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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03. 2020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

11/Aug/2020


지난주 어느 날 우편함에 아들 학교로부터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지금 같이 물리적 접촉을 줄이며 모든 소통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좀 의아한 일이었다. 아주 얇은 종이 한 장뿐인 것 같아서 폭탄은 아니겠거니 하며 집에서 아들과 함께 뜯어보았다.


의문의 우편물


<‘Letter of Commendation - Semester 1, 2020'>


편지의 제목은 이랬다. 처음 보는 단어 ‘Commendation' 때문에 무슨 목적의 편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본문을 읽어보니 아들이 모든 분야의 배움에 있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성과를 내서 선생님께서 지명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맨 아래 교장 선생님 친필 사인을 보고 나니 이제 이해가 되었다.


‘학업 우수 표창장’이었던 것이다.


그냥 한 학기 다니느라 수고했다고 모두에게 보내주는, 의례 이곳 호주에서 있을법한 작고 세심함 친절의 하나인 줄 알았다. (개근상 or 성실상) 집에 돌아온 파랑에게 보여주니 ‘안 그래도 아들 리포트가 모두 상위권이어서 여긴 이런 학업우수상 같은 거 없나?’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역시 아빠랑 많이 다르네)


영어를 전혀 모르고 학교에 들어간 지 반년, 그중에 한 달은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열심히 지내온 아들에게 많이 고마웠다. 아들에게 편지의 내용과 목적을 설명해주고 칭찬과 축하를 듬뿍해주었다.






파랑에게 이 기쁜 소식을 한국에 계신 양가 어르신들께 알릴까 하고 물었다. (현재 주 양육자로서 살짝 들떠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파랑이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파랑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되고는 내 흥분 상태는 바로 잠잠해졌다. 양가에 알리지 말자는 것은 괜히 앞으로의 성적, 공부에 큰 기대와 관심이 몰릴 수 있는 것을 방지하자는 의미였다.


학업 성적이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이곳 호주에 왔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고, 의미 없는 입시경쟁 쳇바퀴에 밀어 넣기 싫어 호주에 온 우리 이야기>






아들은 무슨 일이든 꼼꼼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 우리 부부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이런 아들의 특징은 어디 가서도 동일할 것이다. 꼭 이런 상장 같은 게 아니어도 주변에서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모를 수가 없다고 믿는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 덕분에 늘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받고 지낼 아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물론 이렇게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누군가에게 내 노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살면서 느끼는 큰 행복일 것이다.)


살면서 공부, 특히 학교 공부와 성적은 잘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그건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 중에 정말 작고 작은 하나의 일일 뿐이다.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것만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우리나라식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 우리 부부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산증인으로서 아주 잘 알고 있다.


사실 호주에서 지내는 다른 아이가 있는 한국 가족들의 교육관이 우리와 많이 달라서 놀라기도 했다. 당연히 모두 우리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분들이 더 많았다. (좋은 학교, 좋은 대학교, 유학 등을 이미 고려하시는...) 이쯤 되면 그냥  우리가 특이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하.






아들이 무엇을 하든 즐겁고 재밌게 생활하면 좋겠다. 정말 그게 무엇이든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선택하면 좋겠다. 대학을 안 보내도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아들에 대한 우리의 교육관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아들의 상장 덕분에 이렇게 다시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상장이다. 우리가 칭찬과 축하를 해주니 분위기 파악이 잘되는 세심한 아들은 그날 많이 기분이 좋았다. 아들, 앞으로도 학교 가서 신나게 가서 놀고 와!


그날 밤 아들 선생님 두 분께 이메일로 감사 말씀을 드렸다. 다음날 학교 마치고 픽업 때, 아들이 자랑스럽고 ‘슈퍼스타’라고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아들의 선생님들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답장도 해주셨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이보다 더 좋은 행운이 있을까 싶다. 


흥과 사랑이 넘치는 아들






학교생활에 빠져드는 아들


1. 오늘은 내가 스타!


상장을 받아온 다음날 가방에 엽서가 들어있었다. ‘이건 또 뭐지?’ 하며 읽어보았는데... 금요일마다 가져가는 ‘홈 러닝 폴더’를 가져왔다고 칭찬해주는 내용이었다. 하하. 참 작고 아기자기하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호주 같았다. 


그런데 아들에게 물어보니 그럴만했다. 그날 제대로 가져온 사람이 아들뿐이었단다. 하하. 아들~ 이건 아빠가 잘 챙겨줘서 그런 거야! 



2. 나도 장난감 받고 싶어


어느 날 파랑과 같이 데리러 간 하교 시간. 아들이 손을 들고 선생님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나와서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며 울먹거렸다.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저금하는 날이었는데, 저금하고 나서 주는 ‘토큰’을 아직 못 받았다는 것이다. @.@ 왜냐하면 그날 토큰까지 모으면 10개가 되고 그걸로 장난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날 소중한 10번째 토큰을 못 받아서 물어보려고 했단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가끔 저금이 몰리면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다음날 주기도 하니 기다려보자고 알려주셨다. 이제야 이해한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10번째 토큰을 받아왔다. 귀여운 녀석



3. 나 이제 쉬운 거는 다 알아


아들은 외국인 학생으로서 별도로 지원되는 영어 클래스(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or Dialect - EAL/D)를 받고 있다. 어느 날 이 클래스 재밌게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제 나는 쉬운 거는 다 알아서 나는 안 갔고, 다른 친구들만 갔어’


엥? 그럴 리가 없는데... 다음날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런 건 아니고(막 웃으셨다) 그 클래스에 오는 아이들 대비 상대적으로 아들에겐 쉬운 것은 맞는데 아주 끝나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심지어 그 주에 다녀왔다고 한다. 아들...) 정확히 다시 알아봐 주기로 하셨다. 아들이 말이 점점 늘수록 약간의 혼선과 혼란이 오고 있다. 하하.



4. 집에서도 학교 놀이


학교를 마치면 집에서 일단 나랑 노는데, 늘 아들이 하고 싶은 놀이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하는 수업 놀이를 하자고 했고, 아들과 내가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 아들 반처럼)


인형들을 이리저리 모아서 그룹 액티비티를 제법 그럴듯하게 진행했다. 아이들은 정말 눈과 귀, 온몸으로 흡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얼마나 아들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었는지 진짜 동료였다면 다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물 챙겨가서 스타가 된 사연 / 그 스타의 화려한 방 / 헐리우드 액션 스타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단 최고 남발)






풀과 바다, 모래를 사랑하는 아들


요즘 하굣길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체력이 좋아진 아들이 날씨가 점점 풀리는 계절에 맞춰서 신나게 놀면서 집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언덕과 풀밭에서 한참을 뛰어 논다. 한 번은 막 누워있고 그러다가 개미에게 물려서 엉엉 울며 안겨 온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아무 데나 눕지는 않는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비치에서 노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날 바로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마 한국에서 온 수영복과 모자를 개시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이런 일이 별로 없기에 학교 마치고 가기로 약속을 했다. (점심 도시락을 다 먹으면!) 


학교를 마치고 내게 오는 아들이 ‘나 오늘 바다 못가’라고 했다. 하하. 도시락을 보니 아주 조금이어서 특별히 가기로 했다. (남은 것은 바로 차에서 먹기로 하고) 도착해서 신나게 2시간 가까이 놀다 왔다. 이렇게 하고 싶고 좋은 게 있으면 하면 된다. 말씀만 하시오~


풀, 바다, 모래



아들의 말과 글


1. 간밤의 일


갑자기 한밤중에 아들이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아빠?’라고 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웃으며 잠들었다. 꿈꾼 건가? 하하.



2. 딱 봐도


아들과 그림놀이를 하던 중 밝은 녹색을 달라고 해서 대충 아무거나 비슷한 것을 집어서 주었다.

“아빠! 딱 봐도 민트잖아!’ ㅋㅋ ‘딱 봐도’가 너무 웃겨서 그건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딱 봐도는 아빠 말투잖아 딱 봐도!” 아, 말조심! 행동 조심! 늘 해야 한다.



3. 생일 선물 선언


우리 주방에는 필요한 물건을 적는 메모 공간이 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메모가 한 장 붙었다.


‘헬로 카봇 생일에 산다!’


어떤 녀석이 본인 생일 선물을 지정해서는 사달라고도 아니고 산다고 선언을 하고 도망갔다.


목표 달성을 위한 선언문 / 자축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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