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Aug 05. 2020

‘교회’는 ‘집’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 이 글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던 20년 3월에 쓰인 것을 밝혀둔다. 아직까지 이 팬데믹이 유지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때와 달라진 것도 많지만 계속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때 그 감정 그대로 수정하지 않고 남겨둔다.






난 명확하지 않은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다.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뇌가 정지한다. 이렇게 하라는 건지, 저렇게 하라는 건지 정해달라고 온몸이 살려달라고 외친다.


물론 살면서 이렇게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스트레스를 받고 살이 안 찐다.


코로나 덕분에 전 세계 모두가 아는 표현이 생겼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모든 사람들이 실천해야 하는 긴급한 구호라고 볼 수 있다. 만인 각색의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에 대한 인식도 다르고 그 실천도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단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밖에 5번 나가던 것을 1번 나가는 것인가?’ ‘10명이 모이던 것을 3명이서 모이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늘 명확해야 하는 나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집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모든 나라의 정부와 사회에서 ‘제발 모이지 말고 집에 있어 달라’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다. 우리들이 모여 즐기는 기쁨보다 개인, 주변, 전 사회의 건강이 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건 담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담배도 오롯이 피우는 사람 한 명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책임진다면야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담배연기로 인한 간접흡연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주변과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것도 똑같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모임으로서 발생될 전염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냥 혼자 아프고 마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는 전염되는 병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지내는 호주에서도 이에 대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해변(비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요 비치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폐쇄되기도 하고 있다.


이런 제멋대로인 사람들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의 건강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즐기며 살다가 별 탈 없이 지나가면 좋은 거고, 혹시 문제 생기면 뭐 할 수 없는 거고 ㅎ’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지금 호주에서의 우리 가족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 중이다.

- 와이프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 아들 학교는 일주일 먼저 방학이 시작되었다

- 외출을 하지 않고 있다 (생필품을 위한 가게 방문 외)

- 두 학생의 홈 러닝과 우리 가족의 집콕 생활을 위해 ‘인터넷’을 신청했다

- 3주 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온라인 예배)


‘사회적 거리두기’와 관련된 인상적인 이미지가 있어 가져와 봤다.

나 하나쯤이야는 절대 안 된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바로 ‘종교 집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곳에서 솔선수범하여 종교 모임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뉴스를 보면 아직도 열심히 모이는 종교인들이 있는 것 같다.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보도되는 것도 많겠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기독교’ 모임(교회)으로 보인다.


나는 이러는 것이 믿음과 신앙이라는 핑계로 해당 교회와 전체 종교를 담보로 도박을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의 건강과 이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했던 코멘트인데, 극단적이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서 옮겨본다.

‘초기에 모르고 모인 신천지보다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 알고도 모이는 개신교가 더 나쁜 것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 모범을 보이며 모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외는 없는 것이다.


‘소규모로 모이면 되지 않을까?'

‘필수 인원 한두 명은 괜찮지 않을까?’

‘소독, 세정을 철저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도 충격적이고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에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 2주 전쯤 온라인 예배 전환에 대한 의견을 드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지난 주일에는 온라인 예배와 오프라인 예배를 모두 진행하였다. 이는 내게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큰 놀라움과 처절한 답답함을 주었다.


이럴 바엔 그냥 다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든지, 그게 아니라면 명확하게 모두 온라인 예배로만 했어야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많은 생각과 갈등을 하며 지냈다.


내 마음을 호주 정부가 알았는지 명확한 방침을 지난 주일 밤에 내려주었다. 불필요한 시설의 영업 종료를 알렸고, 그 리스트에 ‘교회(Places of Worship)’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겐 아주 명확해 보였다. 교회는 당분간 문을 닫고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하라는 정부 지침이 내려온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두에게 명확하게 ‘교회 예배는 금지되었고, 일체 어떤 모임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전할 것 같은데... 소속된 교단을 통해 내려온 방침을 그대로 전달받았을 뿐 그래서 이 교회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주일 아침 지금까지도 없는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와이프가 속해 있는 찬양팀 운영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찬양팀은 도대체 왜 예외가 되는가? 오프라인 예배가 금지되었다면 찬양팀 활동도 함께 금지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찬양팀이 고집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다른 신도들보다 앞선 자들이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키는 위대한 신도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렇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신도는 믿음이 부족해서 인가?


이건 많이 잘못돼도 정말 많이 잘못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두 집에 있으라는 것이다.


교회는 집이 아니다.

교회는 누구의 집인가?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우리는 우리의 집에서 이 시기를 위해 기도하면 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를 돌보시면 된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 답답한 심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코로나 발병 초기부터 오프라인 미사를 금지하고 지켜가있는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미지들이 있어 이를 공유하며 마치고자 한다.


모두 답답하지만 모두를 위해 집에 잘 머물러 있자.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