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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18. 2020

아빠, 1절만 해라!

유자차&뻥튀기&쌀과자와 흥미로운 자기소개 시간

27/Feb/2020


학기 초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4가지 작은 물건들을 담아 보냈었다. 하루 날 잡고 자기소개를 끝낼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하루에 한두 명씩 자기소개를 천천히 꾸준하게(호주답게) 하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자기소개를 빨리하고 싶다고 아들이 노래를 불렀다.


마침 담임선생님께 제안을 받은 상태여서 와이프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제안 - 한국 음식이나 스낵 등을 같이 나눠 먹으며 소개해보면 어떨까?) 김밥이나 이런 음식은 알레르기 재료도 들어가고 더운 날씨에 상할 수 있으니 시원한 유자차와 뻥튀기나 쌀과자 같은 것으로 준비하자고!


이제 내 역할이 남았다. 선생님께 알림장에 구구절절 열심히 적어 보냈다. 그날 오후 하교 시간에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고 그다음 주에 날짜 정해서 하자고 하셨다. 내 스타일대로 다음 주면 당근 바로 월요일이지 하면서 월요일로 정했다.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님의 요청대로 유자차와 과자들의 재료를 사진도 찍고 열심히 적어서 메일로 보내 놓았다. (워낙 알레르기가 다양해서 외부 식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확인한다) 유자차와 쌀 뻥튀기, 바나나 쌀과자를 공수했고 종이컵과 종이 빨대를 준비해서 차를 섞어 마시도록 준비했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준비한 물품을 싸 들고 아들과 같이 우리 부부는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은 내가 보낸 이메일을 인쇄해서는 알레르기 있는 학생 부모들에게 일일이 보여주며 문제가 없을지 확인하고 계셨다. (대단 대단)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엄지를 번쩍 들어서 보여주셨다. 보조 선생님께 간단하게 유자차 타 먹는 것과 과자 나눠먹는 것을 설명해드리고 아들과 인사하고 나왔다.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궁금해하며 하교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하교 시간! 맞이하는 선생님께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말씀하셨다. 오면서 아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해서 물어봤다. 아들이 그동안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운 대로 했다고 한다. 인사는 ‘굳 에프터눈 피엠케이’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굳 에프터눈 준~’이라고 했다고 한다. 소개는 4가지 아이템 ‘태극기, 레고, 빨간색 색연필, 수영 인증서’로 열심히 했다고. 마치고 나서 질문을 받기 위해 ‘더즈 애니원 해브 퀘스천?’이라고 했다고. 하하. 질문을 총 3명이나 했다고 한다. 무슨 질문인지는 못 알아들었다는 것을 보니 답변은 선생님이 했을 것 같다. 같이 잘 노는 한 친구는 계속 ‘땡큐’라고 해주었다고 한다.


드디어 자기소개를 마친 아들의 얼굴이 편해졌고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학교 가는 것을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여전히 싫어하지만 울먹이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래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고 시간문제라니까! ‘아이들 적응’은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것이었다.


아들을 표현한 4가지 / 뻥튀기는 맛있어 / 애벌레 변신






자기소개 후 급 적응&성장 모드


슬슬 학교에서 루틴 하게 오고 가는 말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다. 집에 와서 밥 먹고, 놀다가도 뭔가 생각나면 혼자 쭝얼 대거나 내게 알려주려고 한다.


1. 크로스 유어 레그스

(아들) ‘아빠~ 학교에서 제대로 앉지 않으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초록) ‘싯 다운?'

(아들) ‘크로스 유어 레그스야~’

(초록) ‘아 아빠 다리 하라는 거구나~ 선생님이 다른 친구한테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아들) ‘아니~ 나도 선생님한테 이 말 들어봤거든 ㅎ’


2. 후아유

(아들) ‘아빠, ‘후아유?’가 뭐야?’

(초록) ‘아~ 너는 누구니? 하고 묻는 거야~’

(아들) ‘음.. 하우 아 유? 랑 비슷하네?’

(초록) ‘응 그렇지~ 그건 이런 뜻이고, 이건 이런 뜻이고.. 하하’


3. 플리즈

(아들) ‘아빠~ 오늘은 도시락 뚜껑 한 개를 못 열어서 옆 친구한테 부탁했어~’

(초록) ‘오~ 뭐라고~?’

(아들) ‘당연히 플리즈라고 했지~’


4. 웨어 이즈 더블유

알파벳을 내가 불러주고 그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맞추는 퀴즈를 가끔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눈이 커지더니...

(아들) ‘웨어 이즈 더블유?’

내가 더블유를 건너뛴 것이었다. 하하. 자기가 영어로 물어본 것은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5. 나이스트 미츄

(아들) ‘아빠~나이스트 미츄가 뭔지 알아?’

(초록) ‘오~ 만나서 반가워잖아~ 어떻게 알았어?’

(아들) ‘나 학교에서 배우잖아~~’


6. 노 프로블럼

(아들) ‘아빠, 노 프로블럼이 무슨 뜻인지 알아?

(초록) ‘오 뭘까??’

(아들) ‘그건 아무 문제없다는 뜻이야’


이런 뜻은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서 알고 오는 것일까. 한글을 어느 정도 아니까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다. 역시 ‘아이들 적응’은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것이었다.




미술놀이 / 수영놀이 / 한글놀이


오랜만에 미술 수업을 Paintbox 스승님과 함께 했다! 아주 멋진 앵무새를 완성했다! 스승님께 교복 입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무척이나 기분 좋았던 하루였다.


수영 수업 시간에도 부쩍 실력이 느는 모습을 보여줬다. 큰 팔 휘젓기를 배우는 단계인데 아들이 정석대로 곧게 뻗어서 제법 잘 배우고 있다. 다른 아이들 보고 준이 하는 거 보고하라고 먼저 시킨다고 아들이 알려줬다. 새롭게 몸을 앞뒤로 왔다 갔다 꿈틀대는 동작도 배웠는데 제법 능숙하다.

 

한글도 꾸준하게 배우고 있다. (끈질긴 아빠 덕분에 하하) 이제 혼자서 책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빠나 엄마가 읽어주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내가 책 읽고 있을 때는 아들도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해주면 몇 권을 곧잘 읽어 나간다. 불과 작년 7월에 처음 호주 왔을 때 ‘ㄱ’, ‘ㄴ’, ‘ㄷ’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감개무량해서 내가 눈물이 난다 ㅜㅜ


미술을 사랑하는 홍카소 / 책 읽어주세요 / 나도 책 읽을 수 있지






우리 부부 이런저런 일상


주일 찬양을 위해 찬양팀 싱어인 와이프는 토요일 오전에 찬양 연습에 참여한다. 이번 연습에는 나도 참여했다. 마지막 곡의 기타 반주 서브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찬양팀 리더이자 기타 반주하시는 내 기타 스승님께서 같이 서자고 반강제&반권유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수없이 연습했던 곡이었지만 실제로 연습을 함께 하니 손에서 땀이 났다. 역시나 칭찬의 아이콘인 리더님께서는 너무 잘했다고 하셨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음날 주일 찬양 본무대에 섰고, 전날보다 더 두근댔지만 그래도 간밤에 더 연습한 덕분이었는지 어제보다는 좀 더 낫게 연주를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는 사이 찬양이 끝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리로 돌아왔다. 실로 엄청난 경험을 했다. 누군가 앞에서 기타로 한 곡을 완전히 연주하다니, 내 인생 처음 겪는 데뷔 무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더님의 칭찬. 자연스럽게 다음 곡을 정해주시고는 헤어졌다. 하하.


비 오는 날 아침 파랑 학교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 뒤에서 미끄러진 차가 우리를 살짝 박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고, 차도 아주 살짝 긁히기만 해서 신원 확인만 하고 헤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들 학교 갈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내가 좀 마음이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아들은 천하태평 ㅜㅜ 결국 참다 참다 한 소리를 했다. 바로 사과를 하고 데려다주면서도 또 사과를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 그날이었나 싶은데 중간에 잠깐 들른 파랑이랑도 조바심에 한바탕 했다. ㅡㅜ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빨리 학교에 보내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는데 졸리다고 하는 둥 하는 모습에 내가 좀 동동거렸나 보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것을 받아주고 안아주면 될 것을 참 못한다. 힘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는 거라고 말하니 위로를 바란 사람에게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비가 계속 왔던 지난주처럼 내 마음의 조바심이 계속 흘러내렸나 보다.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을 고쳐먹어 보자.






아들의 기막힌 말말말



1.

(초록) ‘아들아~ 아빠가 항상 교실 앞에 1등으로 가서 아들이 일찍 나오니까 좋지~?’

(아들) ‘그거 아니야~ 내가 예쁘게 앉아 있어서 일찍 내보내 주는 거야~’

아 그렇구나...


2.

(아들) ‘엄마! 내가 공부 점수 잘 얻는 방법 알려줄게~’

(파랑) ‘응 어떻게??'

(아들) ‘핸드폰은 대충 보고(많이 보지 말고~ 보면 빨리 연락하고 싶어 지니까~), 얻고 싶은 점수를 쓰고 그걸 계속 생각하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고 핸드폰으로 먼저 답을 찾지 말고, 그전에 스스로 생각해서 풀라는 이야기였다. 하하.


3.

내가 저녁상을 치우면서 또 남긴 아들의 밥을 보고서 노래를 불렀다.

(초록) ‘아들이 또 밥을 남겼네요~ 점심도 남겨오고~ 저녁도 안 먹고~ 매일매일 안 먹어요~’

듣고 있던 아들이...

(아들) ‘아빠, 엄마가 하는 말 기억나지? 1절만 해라~’

(초록) ‘@.@?!?! 엥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ㅋㅋㅋ'

(아들) ‘나 다 듣고 있지~ 지금 아빠 2절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ㅋㅋㅋㅋㅋㅋ 말조심해야 한다. ㅡㅜ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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