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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28. 2020

일어나기도 힘든데 문병을 왜요.

쉬고 싶어요. 몸도 마음도.

수술한 다음날 이른 오전.


침대를 움직여 앉을 때도, 다리를 바닥으로 내려놓을 때도, 남편의 팔을 붙잡고 일어설 때도... 너무 아팠다.

그 고통은 찰나의 순간 숨을 참게 만들었고, 나를 앉지도 걷지도 못하게 했다.

역시 안되겠다며 오늘 운동은 포기한다고 남편에게 선언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전공의가 들어왔다.  


"일하나님! 어? 운동하시려고요? 잘하셨어요~ 근데 오늘은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되고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아직은 많이 아프실 거니까. 음... 우리 어제 수술한거 말씀드릴게요. 일단 수술은 잘 끝났어요~ 지금 제거한 게 자궁, 양쪽 난관, 자궁경부, 대망, 림프 몇 개 뗐고, 그리고 난소는 위로 올렸어요. 수술할 때 보니까 난소에 혹이 있어서 중간에 조직검사를 보냈거든요. 근데 다행히 양성이더라고요. 뭐 안 좋은 거면 난소도 뗐을 텐데 양성이라서 떼지는 않고 대신 방사선 치료할 경우를 대비해서 위로 올려놨어요. 그걸 난소전위술 이라고 하는데,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난소가 방사선 범위에 들어가거든요. 그럼 난소 기능이 죽어요. 그래서 혹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할 경우에 대비해서 난소를 올려놓은 거고, 아예 제거한 건 아니니까 갱년기 증상이 심하게 오거나 그러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수술할 때 제거한 장기들은 작게 쪼개서 하나하나 조직검사 들어갈 거예요. 암이 더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검사 결과는 퇴원하실 때쯤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 네. 난소는 그럼 두 개 다 살아있는 거네요?"


"네. 다 달려있어요. 일하나님이 아직 젊으셔서 아무래도 난소가 있는 게 낫거든요. 그래서 떼진 않았는데... 난소 혹은 제거해도 재발하거나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꾸준히 보셔야 되고.. 일단은 이따가 교수님 오셔서 다시 말씀해 주실 거예요."


"네... 근데... 저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 허벅지는 꼬집어도 느낌이 없는데? 오른쪽은 그래도 좀 느껴지는데 왼쪽은 아예... 그리고 입술도 느낌이 없어요. 입술에 뭐가 닿아도 안 느껴져요. 이거 감각 돌아오는 거죠? 계속 이렇게 가는 거 아니죠?"


"아~ 다리는... 다리는 림프절을 제거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왼쪽 림프를 조금 많이 뗐거든요. 그래서 더 그럴 수도 있고. 그리고 수술할 때 계속 같은 자세로 있었기 때문에도 그렇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걷기 운동 많이 하세요. 그리고 입술? 입술은 왜 그러지?... 아~ 기도 삽관할 때 혀나 입술 깨물지 마시라고 저희가 보호기구를 껴놓거든요. 근데 그게 아마 입술을 누르고 있었나 봐요. 아무래도 몇 시간 동안 수술하다 보니까... 그것도 뭐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감각이 안 돌아오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아... 네. 제발 감각이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느낌이 너무 이상해요."


그리고 설마 안 돌아올까 봐 두려워요...




내 몸에서 자궁만 나간 게 아니었다. 자궁 주변에 있던 작고 큰 장기들이 함께 빠져나갔다. 자궁과 양쪽 나팔관, 자궁경부, 전이를 막기 위해 주변 대망을 걷어냈고 림프절은 19개를 떼내었다. 그리고 난소는 잘라내어 다른 곳에 붙여놓았다.

몇 시간 동안 몸에 구멍을 뚫어 몸 안의 장기들을 잘라내어 꺼냈다. 꺼내진 장기들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몸 안 여기저기를 꿰매었고 다시 몸 밖의 구멍들도 꿰매었다.

주변 장기들을 제거하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방광은 휴식을 위해 소변줄에 의존하고 있었고 구멍 한 곳은 길고 긴 배액관 호스를 가지런히 꽂아 놓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죽도록 아팠다. 그날 밤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이라 그랬던 걸까.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남편은 내 수술이 복강경이라는 것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시하기도 했다. 자기도 맹장 뗄 때 복강경으로 했다면서...

자기는 수술하고 반나절만에 일어나 걸었다면서 너도 빨리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는데 왜 자꾸 안 걷냐고.


그렇게 남편의 말에 어이없어할 때쯤 또 한 번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일이 생겼다.

바로 시댁 어른들의 방문. 어머님은 내가 암환자가 되었을 때 시댁 쪽 어른들에게 내 발병 사실을 알렸었다. 제사나 집안 경조사에 빠지지 않던 맏며느리의 부재가 입방아에 오를 것이 자명했기 때문. 그래서 웬만한 시댁 어른들은 내가 암환자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오늘? 나 수술한 지 하루도 안됐어. 오빠... 나 지금 못 움직여. 앉기도 힘들어. 이 상태에서 어떻게 시고모 할머님 문병을 받아~~ 다음에 오시라고 하면 안 돼? 오늘 꼭 오셔야 해?"


"지금 오시겠대. 너도 알잖아. 고모할머님 어떤지... 그냥~ 궁금해서 오시는 거야. 네네 하고만 있어. 금방 가실 거야."


"아... 나 진짜 오늘은 힘든데..."



결국 시고모할머님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한 시간도 안되어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을 한번 둘러본 그분은 아산은 처음 와본다며 병원이 참 좋다 감탄했고 병실 값을 궁금해했다. 그리고는 내 침대 옆에 앉아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해주었다.

의외였다. 제사 때마다 오셔서 내게 안 좋은 소리를 하던 분이었다. 결혼 당시 '엄마 없는 애는 티가 난다'며 예식장에서 내 흉을 보던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걱정을 해주시다니. 역시 나쁜 사람은 없구나 감동이었다. 나는 그 분을 잘못 생각했었음을 반성하면서 식은땀이 흐르는 통증에도 참고 또 참으며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그분의 마지막 말에 나는 다시금 상처를 받았다.


그분은 내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는 말했다.

"집에 우환이 있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챙겨. 이미 생긴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아~ 내가 우환이구나...


남편이 시고모할머님을 배웅해드린 후 병실에 돌아왔을 때 나는 피식 웃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우환이라는 거지? 그 말씀하려고 오신 거지?"


그러자 남편은 같이 웃으며 "아효~ 성격 알잖아. 원래 그러신 분이야. 그리고 뭐 우환은 우환이지, 아픈 거니까. 그냥 듣고 넘겨~ 신경 쓰지 마."라고 했다.




그 날, 오전엔 시고모할머님이 오후엔 시댁 다른 어른이... 평소에 나를 탐탁지 않아하던 두 분이 연달아 다녀가셨다.

결혼 초 "니 남편 고생시키려고 일 안 하냐? 집에서 노니까 좋니?"라고 내 눈을 보면서 물어보시던 할머님 두 분께서, 암에 걸렸다는 나를 보기 위해 굳이 먼길을 온 것이다.


애증이었을까? 아니면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 뭐 그런 거였을까.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병실에 다녀간 두 분은 내게 건강해야 한다며 계속 강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며, 잘 먹고 잘 낫어야 한다고...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한 분은 내 손을 잡으며 눈물도 흘렸다. 불쌍해서 어쩌냐고.

그리고는 또 말했다. 네가 아파서 남편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며, 네 시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냐며.

빨리 건강 찾아서 남편과 시부모님 잘 모셔야 하지 않겠냐고.


...

나를 걱정해 주심에 감사해야 하는데, 먼길 와주신 정성에 감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누가 말한 것처럼 몹쓸 병에 걸린 며느리의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려나. 어찌 됐든 난 마냥 감사해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분들 한마디에 감사해 몸 둘 바를 모르다가 한마디에 당혹스러워 얼굴이 화들짝 달아올랐다.

시댁 어른들께서 보여주신 눈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고 내가 걱정을 끼쳐드렸구나 죄송했다. 하지만 다른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왔다. 수술 다음날 굳이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 속상했다.




적어도 입원 기간 동안은, 너무 아픈 그 날은 좀 쉬고 싶었을 뿐인데.

어린 자식도 떼놓고 치료받겠다며 누워있는 시간...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내 몸에 충실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 안의 많은 장기가 떼어내진 아픔과 슬픔,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맞닥뜨린 시댁 어른의 방문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그냥 좀 쉬고 싶어. 앞으로 누구 문병도 받고 싶지 않아. 내 친구들한테는 병원도 안 알려줬어. 그러니까 오빠 쪽도 안 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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