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나를 어떤 아빠로 생각하고 있을까?
25/Sep/2019
요즘 난 아들과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다. (즐거운 유치원 방학 덕분에 더욱더 밀접하게)
내가 기억이 생긴 이후에 누군가 하루 종일 함께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파랑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임신기간과 출산을 한 뒤에 육아를 하면서도 이렇게 단 둘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써 본 적이 없었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몸의 피로도 왔다가 갔다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감정’ 조절이다. 한 없이 사랑스러운 내 자식임에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기분이 좋고 나빠진다. 물론 아주 간단하게 좋다/나쁘다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고 수백, 수천 가지 미묘한 감정 변화를 겪는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얼마나 아들을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준영이에 대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준영이 그림이 예전 보다도 더 감정적으로 가까이 간 것 같고, 그림과 소통하는 준영이가 느껴진다
혹시 그렇게 깊어진 준영이가 무엇 때문일지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잠깐 생각을 한 뒤 이렇게 적어 보냈다.
'깊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설명을 해보자면 이 정도 일듯 합니다.
준영이는 감정의 표현을 남에게 바로 하는 친구가 아니에요.
속으로 여러 번 생각하고 다듬으면서 시간을 오래 가지는 편이에요.
아직도 인사를 먼저 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표현을 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리지요.
그런데 그림은 남에게 직접 행동해서 표현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혼자서 그림을 많이 그리면서 표현을 해왔어요.
집에서도 그 환경을 조성해주려고 어디에 있든지 간에(여행 포함)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 바로 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갑니다.
사실 가장 큰 영향을 준 환경은 ‘굴렁쇠 어린이집’이었어요.
거기서 많은 표현활동을 많이 하며 지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낙서 같은 그림 조각들도 모두 모아서 이야기책을 만들어서 만들어주셨어요.
그런 것들이 그림으로 속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여기와 서도 다른 활동 보다도 미술 수업을 제일 먼저 시작하게 하였고 지금도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다른 여러 경험을 더 해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는 무언가 그려서 표현하는 것을 준영이가 가장 즐기고 있어요.'
그리고는 아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엄마 아빠 아는 친구가 준영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물어봤어~’
‘그래서 뭐라고 말했어?’
‘아,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해주었어, 맞는 거 같아?’
‘응 맞아’
의미나 뉘앙스가 다르면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맥락이 맞았나 보다. 어쩌면 한 사람을 어떻게 다 파악하고 알 수 있을까도 싶다. 우리도 우리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지 않은가.
나는 우리 아들을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많이 알지 모르겠다. 준영이의 세상은 계속 더 커질 것이고 나와 함께 하고 내가 아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계속 줄어갈 테니. 그래도 아들에게 아빠로서 한 부분을 제대로 차지하고 싶은 게 나름의 욕심이다.
그리고 문득 궁금하다. 내 아들은 나를 어떤 아빠로 생각하고 있을지.
아, 지난번에는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외출 중에 갑자기 당장 물을 먹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엄마가 설명을 해주는데..
‘아들~ 싸온 물을 다 먹어서 바로 근처에 가서 사서 먹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줘~’
‘안돼~바로 먹을 거야! 지금 만들어줘!’
‘물을 만들려면 이것저것 필요해서 지금은 어려워, 그러니 기다려줘~’
‘물을 만들려면 번개와 산소가 있으면 되니까 그거 가져와서 만들어줘!’
엥? 이건 또 어디서 알게 된 거지? 파랑과 나는 놀라서 준영이에게 물었다. 급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내가 확인을 하였다.
‘혹시 너 예전에 아빠가 읽고 있던 책,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준 내용을 기억한 거야?’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하하) 바로 최근에 읽은 책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몇 줄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물을 만드는 화학적 역사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고는 말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아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지난 주일에는 교회 가족 댁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다. 수영장이 있는 하우스여서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하며 놀았다. 처음에는 고민하던 준영이도 막판에 발동이 걸려서 물에 들어갔다. 친구 형님 누나들이 잘 놀아주어서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게 원인이었는지 그리고 다음날부터 요 며칠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있다. 아프지 말아라 아들.
파랑은 다음 주 1주일 휴강기간을 앞두고 '시험&과제’와 폭풍 같은 한 주를 보내고 있다. 나와 준영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어와 친해지려는 목적으로 ‘ABC Kids’ 채널을 자주 틀어주고 있다. 그 시간에 나는 함께 보기도 하고 내 시간을 같기도 한다. (땡스 갓) 다행히 호주 처음 와서 보여주었을 때보다는 훨씬 많이 흥미를 가지면서 즐겨보고 있다. 좋아하는 채널과 캐릭터도 생기고 있다. (‘포코요’?!)
바로 건너 건너 사는 누나에 번개 마실 초대를 받고 놀러도 다녀왔다. 원래는 준영이만 놀러 오면 데려다주신다고 했으나 준영이의 아빠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방침에 세트로 다녀왔다.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지만 아들은 누나도 만나고 다른 외국인 형님 누나 동생들도 만나면서 자극을 좀 받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 아빠 없이 다른 외국인 또는 외국어 쓰는 친구들과 놀고 있다면 많이 놀라면서 뿌듯할 것 같다. 다가올 내년 학교 생활을 위해 필요한 준영이의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잘해나갈 것을 믿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아주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부모의 마음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다. (아닌 분들이 있다면 부러울 따름이다)
아들 오늘은 우리 뭐하고 놀지? 일단 어제처럼 7시 전에 일어나지는 말아줘. 네 건강을 위해서야! 정말로!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