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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24. 2021

공감 제로 능력자의 한탄

공감과 위로

    공감과 위로가 빠지면 안 되는 세상이다. 여기도 위로하고 저기도 공감한다. 책이든 방송이든 어느 곳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괜히 남들과 다르면 어색해질까 봐 이리저리 기웃거려본다. 근데 별 소용이 없다. 내 상황이 아닌 다른 이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혹시 비슷하게 겪었던 일이라고 해도 정확히 같지 않기에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남들 하듯이 다른 이가 내가 된 것처럼 흉내도 내본다. 허나 그 상황에 나를 밀어 넣으면 순식간에 해야 할 일만 떠오른다. 마음을 고쳐먹고 몸을 움직여서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수 백가지다. 엄청난 해결책을 마구 전달하고 싶다가도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서 이내 말을 접는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공감을 할 수 없고, 공감이 안 되니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없다. 가만히 들어주고 안아주며 토닥여주면 된다는 데 내겐 그것을 온전히 따를 마음의 능력이 없다.


    가끔 보는 '남'이야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 크게 문제는 없다.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까지 10년 넘게 곁에 있어온 파랑이 그렇다. 기분이 상하거나 다툼이 일어난 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면 열 중 열은 내 부족한 공감능력 탓이다. 그녀는 그저 나의 작은 공감 어린 토닥임을 바랐을 뿐인데 난 저 멀리 해결 꾸러미를 가지고 뛰쳐나가 있었다. 왜 거기 주저앉아서 우울해하고 있냐며, 빨리 와서 문제를 매듭짓자고 외치고 있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표정이 아닌,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문만 가득 품은 채. "그냥 공감받고 싶었어.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어."라고 반복되는 그녀의 말을 매번 듣지만 어렵다. 그저 듣고만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마다 느낀다. 마치 발언권 없는 회의 자리에 있는 기분이다. 내 방식대로의 공감과 위로는 어서 빨리 상황을 전환하고 더 낫게 변화시키는 방법의 제안이다. 이것을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다른 이가 바라는 방식의 공감과 위로를 하지 못한다. 혹시 하더라도 그건 속이 비어있는 겉치레일 뿐이거나,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이라 떠올릴 수 있는 의견이 없어서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어쩌다 이리되고만 걸까. 



* 공감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우리의 책에서 만나요!)



『공감받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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