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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21. 2020

이보게, 사위! 내 딸 아직도 수술 중인가?

친정 아빠의 초조함

아직은 어두운 병실 안,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집에서 출발한다고, 금방 가겠노라고.


반년 만에 받은 아빠의 전화였다.




아빠는 오전 7시가 다 되어 병실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손수건으로 한차례 얼굴을 훑던 아빠는 내 침대로 다가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남편에게로 다가가 두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우리 사위가 고생이 많구만. 이게 무슨... 참~나원..."


아빠는 계속 참나~ 하며 헛음을 지었지만 내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연락 없던 딸이 암환자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으니 기가 차기도 했을 거다. 그런 아빠에게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어 침대만 보고 있었다.


병실의 정적을 깬 것은 전날 내 다리 치수를 재간 의료진이었다. 압박스타킹을 손에 쥐고 들어온 활기찬 그녀는 수술 중 발이 부을 테니 지금 당장 착용하라고 했다. 혼자는 못 신으니 남편분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아빠는 천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스타킹을 뭘~ 도움까지 받아가며 신어야 하나 했지만 그래야 했다. 압박스타킹의 압박은 도저히 혼자 신을 수 없는 정도였다. 안 들어가는 스타킹을 낑낑 대며 신느라 남편과 내가 한차례 웃음을 터트렸더니 아빠가 웃으며 어슬렁어슬렁 병실로 들어왔다. 수술받는 놈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며 묻던 아빠는 내 압박스타킹을 보더니 다시 참나~ 하며 고개를 돌려 헛웃음을 지었다.




오전 8시 반. 이송 직원이 휠체어를 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일하나님. 수술실로 이동하실게요."

나는 휠체어에 올라앉았고 남편이 따라오려 했지만 직원이 말렸다. 문자로 진행상황 보내드리니까 병실에서 기다리시면 된다고. 나는 수술실까지 같이  싶었으나 다 큰 어른이 엄살인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남편과 아빠에게 다녀오겠노라고 짧은 인사만을 건넨 뒤 병실을 나왔다. 아빠와 남편도 "그래"라는 말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송 직원이 데려다준 곳엔 나 외에도 몇 명의 환자들이 있었다. 다들 연세가 많아 보였 젊은 내가 들어가니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이 싫어 나는 바닥만 쳐다보았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잘 가, 자궁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우리 아들 품어줘서 고맙고 지켜주지 못해미안. 이제 잘 쉬어~'


살짝 눈물이 날 때쯤 의료진 한 명 내 팔과 다리를 침대에 고정시켰고 한 명은 링거줄에 마취제를 연결했다. 그리고 한 명이 내 머리맡에 다가와 내 입과 코에 산소호흡기를 다. 료진들이 몇 마디 얘기를 하자 매캐한 냄새가 호흡기로 들어왔고 나는 완전히 잠들었다.



...

...

정신이  순간 아픔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 아픔일까 궁금했었는데 이런 아픔이구나. 딱 진통. 아이를 낳았을 때의 과 같았다. 진통이 최고조일 때의 아픔... 너무 아파 순간적으로 손과 발을 버둥거렸던 것 같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일하나님! 일하나님! 정신 드세요? 일하나님! 정신 차리세요~ 주무시면 안 돼요!" 

그리고는 아주 길고 두꺼운 무언가가 내 목구멍에서 쑤욱하고 빠져나갔다. 그것이 빠져나가자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도저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산소를 들이마시고 싶었지만 내 폐와 심장이 아주 작은 상자에 갇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이 막힌다는 공포에 헐떡 거리며 손을 내질렀다. "숨이 안 쉬어져요.숨이... 숨이 안 쉬어져요. 산소... 산소 주세요. 숨을 못 쉬겠어요. 숨 막혀요."

옆에 있던 여자는 내 손을 잡으며 강하게 말했다. "일하나님! 숨 쉬셔야 돼요. 계속 숨 쉬세요. 멈추시면 안 돼요. 숨 쉬세요! 숨 쉬셔야 돼요!"


...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채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오후 4시가 돼갈 즈음이었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병실에 들어가니 다다다 하며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도 숨을 잘 못 쉬었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옆에서는 간호사 몇 명의 분주한 목소리와 그들과 대화하는 남편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간신히 눈을 떠보니 아빠가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 이마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어릴 때 아빠가 내게 자주 해주던 행동이었다. 내가 아프거나 잠잘 때 아빠는 내 이마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었다.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계속 끙끙거렸고... 그러다 "너무 아파... 숨이 안 쉬어져..."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아빠는 그 말이라도 들은 것이 다행스럽다는 듯 크게 숨을 쉬며 "그래. 이제 됐다. 이제 됐어."라고 했다.


의료진들은 나를 절대 재워서는 안 된다고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기도 을 한 까닭에 폐가 쪼그라들어 있으니 숨 계속 쉬게 해야 한다고.

남편이 침대 옆에 달라붙어 나를 깨우는 동안 아빠는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무통주사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온전히 정신을 차렸고 여유가 생겼다. 숨도 제법 쉬어졌다. 이제 좀 살겠다고 웃으며 말하고 있으니 남편이 아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야. 아버님 오늘 아무것도 못 드셨어. 아까 커피 한잔 드셨는데 그것도 체하신 것 같던데? 소파에서 좀 쉬시라 했는데 앉지도 않으시고 계속 밖에 계시다가 수술 안 끝났냐고 계속 물어보시고, 무슨 수술을 이렇게 오래 하냐고 몇 번을 물어보시더라. 아버님 이제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




아빠는 아빠였다. 내가 아무리 미워한다 해도...

아빠는 아빠구나...

...

...

아빠는 나의 유년기를 불행하게, 나의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나의 청년기를 처참하게 만 사람이었다.


때로는 버리고 싶고 때로는 놓고 싶은... 하지만 버릴 수도, 놓을 수도 없었던.

아빠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버릴 수는 없으니 스스로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


하지만 내 이마를 쓰다듬던 아빠의 경직된 보고, 7시간 동안 앉지도 먹지도 못한 아빠를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빠는... 아빠구나. 워도... 아빠.

놓을 수 없겠구나...


남편과 얘기가 끝난 후 병실로 돌아온 아빠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 그동안 내가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 아빠가 고생 좀 해. 간병인 못 구해서 고민이었는데 잘됐네. 아빠가 내 간병 좀 해. 하루도 빠지면 안 돼. 나 못 움직이니까."


내 말을 들은 아빠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리 딸이 이제 좀 살아나는 것 같네. 알았어~ 그렇다면 아빠가 간병해줘야지. 나원참... 이 나이에 딸내미 병시중 들게 생겼구만! 아휴... 그나저나 이제야 좀 속이 풀린다. 아깐 명치가 어찌나 아프던지 말이야."


아빠는 이후에도 계속 투덜거렸지만 어쩐지 얼굴은 신나 보였고 병원에 가져올 것이 없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아빠와 나의 병원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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