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Oct 25. 2020

베리 카인드 리틀 젠틀맨

우리가 사랑하는 호주 날씨가 갑자기 돌아왔다

22/Sep/2020


지난주 목요일, 그러니까 Term 3 마지막 하루 전날에 아들 담임 선생님과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코로나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 공부로 바쁜 파랑도 짬을 내어 참석해 주었고 어쩌다 보니 세 가족이 모두 모여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화기 앞에서, 아들은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 전날 선생님께서 전달해주신 학업 발달 사항(?) 관련해서는 질문 사항은 없었다. 잘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아카데믹한 부분은 서로 기대 이상이며 매우 놀라고 있다고 덕담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이곳의 낙천적 스타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궁금한 것은 2가지 정도여서 질문을 했다.


(우리) 아들이 매번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서 밥을 남겨온다는데 사실이야?

(선생님) 하하. 준이 이제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잘해서 같이 노느냐고 그래~ 이제 말 아주 잘하거든~ 그래도 내가 더 살찌게 만들어볼게~


(우리) 아들이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있어?

(선생님) 그럼~ 준은 아주 샤이닝하고 카인드하고 리틀 젠틀맨(A very kind little gentleman)이야! 친구들하고 우리 선생님들이 준에게 고맙다고 자주 이야기한단다.


그렇게 기분 좋게 통화를 마무리해나가고 있다가 아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며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지금 옆에서 아들이 우리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어. 하하. 아들은 항상 물어봐. 쉬고 나서 월요일에 가면 선생님들이 바뀌는지 안 바뀌는지. 선생님들이 너무 좋데!

(선생님) 하하. (아들 들리게 큰 소리로) 준~ 걱정하지 마~ 난 여기 계속 있을 거야~


마음 놓인 아들은 다시 그림 그리는 것을 계속했고 우리는 전화 인터뷰를 기분 좋게 마쳤다.


A very kind little gentleman



아들이 그때 그리고 있는 그림은 바로 선생님들께 선물할 그림편지였다. 매번 Term 마지막 날에 직접 그려서 선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열심 집중해서 그렸다. 그리고 우리는 가볍게 드실 한국 과자를 넣어드리는데 아들이 그것에 대해 물어봤다.


(아들) 그냥 그림만 선물하면 안 돼?

(우리) 왜?

(아들) 아 저번에 과자 이름을 물어봐서 영어로 세 번이나 읽어줬는데 못 알아들어서


하하. 계속 알려줬는데 아무래도 한국식 이름이다 보니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었나 보다. 이번에는 설명하기 쉬운 과자라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완성한 그림은 얼룩말과 고양이였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에 기린을 선물 받은 선생님께는 동일하게 집에서 키울 수 없는 얼룩말을, 강아지를 선물 받은 선생님께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고양이를 그렸다.


선생님들께 드릴 그림을 그리는 홍카소 / 완성 작품



그리고 드디어 방학 전 마지막 날 등굣길!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강당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신나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교문에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리듬에 몸을 맞춰 춤을 추셨고 이를 본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 이미 방학을 즐길 준비가 되었구나? 하하’


이렇게 춤을 추고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아들은 아주 기분 좋게 선생님께 드릴 선물과 편지를 가지고 등교했다. 아침에 가자마자 ‘나 선생님을 위한 깜짝 놀랄 것이 있어’라고 하며 드렸다고 한다. 하하. 


그렇게 기분 좋게 이번 Term을 마쳤다. 이제 방학이다!


신나는 마지막 등굣길






<학교에서 주고받는 그림과 장난감>


1. 그림 이야기

그런 날이 있다. 아들과 분위기가 좋아서 무슨 말이든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것 같은 날. 그때를 틈타 물어봤다. 학교에서 언제가 제일 재미있냐고. 프리 드로링 시간이란다. 역시 홍카소 인가. 하하.


그리고 혹시 여자 친구들하고도 놀 때가 있냐고 했더니. 역시 프리 드로링 시간이라고 한다. 뭐하고 같이 노냐고 했더니 어떤 친구가 자기 그림을 보고 똑같은 그림 그려달라고 하면 그 친구 이름을 적어서 선물한다고 한다. 귀여운 녀석. 다행히 남자 친구에게도 똑같이 선물을 해 준다고 한다. 잘했어.


그리고 마지막 날 개인 사물함(트레이)을 모두 비우라고 해서 담겨있던 것들을 모두 가져왔는데... 아들 그림이 아닌 그림들이 섞여 있었다. 아들 이름이 적혀있는 친구들이 선물로 준 것들이었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아들이 달라고 해서 준 것은 아니고 그냥 친구들이 아들도 모르게 넣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너도 가끔 그렇게 그려서 넣어주기도 하냐고 했더니 자기는 달라고 안 하면 안 준다고. 하하.



2. 장난감 이야기

가끔 학교에서 소소하게 럭키 드로우(뽑기)를 해서 작은 장난감을 받아온다. 이름을 적어 넣고 뽑아서 나온 학생이 그날 준비된 장난감 중 하나를 가져오는 식이다. 어느 날은 아들이 교실에서 주는 것과, 저금하는 은행에서 주는 것을 모두 가져온 날이 있었다. 선생님도 오늘 아들이 굉장히 운이 좋은 엄청난 날이었다고 놀라셨다고 한다. 흠… 이제 로또는 아들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개인 장난감은 못 가지고 오게 되어있는데 뭐 그게 정확히 지켜지진 않는 것 같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생각해봐도 ㅎㅎ) 어느 날은 친구가 주었다며 마트에서 랜덤 상품으로 주고 있는 장난감을 받아왔다. 그 친구는 같은 게 2개 있다며 아들 없는 거라고 주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인 뽑기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며 괜히 반가웠다. 하하.




<아들 어록 추가>


1.

어느 날 밤에 잠이 들었는데 (아마도) 아들이 내게 와서 뽀뽀를 해 준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했더니...


‘내가 잠이 잘 안 와서 놀다가 아빠한테 가서 뽀뽀한 거야~’


하하. 이런 적이 처음이라서 신기했다.



2.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가는데 아들이 갑자기 이랬다.


‘난 마트 가는 거 싫어해. 너무 심심해.’


생각해보니 카트에 싣고 다니면 늘 ‘언제 계산해?’라고 했던 것 같다. 이제 가급적 아들 없을 때 파랑이랑 장을 봐야겠다. 



3.

아들은 헬로카봇을 요즘 즐겨보고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다. 한 번은 어떤 로봇을 그리더니 그 로봇이 한 말이 생각났다며 이랬다.


‘그 로봇이 이랬잖아~ 죽을려면 살 꺼고 살려면 죽을 꺼다.’


뭔 소리인가 했더니 이순신 장군님의 말씀을 만화에서 인용했었던 것이다. 하하. 접하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아이들의 놀라움이다.


레고 / 바다 / 모래






아들은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도 물론!)


학기 마지막 날에는 다 모은 칭찬스티커를 가지고 정말 오랜만에 레고를 선물 받았고, 토요일에는 우리 세 가족과 파랑 학교 동기 세 가족과 함께 아침부터 밤까지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여행처럼 놀았고, 월요일에는 수영장에 가고 싶다는 아들과 오랜만에 단지 수영장에서 단 둘이 호캉스를 오래 즐겼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호주 날씨가 갑자기 돌아왔다.


오랜만에 단지 내 수영장에서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교보문고 https://bit.ly/3u91eg1 (해외 배송 가능)

예스24 https://bit.ly/3kBYZyT (해외 배송 가능)

알라딘 https://bit.ly/39w8xVt

인터파크 https://bit.ly/2XLYA3T

카톡 선물하기 https://bit.ly/2ZJLF3s (필요한 분이 떠올랐다면 바로 선물해 보세요!)

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가장 밀도 있는 대화 시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