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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11. 2020

시작된 첫 경험의 행진

그리고 모든 것의 처음은 경이롭다

03/Sep/2019


한번 아프고 나서 다시 유치원에 보내는 날이 다가오자 내심 많이 불안했다. 새로운 환경에 의한 물리적,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탈이 난 것이 분명한데 그곳에 다시 보내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과정임을 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씩씩하게 등원했고 하원 시간에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 첫 영어 말하기


준영이가 영어로 선생님께 말을 건네었다고 한다. 바로 부탁할 때 ‘플리즈’와 감사하다는 ‘땡큐’였다. 바나나 껍질 까달라고 할 때 써먹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굳’이라고 말해 줬다고 준영이가 전해줬다. 다음날에는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받았을 때 ‘땡큐’로 표현을 했다고 한다.



2. 첫 영어 노래


준영이가 선생님께 핑크퐁 ‘샤크 패밀리’ 노래를 불러 드렸다고 한다. 유일하게 끝까지 아는 영어 노래여서 자신 있게 불렀다 보다. 어떤 마음과 어떤 자신감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특할 따름이다.



3. 첫 도시락 비우기


제일 걱정이던 도시락 남기기를 한 번에 해결했다! 엄마랑 도시락 다 먹기를 단단히 약속을 하고 간 날이었는데 하원 할 때 도시락을 보니 싹싹 비워져 있었다.


비결을 물으니 엄마랑 약속을 해서 배불러도 먹었다고. (하하) 어찌 되었든 이제 점심시간에도 끝까지 잘 앉아 있는 모양이다.



4. 첫 응아 혼자 하기


유치원에서 화장실은 혼자 간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청하면 되는데 기본적으로 알아서 가는 형태이다. 첫 주에는 응아를 못하고 왔는데, 둘째 주에는 당당하게 혼자서 응아를 했다! 원래 여행 가거나 친척집에 가도 며칠 동안은 끙끙 참으며 집에서 하곤 했었는데 이 정도면 꽤나 적응을 했나 보다.


잘 먹고 잘 싸면 다 된 게 아닐까?



5. 첫 그림


유치원에는 그림 그리는 공간이 따로 있어서 언제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준영이가 첫 주에는 그림을 그리고 놀지 않아서 아직 어색한가 보다 했다. 그러더니 둘째 주에 드디어 그림을 그려왔다!


매우 매력적인 색감으로 알파벳을 표현했는데 선생님도 놀랐다고 한다. (뭐 물론 여기의 다소 업 되어 있는 언어적 표현 방식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준영이에게 물어보니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매일 가서 그림 그리고 놀면 더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6. 첫 아빠의 날 선물


여기 호주에는 ‘아빠의 날’이 있다. 이번 주 월요일이 그날이었다. 그래서 그전부터 계속 모든 곳에서 광고와 프로모션을 했었나 보다. 


하원 하러 가니 준영이가 형광색 넥타이를 내게 건넸다. 뒤에 써져 있는 영어 글씨를 보니 선생님이 적어 준 듯했다. 준영이는 사실 열심히 만들었을 뿐, 아빠의 날 선물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하하)


그래도 나에겐 잠시 뭉클해진 순간이었다.



7. 첫 미용실


호주 오기 전 한국에서 미용실을 다녀온 뒤, 약 2달 만에 드디어 아들과 내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한인 미용실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 현지 미용실이 평이 좋아서 예약했다.


나도 처음이어서 매우 긴장했고, 쉽지 않은 머리 상태에 미용사분들도 당황했었다. (하하)


준영이 차례가 되어 친절하신 미용사분 덕분에 무사히 정리할 수 있었다.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준영이의 요구에 단정하게 다듬어 주셨다. 이제 여기 더워질 텐데 무슨 바람이 물어서 기르려고 하는지 속내가 궁금타.



8. 첫 집들이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좀 넘었는데, 거의 대강 정리를 마쳤다. 파랑의 학교 과제에는 조별 과제가 많은데 이를 위한 조별 모임이 필요하다. 그동안 알고 지낸 한국인 친구(동생?)들과 같은 조가 되어 조별 모임 겸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중 한 분이 집에서 기르는 3개월 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에 준영이는 며칠 전부터 설레고 있었다. 애교 많은 아기 강아지 덕분에 나와 준영이는 하루 종일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준영이에게는 처음으로 집에 초대한 손님이어서 다소 많이 흥분하기도 했지만 누군가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준영이에게는 좋은 하루였다. 조별 모임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듯했다.


김치찌개, 삼겹살, 떡볶이를 다 같이 맛나게 먹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가끔 친구들과 모여 먹던 한국 음식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파랑이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고 모두 같은 목적으로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인 모습에 여러 감정이 생겨났다. 우리를 포함해서 모두들 힘들 수 있지만 그때그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밤 잠들기 직전 에피소드


(아들) ‘나 한국이 그리워...’

(나) ‘(너무 당황해서) 응?? 혹시 왜??’

(아들) ‘여기서는 요괴 메카드 장난감을 못 사잖아...’

(나) ‘그래… 한국 돌아갔을 때 사 오자~ 칭찬 스티커 많이 모아보자~’


얼른 여기 캐릭터와 장난감에 빠졌으면 좋겠다.






확실히 준영이와 단둘이 함께 한 시간이 늘어난 만큼 친밀감이 늘기도 했지만 이와 비례해서 준영이의 떼와 짜증이 늘기도 했고 또 이에 비례해서 내 화도 늘었다. ㅡㅜ


말이 통하다 보니 가끔 4살 아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곤 한다. 35살(이제 호주 나이로 간다!) 먹은 성인 남자인 나도 감정 조절이 안되는데 반의 반의 반 밖에 살지 않은 녀석에게 기대를 너무 하고 있다. ㅠ


한 없이 받아주고 이해해주던 바로 전처럼 어른답게 생각하고 행동해보자. 이런 다짐이 매시간 매분 필요한 요즘이다. (하하) 


이렇게 우리는 새로움을 접하면서 9월을 맞이했다. 햇살이 뜨거워지는 것이 곧 여름이 오려나 보다!


첫 바이올린 연주 / 첫 유치원 그림 / 첫 집들이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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