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의 설렘과 낯섦
20/Jul/2019
호주에 온 지 벌써 2주가 지나고 있다. 요즘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 가족이 다 같이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파랑을 학교에 데려다주러 세 가족이 다 같이 차를 타고 나선다. 파랑을 학교에 내려다 주고 아들과 나는 집으로 바로 오기도 하고, 공원/놀이터나 해변으로 나가기도 한다. 집에 오면 미술놀이, 블록놀이 등 자유 놀이를 하다가, 한글/영어 글자 놀이를 한다. 공원/놀이터나 해변으로 가면 돗자리를 깔고 몸으로 논다.
점심을 집에서 먹거나, 나가서 이곳저곳 다니며 사서 먹기도 한다. 가끔은 빨래방도 들러서 빨래를 돌려놓고 주변에서 놀기도 한다. 그리고 오후 파랑이 학교 마치는 시간에 맞춰 아들과 데리러 가서 오늘 지낸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늦은 오후 이후에는 앞으로 머물 집을 둘러보기로 한 약속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맞춰 가고, 아니면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거나, 집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
저녁 이후에는 함께 놀이를 하거나 자유 놀이를 하다가 아들과 나는 같이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책을 읽어주고 함께 잠이 든다. 혼자 남은 파랑은 학교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든다.
어쩌면 육아휴직에 매우 걸맞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정신이 없고, 알아보고 챙겨볼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첫째 주는 정말 몸과 마음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2달 만에 다시 돌아온 곳에서 여행 때 만났던 인연들을 다시 만나면서 시작된 호주 생활을 실감했고, 아직 굴렁쇠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보면서 가슴 아프기도 했다.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해가면서 이제는 다시 만날 생각에 아쉬움보다는 기대가 크다!) 아들은 주일마다 교회를 가서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서 놀고, 나와 파랑도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와, 사용하고 있는 차량은 모두 한 달 정도 임시 렌트 상태여서 앞으로 1년간 지낼 집과 자동차를 먼저 알아보고 있다. 이곳의 부동산 프로세스는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그냥 선착순으로 되는대로 집을 보고 바로 계약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인스펙션 스케줄에 맞춰 여러 사람이 집을 보고, 정식 양식에 맞추어 제출을 한 뒤, 집주인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초반에 돌아보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마음에 들었던 집을 더 좋은 집이 나올까 봐 한발 늦게 신청하는 바람에 놓치기도 하였다. 남은 기간 동안에 좀 더 둘러보고 너무 욕심내지 않고 적정한 선에서 신청을 해보려고 한다! 아자아자!
아들이 다닐 어린이집/유치원도 몇 군데 둘러보았다. 어떻게 파악하고 신청하는지 알게 되었고 머무를 집이 정해지면 근처로 보내기로 했다. 아마 일주일에 1~2회 정도 보낼 것 같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미술 클래스를 운영하는 곳에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마침해보자는 곳이 있어서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한 번 미술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아들과 동갑내기 친구 한 명과 45분 정도 진행될 예정인데 우리 모두 기대가 크다. 그 외에도 호주 폰 개통, 은행 개설, 카드 발급, 마트 회원 등록, 다이슨 청소기 구매 등등 이런저런 일들로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도 낮에는 온도가 꽤 높고 (20~25도), 햇볕이 쨍쨍하여 반팔, 반바지는 물론이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흔하다. 그래도 일교차가 있는 계절이어서 자고 일어날 때는 따뜻하게 지내야 한다. 히터를 틀어놓는 바람에 집안이 건조하여 얼마 전에는 가습기도 장만했다. 날씨가 좋고 하늘이 맑은 덕분에 공원이나 해변에서 멍 때리며 햇살을 받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난다. 밖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적응하고 새롭게 접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이 모든 게 적당한 긴장감과 기대감 속에 흘러가는 요즘이다.
그동안 따로 글자나 숫자를 익히지 않았던 아들에게 한글과 알파벳을 알려주는 것이 처음에는 마냥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천히 놀이로 접근하면서 이제는 호기심도 생기고, 밖에서 아는 글자를 접할 때 즐거워하며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육아 담당자로서 흐뭇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차려준 밥을 맛있게 다 먹을 때나,
알려준 지식들을 써먹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아빠를 점점 더 많이 찾는 아이를 볼 때
파랑과 오늘도 함께 나눈 이야기처럼 우리의 내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고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든다. 준영이의 전매특허인
지금! 바로!
란 말처럼,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언제 그렇게 바쁘게 한국에서 지냈는가 싶다. 지금은 그냥 나와 우리 가족에게 충실하게 지내고 있다. 이 순간에 감사하며 내일을 기대하며 매일 잠든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