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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03. 2020

일부러 안 먹는 게 아니야.

못 먹는 거지...

수술 후 내 몸에는 항생제와 수액, 무통주사가 주렁주렁 달렸다. 게다가 소변줄과 배액관 줄도 있었기에 한번 움직이려면 많은 줄들을 정리해야 했다. 

한 손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다. 때문에 간호사가 왔을 때 무통주사를 빼 달라 요청했고 간호사는 거의 줄지 않은 주사통을 보며 "몇 번 안 누르셨네요? 지금쯤 다 떨어졌어야 하는데... 아픈 거 잘 참으시나 보다."라고 말한 뒤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아플 때는 아프다고 꼭 말씀하세요~ 참는 게 좋은 건 아니니까 불편한 곳 생기면 말씀해 주셔도 돼요~ 요즘엔 약이 좋아서 아픈 거 참으실 필요가 없어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해드리니까 참지 마세요. 아셨죠?"


난 그때 그 간호사의 말에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아~ 아프면 말해도 되는구나. 말해야 하는 거구나. 아프면 정신력으로 참는 거라고, 늘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래서 웬만한 고통에는 아프다 말하지 않았는데. 여기선 아이처럼 다 말해도 되는 거구나.


그 날은 왠지 보호받는 기분이 들어서 머쓱하기도 하고 속도 간지러운 것이, 살짝 부끄러웠다.






수술이 끝나고 이틀 정도가 지나자 울렁거림이 심해졌다. 무통주사를 뺐는데도 계속 울렁거리다니. '이상하다. 무통이 아니면 속이 울렁거릴게 뭐가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링거대를 올려본 순간...

아!.. 망했다. 이번 입원은 망했구나 싶었다.


후라질.

바로 항생제 후라질이 링거대에 걸려있었다.

그 항생제는 내가 아는 약물이었다. 세 달 전쯤... 게실염에 걸려 일주일간 입원해 있을 때 투여받은 항생제다. 게실염 치료 때는 물 포함 금식이라 6일 동안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았다. 오로지 수액과 항생제로만 버텼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구토를 해댔고 그로 인해 구토방지제를 투여받았다. 그렇게 항생제 후라질을 맞는 내내 구토방지제, 진정제, 수액을 같이 맞았어야 했다. 게다가 그 항생제의 혈관통으로 인해 어떤 진정제를 맞았을 때는 쇼크가 와서 잠시 기절도 했었다. 그 날 이후 의료진은 내 팔목에 '절대 금지 약물'을 표기하는 빨간색 팔찌를 부착했다.


때문에 여러모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항생제였다. 


우라질 같은 후라질... 그렇게 불렀었다. 이런 우라질 같은 항생제 후라질... 내가 너를 다시 만나나 보자! 했었는데. 다시 만났다. 고개만 들어도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나는 후라질에 심한 구토 부작용이 있음을 전공의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체할만한 항생제가 없으니 참아야 한다고 했다. 구토가 심하면 효과 좋은 구토방지제 약물을 처방해 주겠다고.


날이 갈수록 울렁거림은 더 심해졌다. 물 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올라왔는데, 속을 훑고 올라오는 구토의 통증은 예상치 못한 아픔이었다. 온갖 칼들이 배에서부터 모든 장기를 훑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서부터 결장을 지나 신장을 지나고 식도에 닿을 때까지, 칼은 멈추지 않고 올라왔다. 음식을 먹다가 사레에 들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침을 하는 순간 몸 안의 모든 장기들이 공격을 받는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배를 움켜잡고 소리 없는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너무 아파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수술 전, 다른 환자가 내게 말해준 것이 그제야 떠올랐다. '수술 후에 기침은 절대 하지 마. 나오면 무조건 참아.'

아~ 이런 뜻이었구나. 그래서 기침은 하지 말라고 한 거구나. 이렇게 아픈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해주지...




물만 마셔도 구토가 나왔다. 억지로 먹다 보니 사레에 들렸다. 반복되는 아픔 속에 음식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링거를 맞고 있으니 탈진될 일은 없을 거라고, 먹을 때마다 아픔을 겪느니 그냥 굶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링거 덕분인지 아픔 때문인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굶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니었다.

암확진을 받은 이후 나는 급격히 살이 빠져 44킬로그램을 겨우 유지했고 그래서였는지 남편은 내가 먹는 것에 예민했다. 의료진 또한 병실에 올 때면 "퇴원하면 살 좀 찌우세요. 지금 몸무게는 너무 적어요."라고 말한 탓에 남편은 내 섭식에 갈수록 예민해져만 갔다.


어느 날, 숟가락을 든 채 식판을 쳐다만 보고 있던 내게 남편은 차갑게 말했다.

"안 먹어? 죽을 거야? 안 먹고 죽을 거냐고. 그 어려운 수술 다 받아놓고 굶어서 죽을 거냐고. 한 숟가락이라도 좀 먹어야 될 거 아냐. 오늘은 무조건 먹어. 조금이라도 먹어."


남편의 모진 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군들 작정하고 안 먹겠는가... 정말 먹을 수 없는 것을. 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만 봐도, 멀건 국물 냄새만 맡아도 숟가락을 든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나 남편의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밥그릇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안에 가져가 천천히, 삼키지도 못하고 아주 천천히 백번이고 이백번이고 씹고 또 씹었다. 씹는 동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면 어김없이 구역질이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다 씹은 음식을 삼키고 나서는 조용히... 아래로 완전히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한 입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보면 남편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리고는 말했다.

"더 먹어. 누구는 없어서 못 먹는 밥이야. 아프리카 애들은 맨날 굶어. 그러니까 남기지 말고 몇 시간이 걸려도 다 먹어."


그렇게 식사 시간 내내 남편의 눈치를 보며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지만 내가 그토록 노력하며 먹는 양은 겨우 세 숟가락 정도였다.




몇 번의 식사시간을 겪고, 병원 밥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편은 음식을 포장해오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사오기도 하고 과일이나 수프 등을 갖고 오기도 했다. 맛집이라는데 한번 먹어보라고, 평소에 네가 좋아하는 거라 가져왔다고...

하지만 난 모든 음식들을 거부했고 자기가 사 온 음식조차 먹지 않는 내게 남편은 많은 불만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거칠게 다시 포장해 밖으로 가지고 나가곤 했다.


나는 남편이 그것들을 어디로 가지고 가는지 알고 있었다.

남편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옥외 휴게소를 좋아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어김없이 그곳에 가서 열을 식히곤 했다. 모양이 망가진 음식들을 휴게소 테이블에 펼쳐놓고 혼자 먹었을 것이다. 내게 난 화를 식히면서.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병실에 들어와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저기 야외휴게소에서 밥 먹으면 진짜 뭐든 맛있어. 한강도 다 보이고 날도 따뜻해. 자기 나가도 안 추울걸? 다음엔 같이 나가서 먹어보자. 안에서 먹는 것보단 훨씬 좋을 거야. 울렁거림도 덜 할 거고."


그런 남편에게 나는 그저 "그래. 그러자."라고 말했다. 




그래. 그러자...

언젠가 나가서 먹어보자. 한강도 바라보고 따뜻한 바람도 즐기면서 당신이 사 온 거 한번 먹어보자.


근데 나 정말 일부러 안 먹는 거 아냐. 못 먹는 거지.

그러니 먹으라고 화내지 말고, 재촉하지 말고...

좀 기다려주라. 내가 내 속에 적응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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