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Apr 06. 2021

아들이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다

눈병과 코로나, 그리고 부활절

아들이 아침에 눈을 뜨지 못했다. 부어있는 눈은 많이 심각했다. 억지로 눈꺼풀을 열고 보니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학교에 전화로 상황을 알렸고 입혔던 교복을 벗겼다.


처음 하는 결석에 아들은 어리둥절했다. 옆에서 파랑이 병원 예약과 집에 있는 약을 꼼꼼히 살피더니 결론을 내렸다. 그날 하루는 집에서 쉬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눈약을 넣어보기로 했다. 일정이 있던 파랑은 떠났고 나와 아들만 남겨졌다.


붓고 벌건 눈을 가진 아들이 안쓰러웠다. 가장 편안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해 주었다. 어색해했던 아들은 곧 원래의 천진난만으로 돌아왔다. 약을 시간에 맞춰 계속 넣어주었고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만다행으로 눈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그렇게 아들은 며칠 남지 않은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축 늘어진 아들



눈병은 가라앉았는데 이번엔 코로나였다. 그동안 안전했던 우리 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 규정이 내려왔다. 방학 전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던 각종 행사가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잠시 잊고 지냈던 위험을 온몸으로 다시 느꼈다.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불편함을 직접 느끼자 실감이 되었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었다.


난장판 집콕 생활 (종이비행기 날리기 직전)



부활절을 맞이하여 마음껏 장식한 모자를 쓰고 가는 날이 있었다. 파랑이 센스를 발휘했다. 예정되어 있던 퍼레이드는 취소되었지만 아이들끼리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아들은 아주 마음에 들어하며 기쁘게 뽐내며 교실로 들어갔다.


주일에 있던 부활절 예배에서는 아동부 특송이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뻤다.


코로나 시대에 맞이하는 부활절. 함께 놓일 수 없는 말들의 역설적인 의미가 괜히 낯설었다.


파랑의 센스 넘치는 부활절 모자



그리고 시작된 방학. 파랑이 빠진 방학을 어떻게 채울까 잠깐 고민했었는데 금방 일정이 가득 찼다.


이름하여 '플레이 데이트' 아이들끼리 놀게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일정을 말한다.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니 좋고 부모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가지니 좋다. 지금 같은 반 친구, 작년 같은 반 친구, 이웃사촌 누나, 교회 형아들. 이렇게만 일정을 채워도 2주 방학이 이미 알차게 채워졌다.


얼마 전부터는 아들이 꿈에 작년 같은 반 친구들이 나온다고 한다. 역시 아이들은 또래끼리 노는 게 최고다. (어른도 그렇듯이!) 부모는 함께 오기도 하고 아이만 보냈다가 데리러 오기도 한다.


우리 아들의 플레이 데이트의 특징은 이렇다. 하나. 꼭 우리 집이어야 할 것! (가는 것보다 초대를 선호) 둘. 혹시 가더라도 아빠와 같이 갈 것! (꼬셔봤는데 바로 '아빠 혼자서 자유 시간 가지려고 그러지?'라고 했다. 하하.)


며칠 전 초대받은 올해 같은 반 친구네 집에 세 가족이 다녀왔다. 바로 같은 타운하우스 단지에 살고 있던 이웃이었다. 영어 수다 2시간이 압박스러웠지만 아들의 즐거움을 보고 견뎌냈다.


즐거운 방학의 시작이다.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다. (아직 그대로네...)


열정적인 무대






아들 어록 채우기



1. 말조심


[아들] '아빠~ 돈 얼마나 있어? 100 트릴리언(조)?'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전날 내가 엄마랑 영상 통화한 내용을 기억해냈다. 생활비 걱정을 하시던 엄마에게 내가 '우리 돈 많아~ 걱정 마~'했는데 그것을 아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있어~'

[아들] '그럼 100불은 있지?' (갑자기 너무 내려가는데... 내 표정이 너무 불쌍했나?)

[나] '엉~ 그 정도는 있어 ㅎㅎ'


밤말 낮말 모두 아들이 듣는다.




2. 잠버릇


모두 잠든 새벽 몰래 빠져나오는 기분이 상쾌하다. 근데 요즘 가끔 아들이 확인한다.


[아들] '아빠? 어디 가? 왜 가?'


그러면 다시 옆자리에 누워서 한참을 토닥여 주고 나온다. 다음날 물어보면 아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신종 잠버릇인가 보다.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3. 뭔 소리야?


아침 등교시간에는 바쁘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도시락 싸고 씻기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오로지 한 가지만 묻는다.


[아들] '얼마나 놀 수 있어?'


준비 다하고 놀면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한 번은 교복 입으면서 놀라고 했더니 되물었다.


[아들] '도대체 옷 입으면서 놀라는 게 무슨 말이야?'


한 번에 한 가지밖에 할 수 없는 아들이 옷 입으면서 어떻게 노냐고 묻는 것이다. 바쁜 상황의 한숨과 분노가 피식 웃음으로 터져 나왔다. 그래 말이 안 되지. 하하. 옷 다 입고 5분 놀고 학교 가자. 그제야 만족스럽게 돌아섰다.


요즘 나와 꼭 붙어있는 녀석






파랑이 바빠졌다. 학교 마지막에 있는 중요 일정들이 연달아 몰아쳤다.


요리를 좋아하는 파랑의 몸과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서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 호주 가정식 재료와 레시피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구독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법이기에 파랑의 부재를 내가 메꿨다. 오랜만에 요리를 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용된 시간이 너무 길어서 '못 해 먹겠다'는 기분이 남았다. (먹는 시간이 제일 아까운 사람) 그래도 이젠 나만 혼자 살던 시절이 아니기에 아들을 보며 마음을 잡아본다.


각자의 바쁨과 여유가 있는 우리 가족의 남은 방학기간이 잘 흘러가기를.


백년만의 아빠 요리에 놀란 아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뭐, 벌써 방학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