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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Jun 22. 2021

인생 첫 부동산 투어

안녕하세요. 집을 좀 보려고 하는데요.

부동산에 연락할 때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문자로 먼저 보냈다.


"안녕하세요. 최근 계약한 B에게 소개받아 문자 드립니다. 전세 자금 대출 가능한 보증금 1억, 월세 40만 원 안쪽의 전세/ 반전세를 구하고 있습니다. O호선 근방 동네에 햇빛 잘 드는 깔끔한 곳이면 좋겠습니다. 주말에 방 보러 갈 수 있는데 가능할까요?"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안 되어서 답장이 왔다.


"토요일에 오세요."


토요일 2시로 시간을 잡고 부모님 집에서 1시간 반이 걸리는 동네로 갔다. 부동산 투어는 처음이라 집을   몰랐기 때문에 확인해야될 사항을 주변 친구들에게 꼼꼼히 물어보고 갔다. 집을 보러 간다고 부모님에게도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힘들 텐데 조심하라며 응원까지 해주었다.


부동산 중개인 분은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을 운영해온 할아버지셨다. 그분은 내가 말씀드린 조건에 맞게 여러 집을 찾아두셨고, 할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먼저 가장 근처인 첫 번째 집으로 향했다.

신축 티가 팍팍 났던 첫 번째 집 주방

첫 번째 집은 이 부동산을 소개해준 A의 집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빽빽한 골목 속 빌라라서 빛이 잘 들거나 풍경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깔끔한 분리형 원룸에 신축이라 내가 첫 입주자였다. 방 크기도 넉넉했고 작은 베란다 겸 세탁실도 따로 있었다. 2층이라 큰 필요는 없었으나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건물 보안도 잘 되어있었다. 내 집에 쏘오옥 맘에 드는 집이란 찾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집이었다. 다만, 가격이 괜찮지 않았다. 보증금 1억에 월세 44만 원, 관리비는 6만 원으로 보증금 외에 월 50만 원의 지출이 필요했다. 우선 신축이라 부담 없이 사진을 남기고 집에 대한 내용을 메모장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번째  보증금 7천만 원짜리 전셋집. 전세 7천만 원짜리 매물도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셔서 마침  번째  가격 부담이 있던 터라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부동산 어플에서도 보증금 1 미만의 집은  없던데 혹시 좋은 집을 싸게  구할  있는  아닐까 설레기도 했다.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집은 신축 빌라였던  번째 집에 비해  낡은 빌라였다. CCTV 대문 비밀 번호  현관 보안 장치도 없었고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그래도 보증금이 저렴하니  정도 인프라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우리가  집은 4층이었고 집주인 할머니는 바로 위인 5층에 살고 있었는데 나를 환하게 맞아주며  번째 집의 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안개가 나를 감쌌다. 담배 냄새와 함께 인센스 비스무리한  냄새도 진하게 풍겨져 왔다. 신발장까지 겨우 들어간  나는  이상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정도로 짐과 쓰레기들이 현관까지 가득  있었다. 신축인  번째 집도 조심히 신발을 벗고 들어갔는데  집은  누구도 신발을 벗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신발이 집보다 깨끗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혹시 청소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하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을 둘러보았다.  자체는  번째 집의 1.5 정도로  넓었고 넓은 베란다도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넓었다. 하지만  사람이  집안에서 움직일  있는 공간은 신발장에서  발짝 정도일 뿐이어서 우리는 옹기종기 붙어서 눈으로만 집을 훑었다. 당황한 나를 두고 집주인 할머니가 여러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사는 아가씨가 명문대생인데 학생 때부터 여기 살았다... 직장도 좋은 곳 구했는데 외국 출장이 잦아서 집을 잘 치우 지를 못한다... 지금 이사할 거라서 짐이 다 나와있는 거다... 도배, 장판은 다 해줄 거니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아무  없이  집에서 나와 다시 차를 탔다. 갑자기 뭔가 나의 신세가 서러워졌다.


  아무  없이 마지막인  번째 집으로 향했다. 문제의  번째 집은 부동산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매물이 아니라  부동산에서 소개받은 매물이었다. 우리가 집을 보고 나온  곧바로  번째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에서 집은  봤느냐고 전화가 왔다. 집이 오랫동안  나가서 집주인도, 부동산도 집이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듯했다. 부동산 할아버지는 단칼에 집이 너무 더럽다고 말씀을 하셨다. 역시나 저렴한 집은 이유가 있다.

세면대와 샤워기가 분리되어 있고 창문이 나있던 화장실

 번째  다른 부동산에서 소개를 받은 집이었다. 이번엔  번째 집과 비슷하게 보안이 좋은  건물이었고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3층에 내려서 이번에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작은 창문이 있는 넓은 주방 모습이 먼저 보였다. 이곳도 분리형 원룸이었는데 보통  하나로 분리된 곳과 다르게 짧고 좁지만 나름의 복도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작은 창문이 나있었고 세면대와 샤워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집에서는 모두 샤워기가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화장실을  순간 너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방의 문을 활짝 열었는데 와! 방이 정말 넓었다. 웬만한 아파트 안방 크기 정도인데 세입자가 킹 사이즈 침대를 두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방이 넓은 게 느껴졌다. 창문도 꽤 컸다. 빌라 골목 특성상 맞은편에 바로 다른 빌라가 있어 시야가 트여있지는 않았지만 넓은 창문으로 햇살이 잘 비쳤다. 방을 천천히 훑어보면서 창문 앞에는 책상을 놓고, 벽 쪽에는 소파를 놓는 그림을 상상했다. 이 집은 보증금 1억에 월세 45만 원, 관리비 6만 원. 첫 번째 집과 마찬가지로 월 50만 원의 지출이 필요했다.


세 번째 집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부모님과 상의해본 뒤 다시 연락드린다고 말씀드리고 부동산을 떠났다. 그 순간 나에게 커피가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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