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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22. 2020

우리 아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늘 피해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7/Mar/2020


지난주 목요일 하교 시간, 담임선생님이 평소와 다르게 내 얼굴을 확인하시고도 아들을 내보내 주지 않으셨다. 이상해하며 조금 기다리니,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며 교실로 들어와 달라고 하셨다. 내용에 대한 긴장은 전혀 없이, 언어에 대한 긴장만 가득한 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다. 누군가 누구를 ‘물었다’라는 이야기였다. 너무 당황해서 수동태인지 능동태인지 한참을 헤매다가 물어보았다.


(초록) ‘준이 누구에게 물렸다고요?’

(선생님) ‘아니요… 준이 친구의 팔을 물었답니다.’


굳어지는 내 얼굴을 선생님은 분명히 보았으리라...


바로 그 친구는 괜찮은지 물었고 다행히 전혀 심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상황이 벌어진 순간에는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고 있었고, 전해 들으시니 어떤 놀이를 하다가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정확히 어떻게 하다가 발생한 일인지 모르니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알려달라고 하셨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아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록) ‘아들~ 오늘 친구 팔을 물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아들) ‘아, 나 혼자 놀이하는 중이었는데 거기에 친구 팔이 있었어.’

(초록) ‘무슨 놀이를 했는데?’

(아들) ‘방울 놀이, 공중에 방울이 떠다니고 그걸 내가 입으로 물어서 터뜨리는 놀이였어.’


내게 바로 이해가 되는 그럴듯한 설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과 눈빛을 보니 그것 말고는 설명할 것이 없어 보였다. 마침 다가오신 담임 선생님께 아들에게 들은 것을 말씀드렸다.


(선생님) ‘아~ 준은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아이라서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와 같은 다른 친구들이 불편할 수 있는 놀이는 학교에서는 하지 말자고 말씀하셨고 아들도 약속했다. 이 놀이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하면 되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나오는 길에 그 친구 부모에게 어떻게 사과하면 되는지 여쭤보았다. 아들이 오늘 그 친구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아주 멋진 그림편지 그려 주었고, 그 친구 부모님께 하교할 때 이미 이야기했으니 따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 부모님께서는 전혀 문제없다고 하셨다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아들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초록) ‘아들~학교는 배우는 곳이지?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곳이야. 오늘은 주변 친구들이 불편하거나 다칠 수 있는 놀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거야, 알겠지?’


다행히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아들이라면 오늘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계속 마음이 불편해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돌아가는 상황은 이해했지만 자신의 입장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해서 답답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아빠가 하굣길에 바로 못 데려가는 상황도 평소 같으면 이해하지 못하였을 텐데, 오늘은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렸던 것을 보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작고 연약한 아들이어서 항상 친구들에게 치이지 않을까 걱정만 해왔었는데 이렇게 가해자가 되었다고 하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늘 아들이 당해오던 크고 거친 다른 친구가, 그리고 그 친구의 부모를 내심 미워하고 탓하는 데만 익숙했었는데 이런 경우는 상상해본 적도 없어서 마음의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다.


나도 그렇게 커왔듯이, 아들도 자라면서 친구들과 서로 부딪히고 다치는 일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늘 피해자일 것이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그 친구 아빠에게 이야기를 꺼내며 사과를 했다. 그분은 미안해하는 내게 정말 괜찮다고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오후에는 그 친구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내며 사과를 했다. 그분은 아들이 엄청난 캥거루 그림을 그려줬다며 아들 그림을 칭찬해 주시며 정말 괜찮다고 하셨다.


분명히 말하지만 반대의 경우였다면 난 절대 저렇게 하지 못한다. 웃으며 말은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꾸겨 넣든, 돌려 넣든 표현을 했을 것이다. 내 아이가 물렸다는데? 그분들의 쿨한 반응에 더 부끄러워졌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일이 벌어졌던 한주였다.


그날 이후 아들에게 들은 웃픈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들) ‘오늘 어떤 친구가 교실 문을 막 ‘킥, 킥’ 했거든? 그래서 내가 어제 갔던 그곳에 가서 좋은 행동 하도록 하는 시간을 보냈어~’


‘생각하는 방’ 같은 곳에서 친구에게 사과하는 그림편지를 그렸던 모양이다. @.@


이번 경험을 통해 너도 우리 부모도 배워가는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아들 아들 아들






아들 학교생활 이모저모


1. 신상 템 마련

비 오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때 새로 장만한 장화와 우산을 장착하고 등하교를 했다. 보는 이들마다 귀엽다며 감탄했다.


2. 굳 리스너

어느 날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다. ‘그레이트 리스너 상!’ 음악 수업 시간에 받아온 것이었는데 아들은 ‘나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듣는 게 나 재밌어~~’라고 하는 중이다.


3. 인기쟁이?

하굣길에 아들을 데려올 때면 먼저 인사 안 하는 수줍은 아들 덕분이기 하겠지만 다른 아들 친구들이 인사를 많이 해준다. 어느 날은 한 여자 친구가 아들을 안아주고 헤어지는 길에서도 계속 인사해 주었다. 하하. 아들에게 평소에도 저 친구가 그러냐고 물으니 세상 쿨하게 자기는 잘 모른다고 했다. @.@


4. 자기소개 대성공

한국 차와 간식을 나눠 먹으며 했던 아들의 자기소개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나 보다. 그 이후 다른 몇몇 친구들도 유사하게 자기 나라 음식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고 그때마다 항상 아들처럼 하는 거라고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계속해주셔서 내심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한 친구 엄마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린 미국에서 왔는데 아들이 준이 한 것처럼 전통음식을 나눠달라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음식을 해야 하나 고민스럽다고 ㅡㅜ 결국 그 아메리카 친구는 소시지를 나눠줬다고 하하)


5. 미뤄진 유어 마이 선샤인 공연

원래는 이번 주 수요일 학교 전체가 모두 모이는 어셈블리 시간에 아들 반 친구들이 ‘유어 마이 선샤인’ 노래와 율동을 선보이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수칙에 맞게 대규모로 모이는 것을 자제하고 있어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곳도 서서히 긴장감이 올라가고 있다. 오래 준비해둔 만큼 선생님도 아이들도 아쉬운 상황이다. 아쉬운 마음에 양가 어르신들께 솔로 공연을 선보였다.




체화되는 영어의 증거들


- 친구들과 뭐라 뭐라 하고 노는 영어 놀이를 집에서도 중얼중얼한다.

- 홈 러닝 미니 자동차 게임을 하면서 ‘킵 고잉~~’, ‘와이 유 낫 커밍??’

- 모르는 단어를 배운 글자 소리로 읽는 법을 찾아내는 위엄을 보이고 있다. ㄷㄷㄷ

- 레고, 인형을 가지고 놀 때 예전에는 한국어로 역할극을 했었는데, 이젠 뭔가 영어로 이러쿵저러쿵한다.

- 자전거 산책을 갈 때 내게 기다려 달라며 ‘웨잇 포 미~'


아이들 걱정은 할 필요가 없구나~!




아들의 주간 어록


1.

밥 먹을 때 너무 맛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소리 내어 먹게 되는데 그걸 보던 아들이...

‘아빠~ 입을 이렇게 해서 벌리지 말고 먹어~’

몸소 입을 다물고 먹는 것을 한참 내게 보여준다. 미안하다 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다.


2.

결국 아들이 실토했다. 엄마 아빠가 이런저런 준비를 하자고 부탁을 해도 늦장을 부리는 이유를...

그 순간의 재미를 위해 딴짓을 하게 된단다.

서두르는 이유는 엄마 아빠의 이유일 테니... 그래도 일부러 늦장 부리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 힘들다.ㅜ


개구리 우산 속 아들 / 집중하는 홍카소






아,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다!! 옆집 담배 연기가 사라졌다!


우연히 옆집에 살고 있는 와이프의 학교 동기에게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했더니 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던 그분이 댁에 돌아가셔서 조치를 취하신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동기분이 그 집의 마스터(집주인과 계약한 세입자)였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셰어 생(마스터와 계약한 추가 세입자)이었던 것이다. 마스터에게 알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다가 금연 조치를 당한 것이리라! 


이런 뜻밖의 경사가! 고마운 마음에 아끼던(?) 한국 과자를 와이프 통해 전달했고 조만간 와이프가 한국 밑반찬을 선물할 예정이다.


당연했던 상쾌한 공기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으니 너무도 행복하다!


비 온 뒤 나온 무지개 / 호숫가 라이딩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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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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