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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25. 2020

엄마는 왜 운동을 안 해? 그냥 죽으려고 하는 거야?

아들은 개학, 엄마는 방학

14/July/2020


아들은 바닷속 생물을 정말 좋아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좋아하는 것들 상위 순위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다. 특정 바다 동물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물에 사는 생물들 모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 이름, 모습, 특징 등에 매우 관심이 많고 점점 그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이번 2주 동안의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들, 방학 때 하고 싶은 일 있어?’ ‘응! 수족관 가고 싶어!’


이미 정해진 듯한, 오랫동안 참은 듯한 대답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호주 여행을 할 때 가고 나서 거의 1년 동안 못 갔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코로나 상황에 과연 수족관이 운영을 할 것인가 였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가까이에 있는 곳이 방학 즈음부터 운영을 다시 시작했고, 바로 예약을 했다.


수족관 출발 십분 전 (이 정도면 안 가도 충분하겠는데?)



떠나기로 한 며칠 전부터, 전날 밤 그리고 그날 아침까지 아들은 하늘을 날아다녔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중요한 준비 중인 엄마와 함께 못 가는 것을 알고는 잠깐 서운했다가 이내 이해하고는 멋지네 차려입고 나와 나섰다. 결과적으로 그날 하루는 아들에게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1년 만에 많이 자란 아들은 예전처럼 대충 지나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거의 없었고, 금방 지쳐서 칭얼대지도 않았다. 정말 꼼꼼히 모두 구경을 하고 다시 보고 싶은 것도 다시 챙겨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인 기념품 샵에서는 아주 쉽게 무너졌다. 아들도, 그리고 나도 (그래, 너희들 장사 기술 아주 칭찬해!)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나와 협상을 하더니 하나를 골랐다. 적당한 사이즈의 푸른 후디를 입은 파란 펭귄 인형이었는데 수익금을 야생동물 보호에 기부하는 의미도 가진 녀석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 펭귄 인형과 함께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펭귄 인형을 들고 수족관에서 따로 구매했던 아이들을 위한 ‘미션 팩’을 목에 걸고 다녔다. 토이 스토리의 영향으로 우리 집인 처음이라 낯설 펭귄 인형을 위해 열 밤만 같이 잔다고 했다. 자기 전에 읽는 책을 인형에게 읽어주고는 같이 잠들었다. 다음날도 인형을 챙기며 다녔고, 그림도 여러 번 그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사주길 참 잘했다는 기분이다.


수족관과 새로운 인형 식구



어제 개학을 해서 방학 동안 즐거웠던 일을 적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하굣길에 엄청 신나고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아빠! 내가 오늘 방학 때 한일 혼자서 썼어! 들어봐~ ‘On the holiday I went to the sea life.’ 이렇게 혼자서 썼어!’


이번 방학의 강렬한 기억은 그 수족관(Sea Liffe)였던 것이다. 아빠랑 합체했던 그 2주간의 오랜 시간은 그 단 몇 시간을 넘지 못했다. 아닌가? 아빠랑 같이 가서 좋았던 거겠지? 하하.


하루 종일 신났다 / 새 식구에게 책 읽어주기 / 개학 첫날의 행복






파랑은 방학 시작, 아들은 개학 시작


파랑이 준비해 오던 것이 일단락되었다. 그동안 아빠 눈치 보느라 엄마에게 제대로 못 갔던 아들 고생했다. 그 이후 엄마와 즐겁게 놀며 합체하는 시간을 쭈욱 가졌다. 이웃사촌 누나네 저녁 초대를 받아서 맛있는 치킨도 먹고 누나와 신나게 놀다 왔다. 그리고 우리도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못 마시는 술도 마시고 잘 놀다 왔다.


다음날엔 엄청난 늦잠을 잔 파랑이 ‘코스트코’를 가자고 해서 정말 오랜만에 세 가족 먼 나들이를 다녀왔다. 1년 살아보고 다녀온 코스트코는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왜 이리 사보고 싶고 필요해 보이는 게 많은지. 하하. 장보고, 밥 먹고, 기름 넣고 보니 한 주 렌트비가 나왔다. 전날 이웃사촌께서 두둑이 챙겨가시라고 했던 말이 실감 났다. 그렇게 코스트코 나들이로 파랑의 진짜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어제부터 Term 3 개학이었다. 등굣길에 갑자기 아들이 외쳤다. ‘나 아빠랑 학교 갈래!’ 엄마가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랑 가면 더 아쉬워서 눈물이 나.’ 아직까지도 아니면 앞으로도 엄마는 아들에게 그런 존재인가 보다.


첫날이므로 다 함께 세 가족이 손을 잡고 교문을 향했다. 교문에서 혼자 들어갈지 선생님께 도움을 청할지 쭈뼛거리는 아들을 향해 멀리서 한 친구가 아들 이름을 불렀다.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지어졌다. 그 머리 하나는 더 큰 친구와 아들을 사이좋게 등교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잘 지내고 있구나 아들!


무서운 코스트코 / 다함께 산책



아들 어록


1. 아빠의 약점

아들과 둘이 있을 때 내가 청소기로 문을 고정시키는 부분을 쳐서 부러트린 적이 있었다. 당장 불편하지 않아서 그냥 두고 있는데, 갑자기 밥 먹는 중에 그 사실을 아들이 엄마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미 파랑에겐 내가 이야기했지만...)


뭐지 이 녀석... 그러더니 한 마디 더 했다. ‘에이~ 인스펙션 때 대충 보느라 못 보고 갔네~’


정기적으로 매니저가 집에 유지/보수 확인 목적으로 왔다 가는 것을 ‘인스펙션’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했었다. 야 이 녀석아 저거 부러진 것은 그다음 일이거든! 뭔가 아빠의 약점을 온 동네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아들의 이런저런 일을 모두 파랑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그런 건가... 



2. 심오한 대화

(아들) ‘나이 들면 왜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

(파랑) ‘몸이 늙으면 이런저런 기능들을 잘 못하게 되다가 그게 심해지면 하늘나라 가는 거야. 그래서 몸이 건강해지려고 계속 운동하는 거야 아빠처럼.'

(아들) ‘엄마는 왜 아무 운동을 안 해? 그냥 죽으려고 하는 거야?’

(파랑) (말잇못…) ‘어, 그래서 이제 아빠랑 같이 할 거야.’


핵심을 찌르는 아들, 무서운 녀석.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파랑은 운동을 시작했을까? (참고로 난 10년 간 시도했으나 포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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