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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May 02. 2022

드디어, 혼자 사는 나의 집으로 입주날!

부모님 집에서의 첫 독립을 위한 체크리스트

입주 1주일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모님 집에서 짐을 싸면서 독립을 준비했다. 본가에서 처음으로 독립하는 거라 가져갈 짐은 많지 않았고 해봤자 캐리어 한 두개면 들어갈 옷가지와 자질구레한 물건들 뿐이었다. 그 외 생활용품들은 입주 후에 천천히 사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엄마가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대체 그동안 어디에 숨겨놨을지 모르는 새 수건, 수저, 접시, 유리잔 세트를 꺼내주었다. 한 번에 많이 사두었거나 선물 받은 것들이었는데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싶어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독립을 그렇게도 반대하던 엄마였는데 막상 내가 바쁘게 짐싸는 모습을 보니 챙겨줄게 없나 싶어 집안을 뒤져본 것 같았다. 괜히 뭉클하고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진심이 느껴지면서도  사실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러니까 집이 좁지...' 였다ㅋㅋㅋㅋㅋㅋㅋ 엄마의 물건을 쌓아두는 습관과 정리 정돈 방식에 대해 싸우다가 본격적으로 독립을 준비하게 되었기 때문에 새삼 '아! 나 이래서 독립하는구나'를 또 느꼈다.


입주 날 하루를 위해서도 나는 역시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대문자 J 스타일. 가져갈 물건부터, 가면서, 그리고 도착하고 나서 할 일들도 쭉 목록을 작성해봤다. 입주날은 이전 세입자 퇴거를 확인한 뒤 계약을 완료하고 오피스텔 입주에 필요한 설명과 기본 등록을 진행해야했다. 그리고 모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도 받으러 가야했다. 첫 날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집 청소를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우선 집 계약과 전입 신고, 그리고 간단한 집 체크만 하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짐은 주로 청소용품과 혹시 땀이 나거나 하면 씻고 갈아입을 수 있는 화장품, 여벌옷을 챙겼다. 역시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니 나름 알차게 빠트린 것 없이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런데 비교적 간단하게 챙겼다고 생각했던 짐이 꽤 많았다. 짐이 적을 줄 알고 당연하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1시간 30분 거리를 낑낑거리며 대중교통을 타다가는 도착도 전에 지칠 것 같아서 급하게 쏘카를 알아보았다. 부모님께 태워달라거나 차를 빌려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토록 '독립'하고 싶다며 열변을 토해놓고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거나 못미덥게 생각할까봐 선뜻 준비사항의 어려움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혼자 이리저리 애쓰는 모습을 보더니 엄마가 바로 아빠를 설득해서 차를 빌려주셨다. 엄마는 같이 짐을 옮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첫 날은 이리저리 동분서주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가 편할 것 같았다.


입주 전날 밤, 잠에 들기 전에는 괜히 싱숭생숭했다. '25년 넘게 살던 이 집에서의 마지막 밤이구나',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결국 내일이면 하는구나'. 하지만, 괜히 집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면 감성적이어지고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어차피 가까운 거리라 독립 후에도 지겹도록 올텐데 뭐!


입주날은 월요일이라서 나는 미리 화요일까지 연차를 내놓았다. 드디어 입주날 아침이 되어, 일찍 일어났지만 출근 시간대를 피해 10시쯤 출발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립할 집의 주소를 네비에 입력했다. 이때까지만해도 혼자 운전해 본 적도 거의 없었던지라 독립의 설렘에 운전의 긴장감이 더해졌다. 네비와 음악을 셋팅하고 괜히 심호흡을 가다듬은 뒤에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려는 순간, 누군가 운전석 창문을 노크했다. 놀라서 쳐다보니 아빠와 친하게 지내시는 동네 아저씨였다. 아침 산책을 하시다가 아빠차를 보고 반갑게 다가오셨는데, 내가 혼자 타있으니 그 분도 적잖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어...? 큰 딸이구나. 아빠는 어디 가셨니?"

"아빠는 출근하셨고, 오늘은 제가 차 쓸 일이 있어서요"

"그렇구나. 잘 지내지? 별 일 없고?"

"네. 다들 잘 지내요."


전날 밤부터 나 혼자 인생의 대단한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심호흡하고 있던 찰나에 대단히 일상적인 상황과 일상적인 대화가 개입하니 마음이 뭔가 밍숭맹숭해졌다. '별 일 있겠어? 다 사람 사는거지. 독립해서도 그냥 물 흐르듯 매일매일 그렇게 사는거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들뜬 마음을 살짝 가라앉히고 안전하고 스뭇스하게 나의 첫 독립하우스에 도착을 했다. 도착 전에는 일부러 긴장을 풀려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이제부터는 빠르게 남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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