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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13. 2020

밥밥밥, 밥이 뭐길래~

호주 아빠 육아 일상다반사

03/Sep/2019


준영이는 요즘 폭풍 식욕이 발동 중이다. 나와 파랑의 육아에 대한 오로지 한 가지 고민은 ‘어떻게 하면 준영이가 좀 더 많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인데, 요즘 같기만 하면 고민이 아니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요 며칠 사이에 밥과 관련된 많은 일이 있었는데...


6시면 일어나서 배고프다고 엄마 아빠를 깨우곤 한다. 깨자마자 먹고, 엄마 아빠 아침 먹을 때 또 먹는다.


며칠 전에는 파랑을 데려다주고 와서 오전을 보내고 있는데 11시도 되기 전에 또 밥을 달라는 것이 아닌가?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장난도 섞여 있는 것 같아서 이른 점심 먹을 테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몇 분 뒤에 또 밥 달라고 떼를 쓰길래, 시계를 보여주며 30분 뒤에 먹을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더니 세상 억울하고 서운했는지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는 밥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왜 밥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 ㅜㅜ’


헉, 이 녀석 진짜 배고파서 그랬나 보다. ㅡㅜ 그날 밥을 차려주고 먹이면서 수차례 사과를 했다. 그리고 준영이는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밥을 먹었다.


유치원에서도 도시락을 계속 비워나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 하원 하러 갔을 때 선생님이 나를 붙잡고 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일은 도시락 양을 좀 늘려서 싸주셔야 할 것 같아요~ 오늘 모닝티 시간에 점심까지 다 먹었어요~ 점심에는 제가 딸기라도 주려고 했는데 안 먹더라고요...’


헉, 아침에 더 싸주고 싶었는데 준영이가 많이 안 가져가고 싶다고 했는데,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고는 준영이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 아침 간식 때, 모자라서 내가 점심 도시락까지 가져다가 먹었어~’

‘점심 때는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팠겠네? 선생님이 주신 딸기라도 먹지 그랬어? ㅜㅜ’

‘아, 딸기는 아침에 집에서 먹어서 안 당겨서 안 먹었어~ 그냥 나는 놀았어~’


으휴 ㅜ 이건 너무너무 속상한 상황이었다. ㅠㅠ


바로 집에 있는 파랑에게 전화해서 밥을 준비해달라고 하고는 집에 가서 밥을 먹였다. 얼마나 잘 먹는지, 괜히 그 모습에 더 찡했다. 준영이도 아침 간식 때 너무 배고파서 점심인 줄 알면서도 먹어버렸다고 한다. 아빠 엄마가 좀 더 넉넉히 싸가라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은 아주 넉넉하게 싸가기로 하였다!


밥 먹는 양이 날로 커가는 걸 보니 쑥쑥 크려나 보다. 이런 웃픈 해프닝은 더 이상 없기를!


(점심시간에 옆에 있는 친구가 ‘런치박스 가져와’라고 했는데 비어있는 도시락을 가져와서 보여주기 싫었다고... ㅜㅠ) 






추가 에피소드 1. 휴머 센스


하원 할 때마다 이번 주에 두 선생님께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준영이는 휴머 센스가 있어요~’


처음에는 ‘휴먼 센스?’ 인간 감각이 있다고? 뭔 소리지 했는데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우스운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고 말씀하신 모양이었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깔깔대며 오래 웃었다고 하고, (준영이도 빵 터지면 꽤 오래 킥킥대며 계속 웃는다) 오늘은 어떤 친구 한 명이 울먹이며 선생님께 안겨 있을 때

준영이가 그 친구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정말 아이들의 적응력은 아주 대단하다.


아직 자유로운 대화가 되지 않아 불편해서 가는 것 자체를 꺼릴 법도 한데 준영인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여 지내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추가 에피소드 2. 악기가 좋아


매주 음악과 친해지는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다니고 있는데 이번 주는 ‘기타’였다. 


아무래도 집에서 아빠가 깔짝대고 있는 악기라서 그런지 훨씬 친숙하게 수업을 들었다. 마구 연주하는 폼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아직 언어의 장벽으로 내가 옆에서 통역 역할을 특별히 허락받고 수업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데 수업을 즐겁게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아빠도 눈으로 다 배웠지?’


아빠도 기타 배우는 중이니 오늘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웠냐고 묻는 것이다. ‘응응 그렇지 준영이 배운 만큼 아빠도 열심히 다 배웠지!’ 휴 녀석... 뭔가 확인하는 본새가 나랑 닮아서 순간순간 움찔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파랑과 준영이가 고대하던 ‘키보드’를 드디어 집에 들였다! 호주 중고나라 ‘검트리’에서 발견하여 밤늦게 가져온 녀석이다. 거실 한편에 키보드와 기타가 놓여있으니 꽤 그럴싸해 보였다.


판매하신 아저씨가 자기 아들 가르친 책이라며 준영이 용으로 어린이 피아노 학습 교재도 잔뜩 주셨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준영이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었다. 이제 열심히 즐기고 익혀서 준영이가 좋아하는 ‘공연’을 하면 된다.




추가 에피소드 3. 아빠의 일상다반사


내게도 호주에서 지내며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1.

어느 날은 멍하게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순간적으로 헷갈려서 남의 차선을 침범하였다. 다행히 마주 오던 차는 멀리 오고 있어서 사고의 위험은 없었는데 그 차 운전자는 그게 심하게 마음에 안 들었었나 보다. 강력한 퍽유를 날려주고는 지나갔다.


나름 기분이 상해서 정신 차리고 운전을 하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날 아침에 하던 모바일 게임에서 잘 안 풀렸던 부분을 고민하느라 그랬던 것 같았다. 바로 차를 잠시 세우고 삭제를 했다. 비록 아침저녁으로 잠시 한다고 하지만 하루 종일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줄었던 독서 시간이 늘어났다.


2.

우리가 있는 단지는 매주 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치워준다. 이번 주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모두 치워주는 날이어서 이사 오면서 발생한 수많은 박스들도 쓰레기통 옆에 가지런히 두고 잤고 다음날 아침잠이 일찍 깨서 (역시 게임을 지웠더니!) 비슷하게 깬 준영이와 (넌 왜…?) 놀아주고 있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어마 무시하게 큰 대형 차량이 멀리서부터 쓰레기 통을 비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사람이 직접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계로 쓰레기통을 집어서 대형차량에 거꾸로 부어서 비우고는 다시 내려놓으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쓰레기통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박스더미는 당연히 덩그러니. 괜히 민망함에 차가 지나가자마자 나와서 정리를 해두었다. 다음번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ㅡㅜ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엄한 곳에 항의를 하거나 알 수 없는 궁금함에 답답했을 것 같다.


3.

수입이 없는 나에게 한 줄기 빛이 생겼다! 한 달 전에 신청했던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된 것이다. 


처리해주신 담당자분과 지난주에 극적으로 통화연결이 되어 이번 주에 바로 처리되었다. 파랑과 내가 육아휴직이 겹치는 기간이 있어서 어느 사람이 휴직급여를 받을지 확인을 하고자 여러 번 연락을 주셨었는데 우리 둘 다 주로 현지 유심으로 생활하다 보니 계속 엇갈렸었나 보다. 내가 우연히 유심을 변경하고 공공기관에서 전화 온 듯한 콜키퍼 메시지가 있어서 콜백을 하였더니 연결이 되었다. 다행히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빠르게 진행해 주셨다.


당장 환전을 매번 할 수가 없어서 한국에서 생기는 돈은 우선 자유적금 식으로 모아두기로 했다. 수입이 없을 때 하는 적금이라니... 뭔가 더 비밀스럽고 소중한 느낌이다.


4.

같은 맥락에서.. 부끄럽지만 수입이 사라진 올해에는 그동안 파랑과 같이 해오던 기부를 모두 중단한 상태였다. 지난주 주일 교회에서 영상으로 ‘컴패션’ 홍보대사인 배우 차인표 님의 간증 겸 홍보 영상을 보고는 갈등이 생겼다. '당장 먹을 것 걱정이 없는 우리가 더 힘든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이 맞는 건인가?'


파랑과 같은 고민을 나누었고, 기부를 내게 알려준 파랑은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라며 새로운 결정에 동의하였다. (다행히 파랑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 것인데 가끔 기분이 상하다가도 차라리 이런 편이 내가 사는 데는 유리하겠다는 생각에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잠시 끊었던 기부를 컴패션을 통해 온 가족이 이야기하며 새로운 1:1 후원 아동을 함께 정해서 시작하였다. 준영이도 아가일 때보다는 어떤 의미로 우리가 이 아이를 후원하는지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 더불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보다 감사하며 지낼 수 있기를!






아무 일 없이 잔잔할 것만 같던 호주 생활이 이런 소소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삶은 새로움과 변화의 연속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아, 날이 더워져서 단지 내 공용 수영장에 다녀왔다. (그것도 혼자서! 아무도 없었다!!) 수영장에 앉아서 정확히 2달이 지난 후에야 지인들에게 근황을 알렸다. 이제야 좀 마음의 안정과 여유가 찾아왔다는 나 스스로의 증거인 셈이다.


벌써부터 연말에 방문해 줄 가족과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여기 와서 처음으로 설레기 시작한 걸 보니 정말 그러한가 보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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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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