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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29. 2020

아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두려움의 무게

내가 알고 있는 미혼 환우는 씩씩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오히려 후련하다며 앞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날에 대해 신나는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애가 있으나 없으나 힘든 건 매한가지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갖고 살아.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럼 되지!"


... 하지만 그게 내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도 그게 진심이었는지... 잘 모르겠고.




남편이 수술을 끝낸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아이가 없었으면 이 상황이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만약 아직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을 거라고.


하지만 난 남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있어서 더 무섭다고 했다. 차라리 아이가 없었다면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을 거라고. 언제가 죽을 몸... 조금 일찍 죽는다 해서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자 남편이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너 애 안 생겨서 엄청 스트레스받았던 거 생각해봐. 맨날 울고불고... 애 없었으면 너는 억울해서 못 견뎠을 거야."


남편의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지나온 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기에, 내가 얼마나 아이를 원했는지 기억이 났기에...


...

나는 폐결핵 환자였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결핵에 걸렸고 치료를 위해 1년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치료가 끝나고 독한 약의 성분이 남아있지 않을 때부터 나는 임신을 준비했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나는 병원을 다니며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너무도 당연스러울 줄 알았던 아이는 1년 가까이 생기지 않았다. 의사는 슬슬 난임 준비를 하자고 했다...


서글펐다. 아이가 없다는 것이.

친구들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그리고 한 달에 한번씩 터지는 생리를 볼 때면 난 늘 화장실에서 흐느껴 울곤 했다. 내 인생에 아기가 없던 시기... 나는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차라리 아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을 내뱉고 있으니 남편이 코웃음을 칠만도 했다.

아이를 기다리던 그 힘들었던 시간을, 아이가 생겼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하지 못한 채.

난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적의 일을 부정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또래 암환우들은 보통 세 부류로 나뉘었다.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혹은 미혼이거나.

같은 암환자지만 각자의 상황은 달랐고 서로의 생각도, 바람도 달랐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가진 것들을 되새겨 보고는 했다.

마치 불행의 무게를 재는 것처럼.


하루는 병원에서 아이가 없는 환우들과 아이가 있는 환우들이 모인 적이 있다.


아이가 없는 환우는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도 당신들은 아이가 있으니 다행이지 않냐고...

그러나 우리는 다행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 없이 자라게 될 아이를 생각하면 피조차 하얘질 것처럼 공포가 몰려왔으니까. 아이가 없다면 적어도 이런 공포는 느끼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우리의 침묵 속에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료실에서 자신의 엄마는 딸의 자궁을 없애야 한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빌었다고 했다. 교수님을 붙잡고 제발 임신만 되게 해 달라고, 어떤 식으로든 좋으니 아이만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울며 빌었다고 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보다 딸의 생명이 더 중요하지 않냐며 거절했고, 상심한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아이를 안겨주지 못하는 것이 평생 미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에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가 있으면 회복이 쉽지 않다'는 가벼운 대답만 건넸을 뿐, 정작 마음속 깊이 박혀있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나는 당신이 부럽다고'

우리는 아이가 있어서 끔찍한 두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겪어야 할 그 두려움이 무섭다고..

그러니 차라리 아이가 없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안도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이가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아이로 인한 공포를 지우지 못해 가슴 한편으로는 아이 없는 그녀를 부러워했을 테니까.


이렇듯 자신의 마음조차 정확히 몰랐던 우리는, 끝내 그녀에게 가슴속 깊은 두려움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서로의 상황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알지 못한 채, 내가 가진 상황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상황을 부러워하며 내 상황을 불안해하며.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두려움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그녀의 두려움보다 아이가 있는 나의 두려움이 더 무거웠을까.


과연 그녀의 공포는 나보다 가벼웠을까. 아니면 가벼워진 공포만큼의 무게를 다른 감정으로 채워 넣었을까. 


그래서 결국 우리들 두려움의 무게는 같았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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