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싶어서
07/July/2020
내 어릴 적이라 하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 맞을 것 같다. 아들과 30살 차이가 나니 그게 맞겠다. (내가 어마어마한 어른이구나!)
그때쯤 내게 신세계를 보여준 즐거운 놀이책이 있었는데, 바로 ‘월리를 찾아라!’였다. 아마 이 글은 읽은 분들은 다 고만고만한 또래 시기에 모르는 분은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알려드리자면 이 책은 한마디로 ‘아주 재미있는 숨은 그림 찾기 책’이다. 어릴 적에 이 책들을 시리즈로 사주셔서 보고 또 보고, 찾고 또 찾고 하며 거의 외울 때까지 열심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지내는 곳 가까이에 있는 마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획전을 연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으로 지난주 기획전 상품이 바로 이 ‘월리를 찾아라!’였다. 아들은 요즘 책을 읽으면 책 칭찬 스티커를 모으는데, 일정량을 모으면 사고 싶은 책을 사주고 있다. 마침 이번에 다 모아서 책 선물을 받을 차례가 되어 ‘월리를 찾아라!’ 책을 2권 사 왔다. (약간 내가 선동한 것도 있다. 인정!)
이런 책을 처음 본 아들은 조금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곧 푹 빠져버렸다. 아마 내가 더 반가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통에 그게 더 신기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3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추억과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어느 페이지에 어디쯤에 숨어있는지 생각하는 페이지가 아직도 있었고, 그때도 웃었던 그림들을 지금 보면서 다시 웃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들이 혼자서 이 책을 보면서 웃고, 찾고,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 모습은 내게 또 다른 기쁨과 감동이었다. 그 오래전 그 시절에 내가 즐기던 것을, 이제 내 아들이 즐긴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즐긴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 한 가지 더 함께 즐기는 것이 생겼는데, 바로 ‘만화 영화’다. 10년, 20년도 넘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하나씩 중고가게에서 사 와서 틀어주고 있다. 쿵푸팬더, 라이언킹, 몬스터 주식회사 등 모두 아들도 즐겁게 즐기고 있다. 정말 재밌게 본 영화가 있으면 아들은 꼭 아빠와 함께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는 아들이 연속 삼일째 보고 있는 ‘토이스토리’를 함께 보았다. 사실 토이 스토리를 나는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보긴 보았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많이 해주었으니. 아무튼 아들의 강력추천을 믿고 함께 앉아 보았는데, 와...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이게 그 옛날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스토리, 구성, 등장인물, 재미, 감동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옆에 아들만 없었다면 눈물을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내 감탄하는 모습을 보는 아들의 뿌듯한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하하. 고마워 아들!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 것을 알게 해 줘서!
다음날 아들이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아빠, 내가 방 정리하다가 장난감들이 움직이는지 보려고 문 뒤에 숨어서 봤는데 안 움직이더라?’ 토이 스토리의 영향으로 주인이 안 볼 때 장난감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고 싶었나 보다. ‘아, 아빠는 새벽에 지나가는데 장난감들이 슉~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본 것 같아!’
너무 심했나? 언젠가 진실을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다. 아닌가? 진짜 우리가 없을 때 장난감들이 놀고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못 봤기 때문에 모르는 것 아닐까?
1. 컬러링 북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서 햇살을 맞으며 함께 하는 활동이 있는데 무척이나 힐링이 된다. 바로 ‘부엉이 컬러링 북’인데 이게 참 신기한 물건이다. 원래는 파랑이 본인을 위해 샀지만 원래 남이 떡이 커 보이기에 아들이 매번 탐내면서 조금씩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이번 아들 방학 기간에 아들과 같이 해보려고 뛰어들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내 마음대로 골라서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가며 칠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옆에서 함께하는 아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되는데 이것도 참 인상적이다. 그렇게 물어봐도 안 해주던 학교 이야기를 술술 실타래 풀리듯 아들 입에서 나온다. 누구랑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든지, 선생님이 이랬다든지 등 아주 재밌다. ‘힐링과 수다’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컬러링 북’을 모든 육아 부모님들께 강력 추천한다!
2. 단둘이 비치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는 파랑을 홀로 학교에 두고, 오랜만에 아들과 단둘이 밖으로 나섰다. 우리 모래돌이를 위해 향한 곳은 한적한 바닷가. 의자, 축구공, 모래놀이 장난감 이렇게만 들고 가까운 곳으로 가서 자리를 폈다. 어쩐지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난 책도 가져갔는데 2줄 읽고 끝났다. 뭔가 계속 아빠와 함께 하고 싶다고 하여 놀고 놀고 또 놀았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아쉬워하며 돌아왔다. 내버려 두었으면 분명히 하루 종일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가면 잘 노는 녀석이 물어보면 집에서 놀겠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3. 아들이 해주는 옛날이야기
요즘엔 아들이 잠자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시리즈로 해주고 있다. 그런데 너무 듬성듬성해줘서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시간이면 피곤해서 깨어있지를 못한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산책하고, 놀다 보니 유독 더 피곤한 날이었는데 그날 옛날이야기를 꼭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거의 잠이 들만하면 깨워서 이야기하고, 또 깨워서 이야기하고를 정말 여러 번 하다가 잠들었다. 계속 깨우는 아들이나 계속 자는 나나 너무 피곤한 잠자리였다. 그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 ‘한글 받아쓰기’를 곧잘 배우고 있는데 가끔 하기 싫어하는 티를 낸다.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파랑이 나 몰래 그 이유를 물어봤다고 한다.
(파랑) ’왜 받아쓰기하기 싫어? 아빠가 잔소리해서?’ (파랑…. -_-^)
(아들) ‘아닌데? 아빠 안 혼내고 잔소리 안 하는데?’ (고마워 아들)
(파랑) ‘그러면 왜 그러는 거야?’
(아들) ‘아, 받아쓰기하고 모르는 것 있으면 앞에 다시 찾아봐야 하는데 귀찮아서~’
ㅋㅋ 그래 귀찮은 것을 누가 좋아하겠어.
그러더니 저번엔 아빠 엄마한테 스스로 만든 받아쓰기 문제를 내주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받아 적어야 하는데 맞힐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 답안지에 멋지게 ‘0’이라고 써주고는 뿌듯해했다.
한 번은 아빠가 글씨를 못쓰는 악필이라고 했더니 계속 알파벳 쓰는 것을 알려준다고 한다. 내가 쓰는 영어 공부 노트에 아들이 알파벳을 열심히 적어 놓았다. 공부할 때 자기 글씨 보고 좀 배우라는 의미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내가 기타 연습할 때, 본인이 코드를 잡고 싶다고 하여 자리를 내주었는데 그게 좋았었나 보다. 계속 그 코드를 배우고 싶지 않냐고 강요하며 알려준다고 한다. 뭔가 아빠 엄마에게 본인의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요즘 큰가 보다.
아들은 엄마 아빠가 한 말을 정말 잘 기억한다.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먹는데 갑자기 속담이 떠올랐다며 말했다. ‘튀기면 모든 게 맛있다’ 우리가 종종 튀김의 위대함을 논할 때 썼던 말인데 그게 속담인 줄 알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
바닷가에 가서 물에는 가까이 안 가고 모래에서만 노는 아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 했다. ‘아들, 거기가 바다냐?’ 잠깐 생각에 잠기던 아들이 한마디 했다. ‘아빠, 아빠도 말 예쁘게 해 줘.’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늘 서로 말 예쁘게 하자고 말하는 나에게 왜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냐고 알려준 것이다. 바로 사과하고 반성했다.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게 키우고 싶어 하다 보니 늘 벌어지는 일이다.
나부터 변하고 고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