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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26. 2021

작가님 작가님 작가님

3번의 출간 제안

그동안 애타고 감질나게 읽느라 고생 많았다. 매회 끝날 때마다 욕하는 맛으로 보는  드라마라더니  출간 도전기가 그런 꼴이었다. 마냥 일부러 그랬던  아니다. 어디서 시원한 대답을 줘야지 제대로 끝내고 말고   아닌가. 버텨온 시간은 지겹고 길었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해서 불안했다. 차가운 정적이 깨지길 손꼽아 기다렸다. 어쩌다 누가 부르기만 해도 벌벌 떨며 고개를 돌렸다.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던 '선생님'으로 불리며 흘러가는 서러운 시간이 영원할  같았다.


결론부터 말한다. 받고 말았다. 출간 제안을 결국 받았다. 심지어 한 군데가 아닌 3곳으로부터. 마치 지난 과거 속의 슬픈 연애편지 3통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드디어 나를 '작가님'으로 불러주는 분들을 만났다. 한동안 이리 봐도 거절 저리 봐도 거절, 결국엔 다 거절투성이였던 출판사의 말말말이 지겨웠다. 도대체 승낙은 어떤 식으로 오는지 남의 거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 혹시 같이하고 싶다는 말은 전자 우편이 아닌 실물 편지로 보내주는 건지 의심도 해봤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분이 궁금해하고 목말라하실 출판사의 긍정적 '출간 제안'은 어떻게 오는지 밝힌다.



'작가님'으로 불린 첫 번째 순간


원고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하지만' 없다.) 작가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원고를 저희가 출간하고 싶습니다. ( 눈을 의심하고 수없이 많이 읽었던 문장이다. 출간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우선 접근의 참신함이 마음에 들고, 솔직하고 디테일한 본문 내용이 독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당길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글의 매력을 느껴주고 생각공감해준 분이 드디어 나타났다.) 육아 에세이를 넘어서 인문 실용서의 장르로까지 범위가 넓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초보 부모, 예비 부모, 결혼을 앞둔 커플  타깃 독자층도 분명하다는 것도  책의 장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라는 말에 심장이 멈춘 듯했다.) 저희 출판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남깁니다. (내가  감사했다.)



'작가님'으로 불린 두 번째 순간


먼저 저희 출판사에 원고 투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도 '하지만'이 없다.) 기획 의도도 좋고 양질의 원고도 잘 읽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출판하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출판을 요청받는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출판 계약서 함께 보내드립니다. 살펴보시고 작가님 생각이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대표님의 화끈함이 느껴졌다.) 코로나 시국에 건강히 육아에 전념하시기 바라며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지겹게 받아보던 복붙 인사말이 아닌 삶의 맥락이 고려된 인사말에 감동했다.)



'작가님'으로 불린 세 번째 순간


원고와 기획서는  확인하였습니다. (이제 '하지만' 없는  익숙하다.) 한국의 육아 현실을 꼬집고 아빠가 가져야  태도를 짚어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기획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다.) 괜찮으시다면 작가님과 구체적인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혼자서만 하고 싶다고 졸라 대다가 반대쪽의 희망을 들으니 낯설었다.) 저희 출판사에 관심 가져주시고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동으로 달라붙는 인사가 아닌 진실한 감사였다.)



깔끔하지 않은가. 시리고 답답한 연애편지와 사뭇 다르다. 고구마 수백 개를 입에 넣은 듯한  막힘을 어디서도 찾을  없다. 길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다. 괜한 반전으로 글을 꺾을 필요도 없다. 진짜는 직선이니까. 구구절절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싫은 이유는 끝없이 늘어놓을  있지만 좋으면 이유가 없다. 좋으면 좋은 거다. 그래서 함께하고 싶은 거다.  


불가능하다. 처음 '작가님'으로 불렸던 그때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은. 잊을  없다. 거꾸로 내게 회신을 요청하는 출판사를 처음 보았을 때를.   없다. 출간 제안을 받은  얼마나 많은 감사 기도를 했는지. 기적이라는  말고는 설명할  있는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현실이라고 생각할  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지치지도 않게 반복되는 거절에 쓰러져 가던 내겐 정말 그랬다.


어디서 출간 제안을 보내왔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누가  원고를 읽고 반응했을까.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여성 대표 2, 여성 편집자 1. 남성이 없었던  그저 우연이었을까. 출판계는 여성이 압도적 비율로 종사 중인 걸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니 편하게 마음대로 해석을 시작한다. 아쉽게도 남성,  나아가 아빠의 마음을 열지 못했다고 본다. 아빠도 함께 육아 하자는 뜻을 품은 원고에 선뜻  들어주기 어려웠을 테다. 주제에 관한 못마땅함도 있었을 테고, 관심이 부족하니 매력이 없었을 테다. 공감의 차이가 이해의 차이를 불러일으켰다고 판단했다. 세상의 잘못된 시선이 출판계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역시나 남성은 아빠 육아 같은 주제엔 고개를 돌렸다. 책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고  팔리길 바라지도 않고. 원하는 책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읽고 싶지도 않았을 테다. 예상대로  독자는 여성이었다. 아쉽지만 여성이 읽고 주변 남성을 끌고 와야 한다. 편중된 세상을 향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 본다. 이미 '함께하는 육아' 특별할  없는 이상적인 사회였다면  책을 만드는  종이 낭비다. 원고 투고를 통해 아직 멀었다고 다시금 깨달았. 내 책이 세상에 필요하고 시급한 상황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번 경험으로 다시금 머리와 마음속에 각인된 진리가 있다. 모든 일은 내가 끝낼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만두고 포기하면 거기서 끝난 거다. 하지만 계속하면 끝난 게 아니다. 그저 하는 과정일 뿐이다. 될 때까지 한다면 되도록 애쓰는 중이다. 그만하겠다고 내려놓을 때까지는 완전한 종료가 아니다. 다른 누구도, 바깥 상황 무엇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끝내지 못한다. 내가 놓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 안쓰러워하는 외부의 시선과 초라해 보이는 내부의 시선이 있을지라도. 끝내면 거기서 끝이지만 아니라면 끝난 게 아니다.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고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었다. 귀한 교훈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살겠다. 내가 직접 끝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상상도   엄청난 상황에 빠졌. 전에 없던 행복한 고민이 던져졌다. 마음의 결정이 필요했다. 우선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답장을 보내고  직후 언제 행복했냐는  싸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문득 출간 과정이 계속 장밋빛으로 흘러갈  있을지 불안해졌다. 이제부터는 비즈니스의 영역이다. 비록 지금은 천상 백수로 보이지만 이래 봬도 나름 직장을 10 넘게 다녔다. 출판계는 책을 상품으로 다루는 사업 분야다. 순수하게  쓰는  마음과는 엄연히 다른 세계로 구분해야 한다. 감성과 감정에만 매달려 바라보는  위험하다. 회사에서는 도장 찍기 전까지 수없이 판도가 달라지는  예삿일이다. 심지어 도장 찍고 나서도 엎어지는  자주 목격했다.  이름으로 맺는  번째 출간 계약이 아무런  없이 나아갈  있으려나. 어쨌든 당장은 조금 즐기고 싶었다. 고민스러운 상황 속에  빠져있으려 했다. 지난했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처럼 잠시 눌러앉았다. 지겨워지기 직전까지 늘어져 있다가 어느 한순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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