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호주 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10/Aug/2019
3주 전 처음 글을 남긴 뒤, 그동안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닌 기분이었다.
분명히 그때만 하더라고 보러 다닌 집들 중, 우선순위가 높던 집으로 최종 승인이 나서 기쁘게 이사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입주 일자가 1주일, 2주일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1달 연기)
지내던 임시 숙소를 처음에는 1주일 연장하였고, 다음에는 좀 더 파랑 학교에 가깝고 가성비 좋은 임시 숙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뭔가 살짝 불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숙소 입주가 늦어졌지만, 주소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준영이 유치원과 학교의 입학 절차를 설레는 마음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설마설마하면서 눈을 의심했는데 우리가 보내려던 학교의 지원 지역에 당연히 포함될 줄 알았던 이사 갈 새 주소가 포함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 지역명이 학교와 동일해서 별 걱정을 안 했었는데...
절묘하게 경계선 바로 건너편 블록이어서 전혀 다른 학교의 지원 지역이었던 것이었다. ㅡㅜ
안일했던 나와 파랑은 잠시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입주가 늦어져서 계약 진행 전임을 다행으로 여기고 (정말 천만다행!!) 감사하며 마음을 다시 추슬렀다. 그리고 그날 새벽까지 새롭게 후보 집들을 정리하고는 파이팅하며 잠들었다.
매우 기운 빠지는 상황이었고, 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파랑과 함께 모두 잘 될 거라고 믿으며 새롭게 한주를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예약한 인스펙션을 세 가족 또는 나랑 준영이가 다니면서 빠르게 판단하며 지원을 하였다. (파랑의 학교 공부가 본격 시작되어, 주 연락 담당이 나로 바뀌어서 책임감이 커진 상황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보기도 전에 미리 지원서를 넣고 방문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파랑이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지만, 곧 해결될 것을 믿으며 집중했다. (사실 동동거리기 대장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어느 정도 최종 후보들이 나왔고, 지원서를 넣고 숨죽이며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기적같이 합격 소식이 이어졌다! (호주는 지원서를 넣고, 에이전시가 필터링한 뒤, 집주인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 ‘집주인 = 갑 오브 갑’)
그리고 드디어 바로 어제 금요일 아침 아주 일찍 가장 살고 싶었던 곳에서 연락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모든 게 일주일 동안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저 일주일 정도 늦어진 셈이었다.
이제 다음 주에 1년 동안 지낼 곳으로 정말 이사 간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우리 준영이는 아무 훌륭하게 엄마 아빠와 잘 지내 주었다. 물론 아직도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니고, 종종 굴렁쇠 가서 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로는 호주 선생님과 함께 하는 미술 클래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 수업을 너무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미술 하러 가?’라고 묻는다)
아직 호주 나이 4살밖에 안되어서, 몇몇 미술 학원에 문의를 넣었으나 어리기도 하고, 영어가 익숙하지 못한 준영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지금 다니는 곳의 선생님께서는 기꺼이 우선 한 달 먼저 같이 해보자고 흔쾌히 답을 주셨다!
처음 시작된 수업에서 아주 편안하게 이끌어 주셨고, 준영이도 수줍어하고 어색해했지만, 곧 미술에 빠져들어서 한 시간을 순식간에 즐겼다. (바로 근처에 통역 겸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용도로 내가 상주하였다 ^^;;)
돌아오는 길에는 제법 자신감이 생겼는지 ‘한번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 나 다음에 또 갈래’ 라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에서는 인사도 곧잘 하고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면 횟수를 늘리는 것을 고려 중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빠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밥을 해 먹이는 횟수도 함께 늘어났다.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다 보니 하나씩 배우며 늘려가는 중이다. (그래도 거기서 거기다)
밥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준영이에게 우리는 밥 한 끼를 즐겁게 먹으면 칭찬 스티커를 하나씩 주고 있다. 일정량을 모으면 준영이가 하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것을 하거나 사준다. 호주 와서는 처음으로 10개를 모아서 레고를 샀다!
원래는 국을 잘 안 해 먹였는데, 나도 이곳에 와서 된장국을 간단하게라도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서, 조미된 된장 팩을 사다가, 미역과 파를 넣고 밥과 함께 내었다. 그런데 준영이가 너무 맛있어하며 미역도 다 먹고, 밥도 말아먹으며 끝내주게 해치우는 게 아닌가? 곧 다소 시들해지긴 했지만, 첫 일주일 동안 매끼 해달라고 하여 신나게 먹였다.
그리고 천천히 한글과 알파벳을 놀이책으로 배워가고 있는데 이게 말이 놀이지 함께 하는 내 입장에서는 공부로 인식이 되어 준영이가 기억을 못 하거나 다른 대답을 할 경우에는 문득문득 힘이 들어가며 바로잡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이거 놀이라고... ㅠㅠ)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리는 스타일인 준영이가 며칠이 지나고 나서 갑자기 뜬금없이 지난번에 익힌 글자들을 읽고, 쓰고,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나중에 내가 너에게 글자를 알려주었다고 꼭꼭 말해주리라!!
임시 숙소에서 자면서 어느 날 아침 쉬야를 거하게 하여 아침부터 코인 빨래방으로 달려가서 빨래하고 온 날도 있었고, 첫 축구공도 열심히 골라서 마당에서 해질 때까지 차고 논 날도 있었다.
마트에서 사달라는 초콜릿을 열심히 찾다가 없어서 어쩌지 하고 있는데 ‘아빠~ 초콜릿 이제 안 먹어도 괜찮아~ 사주려고 노력했잖아~’라는 말에 마음이 정말 심쿵 한 날도 있었다.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줄어서 서운할 법도 한데 잘 지내주는 녀석이 고맙다. (왜 이런 생각은 준영이가 떨어져 있을 때만 나는 걸까?)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아빠와 잠자기 준비 & 잠들기도 엄마가 공부하느라 같이 못 잔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4살짜리 녀석이 정말 대단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나의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순간도 늘어서 욱하고 혼내는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준영이 입장이 되어서 좀 더 이해하려고 해야겠다. (미안하다 아들아 ㅡㅜ 아빠도 많이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라 ㅠㅠ)
집이 정해져서 그 지역에 있는 다른 준영이가 배우고 싶은 수업 들을 알아보고 있다. 음악, 태권도, 수영 등 하고 싶은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이제 유치원도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지내보기도 할 것이다.
넌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잘 지낼 거야!
그리고 나도 그동안 미루어 둔 운동도 다시 시작할 거고, 엊그제 구매해 버린 ‘기타’ 연습도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호주 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