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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21. 2020

대낮에 아시아인 남자가 TV를 들고 살금살금 빠져나오는

너 지금 나보고 열쇠로 열고 혼자 들어가서 물건 가져가라는 거야?

22/Sep/2019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


준영이의 짧은 2주간의 방학이 다음 주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준비를 해두었다.



1. TV 구매 및 설치 완료


우선 한국에서는 오히려 아예 틀지도 않고 없애려던 TV를 장만했다. 이곳의 아이들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캐릭터와도 친해지고 영어와도 친해지기를 바라서였다. 


원래는 새 제품을 사러 갈 계획이었으나, 호주판 중고나라인 ‘검트리’의 매력에 빠지는 바람에 새벽부터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서 당일 픽업&구매를 예약하였다. (지금도 판매 중인 제품을 반값 이하로 팔고 있었기에 안 살 수가 없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현관 앞에 도착을 하였고 신나게 문자를 남겼다.


(나) ‘나 여기야~ 너희 집 대문 앞~’


답이 없었다. 불안했다. 결국 5분 뒤 하기 싫었던 전화를 하였다. (다들 알겠지만 안 보이는 사람과 영어로 통화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ㅡㅜ)


(판매자) ‘오 준~ 미안해~ 내가 지금 급한일이 생겨서 밖에 나왔어~’

(나) ‘(뭐 하는 거지 이 사람…) 엥? 얼마나 걸리는데?’

(판매자)‘응.. 15분 정도 걸릴 것 같아 ㅡㅜ 미안해~’


하... 그래 내가 급하니 기다려야지라고 생각 중이었는데...


(판매자)‘대문이 잠긴 것 같은데 그거 손으로 넣어서 열면 열리거든, 열고 들어가서 화분 밑에 숨겨둔 열쇠를 찾아서...(어쩌고 저쩌고)’

(나)‘(일단 듣고 있음)…'

(판매자)‘준~ 지금 들어가고 있지?’

(나)‘(!?!?!?! @.@) 잠깐만, 너 지금 나보고 열쇠로 열고 혼자 들어가서 물건 가져가라는 거야?’

(판매자)‘응응 열쇠 찾아서 TV 잘되는지 확인하고 가져가~ 돈은 남겨두고~’

(나)‘아 정말? 알았어 키는 찾았고 돈은 테이블에 두고 갈게!’


이렇게 무단침입을 하게 되었고, 이 정도 신뢰면 물건은 보나 마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TV는 완전 새거나 다름없었고 잘 챙겨서 빠져나왔다. 나오면서도 다른 이웃이나 주인집이 보면 어쩌나 별 생각을 다했다. (대낮에! 아시아인이! 남자가! 커다란 TV를 들고! 살금살금 빠져나오는!)


다행히 무사히 차에 넣고, 집에 가는 길에 전자마트에서 전원 연장선과 TV 수신 연장선을 구매해서 왔다. 무사히 설치를 마친 뒤 유치원에서 데리고 온 준영이에게 자랑스럽게 ABC KIDS 채널을 보여주었다. 판매자에게도 문자가 왔다.


(판매자)‘너무 고마워~ 내가 현장에 없었던 거 정말 미안해~’

(나)‘엉 나도~ 잊을 수 없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어~'


오늘도 평화로운 검트리였다.



2. 스쿠터 새로 구매!


지난번 한국에서 정말 열심히 가져온 스쿠터(=킥보드)가 고장 나서 수리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어설프게 수리를 한다 해도 사고위험이 있기에 처분하고 새 것을 사야 했다. 


우리의 준영이는 똑같은 것을 사고 싶다고 여러 번 의견을 내었으나 여러 번의 설득 끝에 새 스쿠터를 위한 여정을 떠났다.


우선 중고 오프라인 샵인 ‘옵샵’. 여기 스쿠터는 정말 아니었다. 너무 지저분하고 낡은 상태여서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엔 대형마트 A. 준영이는 노란색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장 난 스쿠터가 노란색...) 이 녀석이 골라보지도 않고 떼를 쓴다고 생각되어 화를 낼 뻔했으나 파랑의 중재로 일단 최대한 참아보았다.


다시 대형마트 B. 가는 길에 파랑의 설명으로 이번에는 잘 골라보기로 하였다. 다행히 우리와 준영이의 조건에 부합하는 녀석이 있어서 바로 합격점을 주고 사 왔다.


집에 와서 조립 후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니 마음에 들어했다. 더 큰 소리 안 내고 방학 중에 에너지 소진을 책임져 줄 새 스쿠터를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3. 이웃사촌의 저녁 초대


우리가 거주하는 타운하우스 단지에 바로 옆 옆 옆집 정도에 한국인 가족이 살고 계신다. 준영이보다 1살 많은 누나와 아기 강아지, 그리고 부부가 계신다. 우리 이사 오는 날부터 오셔서 인사해주시고 수시로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어제저녁 식사 초대도 해주셔서 우리 가족은 ‘한국 과자 선물’을 들고 방문하였다. 이런저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9시가 되었다. 준영이가 지난번부터 누나를 잘 따르더니 둘이서 쿵작이 잘 맞는지 정말 신나게 잘 놀았다. 이제 방학이니 자주 만나서 놀기도 하고 다음에 우리도 초대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훨씬 먼저 결심하시고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계신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겪으신 여러 마음고생들을 전해 들으니 모두가 쉽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모든 장점 중에서도 아이들이 자라기에 너무 좋은 환경임을 서로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하며 이곳의 풍요로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기운을 받고 왔다.






안도와 걱정 속에 마친 TERM 3


5주간의 유치원 생활을 무사히 잘 마쳤다. 대견한 준영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첫날부터 엄마 아빠와 떨어지며 있어준 것이 정말 놀랍다.


이곳은 1년에 총 4 TERM의 기간으로 운영되는데(학교도 마찬가지) 한 TERM이 10주이다. 준영이는 중간에 들어가서 절반을 다닌 셈이다.


다음 TERM에 대한 고민 상담이 있어서 원장 선생님과 마지막 전날 면담을 진행했다. 우리의 고민을 바로 이해하셨고 다행히 그동안의 경험과 파악하고 계신 준영이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큰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준영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으신 게 느껴져서 믿음이 갔다. 안심하고 돌아오며 다음 TERM에는 5일 전체를 보내기로 말씀드렸다. (지금은 2.5일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의 문화가 그렇기에 칭찬 섞인 말들이 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들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든 사랑을 받는 준영이의 매력에 놀라우면서도 참 감사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사실을 파랑과 나는 알 수 있었다.






유치원 에피소드


1. 레몬은 영어로 뭐야?


준영이는 하루에 1번씩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어느 날은 노란색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고 고민 끝에 노란 레몬을 그렸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레몬이 영어로 뭔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레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하원 할 때 나를 붙잡고는 ‘준이 레몬이라고 말했어~ 영어 단어를 하나씩 배우고 있어~’. ‘덕분이에요~’ 하고 나왔는데 준영이가 ‘아빠~ 레몬이 영어로 뭐야?’.


‘@.@ 너 레몬이 영어인지 모르고 그냥 레몬이라고 한 거야?’

‘응 생각하다가 몰라서 그냥 한글로 레몬이라고 했는데?’

‘아, 레몬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과일이 아니어서 그냥 영어 그대로 우리가 부르는 거야~’


뭐 어느 길로 가든 서울로 가면 된다고 했으니 이렇게 준영이의 똑똑이 점수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2. 새로운 친구 이름과 놀이들


항상 우리는 궁금해한다. 어떤 친구와 어떻게 놀고 오는지. 한국에서도 주로 혼자 놀이를 많이 하는 친구이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래도 좀 더 친구들과 상호작용 놀이가 많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가끔씩 이야기해주는 새로이 알게 되는 친구 이름과 놀았던 이야기는 참 반값다.


‘오늘은 000이라는 친구 이름 알았어~’

‘준영이가 물어봤어?

‘아니 선생님이 000이라고 부르면 그 친구가 대답하거든~’

그래 내 아들답다 (하하)

‘오늘은 000랑 잡기 놀이했어~’

‘오 그래? 어떻게?’

‘내가 공룡으로 무섭게 하면 그 친구가 도망가~’


괴롭힌 것은 아니길 바라며...






준영이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파랑도 다음 주면 '여왕 생일 주’여서 학교가 휴강이다. 오랜만에 세 가족이 호주 여행 온 기분을 좀 내 보려고 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이곳! 오길 참 잘했다. 용기 내길 참 잘했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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