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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07. 2020

유치원 첫날과 병원 첫날 그리고 이사 첫날

모든 것의 처음은 거의 쉽지 않다

26/Aug/2019


8월도 벌써 월말을 향해가고 있다. 그리고 여기 겨울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한국의 겨울과는 아주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이곳의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계속 경험하고 있다. 드디어 1년간 지낼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였고, 파랑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첫 과제들을 제출했다. 나는 운동을 시작했고,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코드가 하나씩 늘어났다. (각 코드들끼리 연결은 아직...)


그리고 우리 중에서도 준영이가 가장 다이내믹한 시간을 보냈는데...






대망의 유치원 첫 등원



집 주소가 정해지자 마자, 주변의 유치원을 알아보고 마침 내년에 갈 학교 부속 유치원이 조건이 우리와 아주 잘 맞아서 등록을 하였다. (등록 시 필요한 영문 예방접종증명서를 보건소에서 떼왔었는데, 짐 더미에서 찾질 못해서 한참을 멘붕에 빠지기도 하였다 ㅡㅜ)


2주에 5일 등원하며, 아침부터 2시 30분까지 부담 없이 지내다 올 수 있는 보육 시간이었다. 그만큼 전일제로 하는 곳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어서 더 좋았다! 적당한 수준으로 다니면서 천천히 적응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준영이는 유치원에 처음 등원한 새로운 첫 주를 아주 씩씩하게 보냈다. 주변의 추천도 많았던 곳이었는데, 선생님들과 환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본격 등원 전에 2번 정도 가서 둘러보고 선생님과 인사도 나누면서 준영이의 반응을 살피었고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해서 첫날 파랑과 두근두근하며 등원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혹시나 연락이 올까 조마조마했었다.


시간이 되어 나 혼자 데리러 갔는데 (파랑은 수업 중) 두 선생님께서 아주 바쁘고 굉장한 하루를 보냈다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준영이가 좋아하고 즐기는 그리기, 만들기, 블록/퍼즐 놀이 등 새로운 놀이 환경에 푹 빠져서 열심히 놀았다고 한다. (베리 클레버 보이라고 했다!) 처음 싸준 샌드위치 도시락은 거의 그대로 돌아왔지만. (ㅡㅜ)


예상보다 훨씬 더 잘 보냈다는 이야기에 파랑과 나는 준영이를 매우 대견해하며 칭찬해 주었다.




처음 노출된 영어 환경



사실 무엇보다도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직 알파벳만 읽을 줄 아는 준영이가 온통 영어로 된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을 어떻게 느낄까 하는 것이었다. 나도 대학생 시절 뉴질랜드에서 어학원에 처음 갔을 때, 온통 영어에 뒤덮여 있던 그 시기의 답답함과 무기력함을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직접적으로 불편하거나 힘들었냐고 묻는 대신, 어떤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지 하원할 때 묻곤 했다.


‘누가 준이냐고 물어봐서, 예스라고 했어~’ (오!)

‘크로커다일이 유치원에 온다고 했는데 밥 두 번 먹을 때까지 안 와서 오래 기다렸어’ (역시 동물이 최고)

‘선생님이 꽹과리 같은 거 치면 다 같이 이야기 들어야 해~’ (그래 눈치로 사는 거지!)

‘@+$%#라고 하면 뭐 한 개 달라고 하는 거야~’ (파랑과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준영이 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싸간 도시락도 거의 남기고, 응아도 유치원에서는 하지 못하고 집에서 하느라 참고 있지만 훌륭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밤새 연거푸 토한 준영



수목금 등원 첫 주를 마무리하고 칭찬 듬뿍해주고 잠든 그날 밤, 새벽에 일어나 먹었던 저녁을 모두 게워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또 한 시간 뒤 총 3번 새벽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토를 했다. 겨우 잠들고 나서 아침이 되어 좀 나아진 듯하여, 파랑이 계란죽을 주었는데 아침 먹다가 토를 2번이나 더 했다. ㅜㅜ


바로 파랑 학교 근처에 있고 우리 보험에 연계되어 있는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도착해서도 토를 또 하였고, 약 1시간 넘게 진료받고, 구토 억제제를 먹고 안정을 취한 뒤에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축 쳐져서 하루를 보내고, 무사히 밤을 보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먹은 엄마 계란죽이 먹고 싶다 하여 내가 흉내를 내어 차려주었다. 그런데 아침 먹다가 토를 또 하였다. ㅜㅜ


다시 병원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지켜보면서 더 천천히 조금씩 물과 먹을 것을 주며 돌보았다. 아프면 아기가 된다더니 안 하던 떼도 부리고 아기 때 보던 애니메이션도 보여달라 하며 준영이는 준영이대로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루를 더 무사히 보내고 나서는 더 이상 토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불안 불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무래도 면역체계와 가지고 있는 세균이 다른 호주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함께 보내면서 몸이 적응하느라 겪는 신고식인 것 같았다. 괜히 고생하는 것 같은 준영이가 마음이 많이 쓰였고, 씩씩하게 이겨내는 아들을 보며 더 찡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파랑과의 대화처럼 앞으로 우리도 준영이도 겪을 다양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 좀 더 담담해질 필요가 있었다. 아들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뮤직?  태권도?



준영이가 사랑하는 미술 수업 외에도, 다른 활동들도 경험시켜주고 싶어서 준영이와 기나긴 대화를 통해 몇 가지 클래스를 체험했다. (사전 대화가 아주아주 중요하고 오래 걸린다!)


우선 한국에서부터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태권도’에 도전했다! ‘RHEE 태권도’라는 아주 오래된 전통의 호주 전역에 있는 태권도장을 추천받아서 트라이얼 레슨에 참여하였다. 직접 참여해도 되지만 준영이는 밖에서 관찰하는 것을 선택했다. 켄 관장님의 배려로 즐겁게 참관하였고, 준영이는 태권도를 강력 추천했던 교회 형이 힘차게 수련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아직까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본격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관심사였던 음악 활동! 원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음악 클래스를 좀 알아보니, 준영이 또래들에게 음악과 친해지는 그룹 수업들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전통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으로 트라이얼 레슨을 신청하고 찾아갔다!


그날은 우쿨렐레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 한 명씩 직접 연주하고 관련된 정보를 쉽게 익힐 수 있게 지도하는 노련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인상적이었다. 준영이도 아직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내 해석을 의지해서 참여하였지만 꽤 재미있어했다. 그리하여 별도로 특별 요청을 하였고 (이 수업은 원래 부모님은 동석하지 않는다), 이해해주셔서 당분간은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 형식으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간은 하모니카 체험이었는데 어찌나 즐겁게 불던지 끝나고 나서도 더 불고 싶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던 준영이었다. 좋아하는 미술, 음악을 현지 선생님들과 경험해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면서 대견해 보였다.


물론 그런 활동을 지원하는 나 스스로가 뿌듯한 것도 크다!




본격 이사!



집을 구했으니 이사를 해야 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 모든 게 새로웠다. 다행히 타운하우스 단지여서 온사이트 매니저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가스, 전기를 이메일과 전화로 신청하고 필요한 가전, 가구 등을 최대한 세컨핸드로 구하려고 발품을 팔았다.


여기 모두 담지 못할 사연들도 많았지만 하나씩 채워지는 집을 보며 ‘참 사람이 사는데 이리도 물건들이 많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했다. 한국에서 집을 정리할 때도 그렇게나 많은 짐을 주고 버리고 왔는데 다시 여기서 살아가려고 하니 아무리 최소한으로 갖추고 살려고 해도 여러 물건들이 필요했다. 그래도 중고 물건들로 꾸려나가니 지갑 사정도 마음 사정도 훨씬 편안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2층 집에 방 3개짜리 집을 얻게 되었는데 와서 살려고 보니 우리 세 가족에게는 꽤나 큰 집이었다. 욕심을 낸 건 아니었는데 촉박한 일정에 결정을 하다 보니 나랑 파랑의 판단력이 좀 흐려졌었나 싶다. 뭐, 무튼 가족들과 친구들의 방문에 잠자리를 제공하며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다.




미니언즈 해프닝



여러 물건 들 중, 이것만은 새 거로 사자고 하여 구매한 것이 '침대 매트리스’인데 (물론 이것도 최소한의 조건으로 가장 할인을 많이 하는 것으로 구매!) 그곳에서 의미 있는 해프닝이 있었다.


가족들이 찾는 매장이다 보니, 한편에 놀이방이 있었는데 거기에 준영이를 놀게 하고 구매상담을 잘 마치고 준영이를 데리고 나와서 차에 탔다. 그런데 잠시 뒤에 준영이가 무언가를 꺼내며 어색하게 뒷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파랑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니, 놀이방에서 가지고 놀던 작은 ‘미니언즈’ 장난감을 그대로 들고 나온 모양이었다. 의도가 얼마나 섞였던지 간에 본인도 불편함을 느끼고 얼마 못 가서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매트리스 매장이 닫기 전에 나와 준영이는 손잡고 들어가서 할머니 직원분께 열심히 연습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아임 쏘리’ 할머니 직원분께서는 매우 용감한 아이라고 하시며 네가 원하면 상으로 가져가도 좋다고 하셨다. 준영이는 그 상황을 매우 당황에 했지만 설명해주고 나니 본인의 찝찝한 기분이 많이 나아진 듯 보였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상으로 받은 미니언즈 장난감은 며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서 잃어버렸다. 역시 공짜로 들어온 것은 쉽게 나가는 모양이다. 용기 있게 고백한 준영이에게 감탄과 감동을! 




이런저런 호주에서의 일들



삶에서 역시나 빠질 수 없는 게 아빠와 엄마의 말싸움인데 감정이 조절이 안 되는 상황에서 준영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참 놀랍다. 어느 날은 둘 사이에서 갑자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했다. 휴.. 네 말이 맞다, 맞지.. 그러고도 멈추지 못한 나는 너무 부끄럽다.


이래저래 바쁜 생활 속에 어쩌나 밤에 쓰레기를 버리려 나오는 길에 밤하늘을 보면 정말 놀랍다. 별이 엄청나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을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이 하늘이 그러하다. 한국에서도 물론 그런 날과 그런 하늘이 있었겠지만 볼 여유가 없었다. 별자리에 관심이 생기고 있는 준영이와 지금은 ‘남십자성’ 정도만 겨우겨우 추측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별자리와 별을 관찰하면 좋을 것 같다.


요 알파벳 타이핑은 이 글을 적는 동안 자기도 알파벳을 적어보겠다고 덤빈 준영이가 직접 타이핑한 것이다. 한글과 영어 기초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정말 감동적인 사건이다!! ‘ABCDEFGHIJKLMNOPQRSTUVWXYZ’






생각나는 대로 남기고 있는데, 이젠 ‘일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게을러진 듯하다.


몇몇 순간 너무도 익숙해진 호주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놀라고 있는 요즘,

(자연스럽게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서 우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운전한다든지..)


나에게도 파랑에게도 그리고 준영이에게도 지금의 호주 생활이 어떻게 기억될지 많이 기대된다.

(지금 당장 기대되는 것은 끝나가는 겨울 뒤에 수영장이든 바다든 뛰어들어갈 순간이다!)



기타 치기 / 유치원에서 / 미술 수업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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