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들의 눈물
19/Sep/2019
호주에서 첫 추석을 보냈다. 사실은 정확히 언제가 추석인지 몰랐다. 단톡 방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이 즈음이 추석인가 보다 하고 있었다.
추석 당일 오후 즈음에 알게 되어 세 가족이 모인 저녁에야 영상통화로 양가에 인사를 드렸다. 날씨도 그렇고 이곳의 휴일이 아니다 보니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곳에서 추석 분위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준비해주신 바비큐 파티 덕분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찬양연습을 교회에서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찬양팀 단합대회 겸 모여서 식사를 하였다.
그동안 야외 바비큐 시설을 오며 가며 보면서 우리도 한 번 해봐야겠다고 몇 개월째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소원을 풀었다! 맛나게 먹으며 많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 주일에도 예배를 마친 뒤 오랜만에 오신 한 가정의 티타임 번개에 참여했다. 아이들도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각각의 사정으로 이곳에 모여 살게 된 분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것도 크나큰 우연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추석은 저물어갔다.
나는 이번에 드디어 집수리&정리를 마무리했다.
중고로 사 온 야외 의자들을 온라인 배송으로 받은 도구를 가지고 몇 시간 낑낑대며 그럴듯하게 수리해 두었다. 완제품인 줄 알고 구매한 책상 2개도 조립 부품을 받아와서 몇 시간 낑낑대며 책상 방에 들였다. 덕분에 아침 햇살 맞으며 아침 여유를 즐기게 되었고 덕분에 나와 파랑의 공부방 겸 서재가 생겼다. 물론 준영이는 장난감들과 함께 그 경계를 마음껏 오가고 있다
파랑은 몇 주간 준비하던 조별 과제를 성공적으로 발표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 현장에 나와 준영이도 방문해서 그 열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다면 하는 친구지만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리고는 남은 과제와 시험 스케줄로 다시 달리려 하고 있다. 넌 참 대단해! 파이팅!!
우리 노랑이 준영이는 바빴다. 주일에 있던 친구 생일 파티 선물을 열심히 골랐고 그 친구와 친구 어머니께서 너무 만족스러워해서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마당에 흙을 파고 싶은 게 소원이었던 준영이는 먹고 남은 귤 씨를 심어보려다 실패했고 사은품으로 받은 허브들을 미니 화분에 잘 심어서 물을 주며 지켜보고 있다. 제발 싹이 트기를 파랑과 내가 더 바라고 있다.
아, 어른 예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준영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왔는데, 깜짝 놀라 물으니..
'아동부 예배 마치고 쉬야 마려운데 어른 예배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
그리고 앞쪽으로 오면 방해될까 봐 안 갔어.
못 참겠어서 사모님께 데려다 달라고 했어.’
장난치느라 예배 중에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이렇게 이해하고는 열심히 참고 있었던 것이다 ㅜ
화장실을 데려가서 볼일을 보게 한 뒤, 안아주고는 칭찬하며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가끔씩 보이는 이런 기특한 모습에 많이 크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어제 유치원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옆 학교에 있는 형, 누나들 교실에 방문해서 함께 수업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때 바로 옆이긴 하나 아이들이 20명 정도라서 함께 봐줄 부모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잠깐 고민하다가 준영이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당연히 반겼지만) 오전에 등원하면서 선생님에게 자원 의사를 밝혔다! (이미 다른 분들이 있어서 무리는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런데 그날따라 준영이의 유치원 등원이 시원치 않았다. 차에서 내리면서 아직 등원할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여 좀 기다려 주었고 바로 문 앞에서 갑자기 울상을 지으면서 아빠와 좀 더 있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30분이 넘게 유치원 곳곳을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흔한 감정의 변화라고 설명해 주셨고 생각해보니 3년 가까이 다닌 굴렁쇠에서도 가끔 그랬던 생각이 났다)
파랑을 학교에 데려다 줄 시간이 되어 준영이에게 아빠가 곧 다시 와서 학교 투어에 같이 갈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파랑은 집에서 학교 갈 준비 중 - 혼자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파랑 픽 드롭 후 집에 잠시 있다가 시간 맞춰 유치원에 다시 왔는데 준영이가 어쩐 일인지 원장 선생님에게 안겨 있었다. ㅡㅜ
선생님들 설명을 들어보니 학교 투어 간다고 준비를 시작하게 되자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고. 오전에는 별일 없이 잘 놀다가 갑자기 그래서 학교 투어를 가기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우는 준영이를 달래고 물어보니...
‘아빠가 온다고 했는데 안 와서 울었어 ㅜㅜ’
다른 도우미 엄마들은 왔는데 오기로 한 아빠가 안 보여서 서러웠다고 한다. 늦은 것을 사과하고 (정시간이었으나...ㅡㅜ) 손을 잡고 학교 투어를 떠났다.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아이들 손도 잡고 즐겁게 출발했다. 너는 이름이 뭐냐며, 내가 준 아빠라며, 준이랑 영어도 많이 하고 재밌게 놀라는 둥. 서로 완성되지 않은 영어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며 가는 길을 보냈다.
형, 누나 교실에 방문해서 선생님의 책 읽기도 듣고 몸으로 하는 게임도 하고 한 형님의 그림 선물과 책 읽어주기 선물도 받고 돌아왔다. 아빠가 한편에 서 있어서 그랬는지 좀 더 편안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한 도우미 어머니도 외국에서(아마도 러시아?) 오셨는지 그 아들을 나와 같은 시선으로 돌보고 있었다.
무사히 유치원에 복귀시키고 다시 밝게 헤어지고는 다시 집으로 왔다. 하원 할 때 다시 만난 준영이는 매우 밝았고 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 오늘은 아빠를 유치원에서 3번이나 봤네~’
정말 어제는 함께 유치원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번 주 미술시간도 아주 어메이징 했다.
최근 뉴스에 많이 나왔던 산불을 보고는 그리고 싶다고 해서 진행되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의 코멘트처럼 이건 누가바도 리얼한 산불 현장이었다. 매주 감탄하고 있지만 이번엔 그 이상을 그려와서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주 트롬본 사건으로 다소 위축이 되었을 까 걱정을 하고 참여한 마지막 음악시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마지막 내용은 그동안 접했던 다양한 악기를 마음껏 골라서 다 같이 연주하는 ‘밴드 데이’였다. 준영이는 하고 싶은 악기들을 차례차례 골라서 정성껏 연주하였다.
처음에는 우쿨렐레, 다음은 바이올린, 그다음은 키보드, 그리고 나머지는 안에 돌과 모래 같은 게 들어있어서 흔들며 리듬을 타는 그 악기.(이름을 여러 번 들었으나 도저히 모르겠다)
만족스럽게 마치면서 이제는 아빠 없이 다음 텀의 수업을 참여해 볼 것을 약속해주었다.
깜짝 놀라게도 영어를 아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지난번에는 굿모닝을 이번에는 유얼 웰컴을 영어 알려주는 귀여운 친구에게 배워왔다. 어제는 땡스라는 말도 고맙다는 말이라며 알려주었다. 어떤 친구들은 땡큐라고 이야기 안 하고 땡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관찰력을 가진 준영이는 열심히 귀와 눈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준영이 스타일대로 아주 천천히 소화해내며 성장하고 있어서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요 며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생기고 있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파랑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걱정’이다. 걱정을 덜 하려고 왔는데 이렇게 또 그러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하진 않다.
가장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믿으며 마음을 가라앉혀 본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