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상담 후기
그날은 우리 부부가 선생님께 불려 가는 날이었다. 작년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변한 걸까?
파랑의 센스로 가는 전에 신선한 카네이션 꽃다발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저녁 즈음의 학교는 한산했다. 아들 교실 앞에서 도착하니 약속 시간까지 몇 분이 남았다. 서로 초조한 듯, 긴장한 듯한 얼굴로 기다렸다. 멀리서 우리를 알아보신 선생님께서 인사를 하셨고 우리는 화답했다.
그렇게 그날의 상담은 시작되었다.
호주 초등학교에서는 매 Term마다 선생님과 부모의 대면 인터뷰가 진행된다. (호주는 4 Term, 한국은 2학기) 작년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이메일, 전화를 통해 진행하다 올해 처음으로 대면 인터뷰가 잡혔다.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아들은 적응은 물론이며 행복하게 배워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배움 자체를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세심하고 꼼꼼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모든 학생을 이렇게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배우는 영역을 세부적으로 나눈 뒤 터득해야 하는 기술들, 기간별로 이루어야 할 단계적 목표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아들의 현재 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에 감사하면서 더불어 이곳 호주 교육 시스템에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절대 압박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익히고 깨닫게 돕는 원칙이 돋보였다. 아직 많이 어리고 학업을 시작하는 아이, 초등학교 1학년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부분이 그대로 실현 중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 전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를 잔뜩 담아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기대 이상으로 아들은 즐겁게 잘 지내고 있었다. 1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신기했다. 얼마나 되었나 문득 달력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이번 주 목요일까지만 가고 나면 방학이었다. 지난 방학이 엊그제 같은데 또 방학이었다. 10주 가고 2주 쉬는 이곳 방식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들 녀석과 꼭 붙어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된다. 지금 신나는 거 맞지?
1. 용돈 기부
금요일에는 동물 보호 캠페인 날이었다. (정확히는 강아지) 좋아하는 동물로 꾸며서 입고 등교했고 골드 코인(1 or 2불)을 기부했다. 아들은 좋아하는 고양이로 변했고, 기꺼이 어렵게 모은 용돈으로 기부했다! (반강제 인정)
2. 종이 만드는 학교
아침에 등교할 때 정체모를 것이 물에 담여 교실 문 앞에 있었다. 아들을 보신 선생님께서 오늘 만들 '종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날 종이를 재활용해서 다시 종이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놀라운 활동, 놀라운 학교다.
3. 첫 수영 상급 레슨
처음으로 긴 레인 전체를 다 쓰면서 배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레슨 내내 아들을 지켜봤는데 제법 잘했다. 그날은 평영 발차기도 처음으로 배웠다. 이곳에서 물에 친해지기 첫 수업도 듣네 마네 실랑이했었는데 정말 많이 자랐다.
4. 찌찌뽕이 여기도 있네
어릴 적 같은 말을 동시에 하면 '찌찌뽕'이라고 하면서 놀던 기억이 있다. 호주에도 '징스(징크스인 듯?)'라며 하는 놀이가 있다고 아들에게 들었다. 징스에 걸리면 다시 풀어줄 때까지 말을 못 하는 게 규칙이라고 한다. 아들은 누굴 한 달 넘게 말 못 하게 했다는데... 하하.
지난주엔 오랜만에 큰 소리를 냈다.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아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늦은 기상을 시작으로 등교 준비가 많이 더뎠다. 티브이 보며 아침을 먹다 기어코 우유를 카펫에 쏟았고, 전날 학교 신발을 차에 놓고 내려서 신발이 없었다. (파랑이 차 가지고 나감) 이미 등교 시간은 한참 지나있었고 답답한 마음에 혼자서 상황을 원망하며 크게 외쳤다. (아들 들으라는 마음도 반 섞임)
놀란 아들은 울먹였다. 그동안 꽤 오래 이를 악물고 잘 참았었는데 오랜만에 터져 나왔다. 당황해서 많이 놀란 아들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학교에 보내 놓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학교 마치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서 잘 풀었지만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이 좁디좁고 얕디얕은 감정의 수용 공간은 언제나 커지려나 싶다.
비가 멈춘 주말, 오랜만에 아들과 하루 종일 비치에 나가 있었다. 갑자기 축구에 꽂혀서 편히 쉬려던 내 계획은 무너졌지만 신나게 놀다 왔다.
요즘 아들은 잠들기 전 요가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이렇게 설명서도 그려서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한다. 생각보다 힘들다. 그리고 뭔가 계속 추가된다. 덕분에 원래도 잘 자던 잠이 더 꿀잠이다.
오늘은 아들 학교 1 Term 마지막 월요일! 기분 좋게 한 주를 보내고 즐겁게 방학을 맞이할 수 있게 나부터 잘하자!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를 채우는 새벽을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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