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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Jun 24. 2021

집 구하기는 다시 원점으로

나는 누구인가

부동산 투어를 마무리하고 근처 카페에 가서 그날 본 집들에 대해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첫 번째 집은 신축이라 그런지 모든 게 좋아 보였다. 풀옵션이라 냉장고도, 세탁기도 전부 내가 처음 써 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좋았다. (두 번째 집은 생략한다.) 세 번째 집은 넓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창이 넓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런 환상적인 풍경은 아닐지라도

두 집 모두 괜찮았지만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는 창이 넓고 채광과 풍경이 좋은 집을 원했는데 이 날 봤던 집들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사실 이 동네 대부분이 빽빽한 빌라 골목이었기 때문에 맞은편엔 바로 다른 건물이 있어서 창이 커도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생활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하긴, 서울에서 탁 트인 풍경을 가진 원룸 찾기는 힘들겠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 타협하는 마음으로 내 로망은 접어두었다. 그 이상이 고작 '탁 트인 풍경'이라는 것이 조금 서럽고 아쉽긴 했지만.


금액적인 면에서도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금액의 상한선은 [보증금 1억, 월세 40만 원 안쪽의 전세/ 반전세]였다. 여기서 보증금은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의 연 1.2%라는 파격적인 금리를 통해 빌릴 계획이었으며 그렇다면 월 10만 원의 이자가 추가된다. 이렇게 낮은 금리로 보증금 대출을 받아도 월세와 관리비를 합치면 월 60만 원의 지출이 생기는 셈이었다.


물론 부담되는 금액이긴 하지만 나는 60만 원이 내가 얻게 될 자유에 비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월세뿐 아니라 생활비와 같은 고정적 지출이 더 추가되겠지만 오히려 아껴 산다면 독립 전보다 더 돈을 절약할 수도 있겠다는 낙천적인 생각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거의 매일 외식을 하거나 카페에 갔기 때문에 독립한다면 이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만, 같이 고민하던 다른 친구들은 집에 비해, 그리고 내 소득이나 상황에 비해 그 금액이 비싸다고 말했다. 생활비도 내가 대략적으로 추정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올 거라서 돈을 아끼거나 모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치열하게(?) 집을 선정하던 순간

그리고 선호하는 집도 사람마다 달랐다. 나는 아무래도 첫 번째 집이 신축이라 깨끗했고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하지만, 오히려 세 번째 집이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서 가구 배치를 참고하기도 좋고 살기 좋다는 반증이라 믿음직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당시 나는 한시라도 빠르게 독립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날 바로 집을 결정하고 싶었다. 부동산 투어는  번밖에  해봤는데도 생각할 것도, 재고 따질 것도 너무 많아서 이걸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조언들이  독립 의지를 가로막는  같아 예민해졌다.  하필 다들 듣고 보니 맞는 말만 해서  그래도 차고 넘치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시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그날 바로 집을 정해버리자는 계획은 철회했다. 우선 첫째로  집이 모두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고, 둘째로 여러 조언들을 조금  생각해보기로 했으며, 마지막으로 겨우   있는 선택지 중에서도 뭐가  좋은지  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독립에 대한 확신이 조금 흔들렸다.


나는 어떤 집을 얻고 싶어 하지? → 나는 왜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 내 생각이 틀린 거면 어쩌지? → 나는 왜 나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지? → 이런 마음으로 독립을 하는 게 맞나? → 내가 독립을 진짜로 원하는 게 맞나? → 나는 뭘 원하는 거지? → 나는 뭐지?


이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독립하려다가 갑자기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한 고민까지 피어오르니 참 헛웃음이 나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나에게 독립은 생존은 아니었지만 실존의 문제였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는데 집을 구하는 바쁜 와중에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내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에 봉착하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동네와 부동산을 정하느라 부동산 투어를 하기까지도 정말 힘이 들었다. 그래도 투어만 마치면 집을 바로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왜 독립을 하고 싶은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목표 바로 앞까지 갔다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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