 내게 밥을 먹이기 위해 식판을 들이밀고 숟가락을 떠주고 잔소리도 해댔지만 나는 끝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다음날, 아빠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다. 갈아입을 옷이나 생필품을 갖고 왔나 싶었는데 내 병상 테이블을 열더니 쇼핑백에 담긴 것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초콜릿, 바나나, 으깬 감자, 복숭아통조림, 마늘장아찌, 블루베리, 김치, 컵라면... 커다란 쇼핑백에는 온갖 먹을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말했다.

"니가 어릴 때 좋아했던 거잖아. 아프면 맨날 바나나랑 복숭아통조림 사달라고 했었는데. 이건 좀 먹을 수 있으려나? 에휴... 여기 있는 거 뭐 하나라도 먹었으면 좋겠구만..."



하하...





나는 그저 웃었다. 아빠를 보며 그냥, 그렇게 웃었다. 하하...



아빠는 으깬 감자의 뚜껑을 따고 복숭아통조림의 국물을 컵에 따른 뒤 초콜릿의 포장을 벗겨서 내 앞에 펼쳐놨다. 한 모금이라도 마셔보라고. 옛날엔 돈이 없어서 자주 못 사줬지만 지금은 사줄 수 있다고. 그러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하라고...

 

...

한참 동안 그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아빠. 마늘장아찌는 왜 갖고 왔어? 나 이거 안 먹어~ 으깬 감자도 안 먹고."

"입맛 없을 때는 장아찌가 최고야. 한 개만 먹어봐, 입맛이 확 돌지. 그리고 감자를 왜 안 먹어. 이건 으깬 거라 씹을 필요도 없는데."



아쉽게도 아빠가 갖고 온 것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복숭아는 입에도 못 댔고 바나나는 보기도 싫었다. 다른 음식들도 쇼핑백에 도로 넣어놨다. 하지만 그중에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바로 블루베리였다. 냄새도 나지 않고 알맹이도 작아서 한번 씹어볼 만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노려보다가 블루베리 한 개를 손으로 대충 닦아 입에 넣었다.

괜찮았다. 한 개를 더 닦아 입에 넣었다. 이번에도 괜찮았다. 신기했다. 울렁거리지 않는 것이.

아빠에게 블루베리 한통을 씻어달라고 했다. 아빠는 벌떡 일어나 "그래, 그래!" 하면서 재빠르게 씻어왔다.


그 날 나는 블루베리 한통과 초콜릿 반 조각을 먹었다. 수술 후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이었다.

초콜릿을 물고 있는 나를 본 전공의는 매우 반가워하며 칭찬해주었다.

"일하나님~ 이제 드실 수 있어요? 잘하셨어요. 초콜릿이라도 드세요. 뭘 먹든 상관없어요. 지금은 좋은 거 나쁜 거 가리지 말고 먹을 수 있는 건 무조건 드세요!"






그 날 이후 나는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여름밤이면 옥상에 언니와 나를 올려준 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오던 아빠의 모습을.

유성우를 보고 싶다는 우리를 위해 늦은 밤 어두운 시골길을 운전했던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가 잠든 후, 방 한편에서 흐느끼고 있었던 아빠의 모습을.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에 좋은 추억까지 버렸던 나는, 그 날 이후 천천히 찾기로 했다.

내 어린 날의 좋은 기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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