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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03. 2021

첫 책은 이곳에서 내고 싶다

마음의 결정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될 자신은 있었다. 단 한 번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 될 때까지 할 생각이었으니까. 가진 것 중 쓸모 있는 걸 찾으면 자신감이 앞장서 나온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냐며 스스로 기대며 버텼다. 물론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건 심각하게 쉽지 않았다. 간간이 날아오는 출판사의 회신은 모두 그저 그렇고 그런 안 되는 이유가 즐비했다. 언젠가 꼭 될 거라며 불쾌한 시간을 견뎌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세 출판사의 출간 제안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 다행인지 세 곳은 명확히 달랐다. 색깔과 특색도 달랐지만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정보, 즉 규모가 확연히 달랐다.


- 가 출판사 : 1인 출판사, 작년 3권 출판(*설립 첫 해)
- 나 출판사 : 작년 5권 이내 출판  
- 다 출판사 : 작년 10권 이상 출판


처음엔 규모를 떠나서 출판사의 특징으로 구분하려 애썼다. 주고받은 메일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글을 인정해주고  내밀어  하나같이 소중한 곳이라 어려웠다. 생뚱맞게도 결정을 도운  거절했던  출판사 대표의 조언이었다. 무수히 책이 쏟아지는 냉정한 시장에서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곳이 유리하다고 했던. 나왔다가 무참히 묻혀버리기 전에  사람에게라도  다가가려면 그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마음의 결정이 이루어지고 나니 원래 여기만 있었던 것처럼   곳만 보였다.  이곳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원래 되고 나서 돌아보면 끔찍한 일도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곤 한다. 마음을 정한 출판사와도 가슴 철렁하고 오싹오싹한 사건이 있었다. 원고를 투고하면 일부 출판사에서는 즉각 답장을 보내주면서 안내해준다. 내용은 뻔하다. '원고 접수 잘 되었고, 얼마나 걸리며, 그때까지 연락 없으면 안녕입니다.' 읽으나 마나 한 내용이라서 메일 제목만 보고 '투고는 정상적으로 됐구나' 하며 잘 안 읽어보게 된다. 여기서도 투고 안내 메일을 바로 받았다. 나름 마음에 품고 있던 곳이라서 메일 본문을 굳이 읽고 싶어졌다. 흔한 내용으로 흘러가던 중 마지막에 기가 막힌 부분이 있었다. '다만, 보내주신 원고를 보니 파일이 깨져 있어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맙소사! 만약 그때 해당 메일을 무시하고 못 봤다면? 내 생애 가장 소름 끼치는 상상이다. 말도 안 되는 우연이 도운 덕에 다시 원고 파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곳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다. 지금이야 '우린 결국 어차피 함께 할 운명이었어!'라며 웃으며 돌아보지만 아직도 아찔하다. 불가능한 확률로 맺어진 인연을 붙잡았다. 내 첫 책을 내기 위한 다음 걸음을 함께 내디뎠다.


편집자가 처음으로 보내준 메일을 수없이 많이 읽었다.  글을 진지하고 깊숙하게 읽어준 사람의 소중한 의견이 담겨있었다.  책을  이유와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줬. 글의 재미와 목차의 흐름도 좋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결정이  자신을 향한 기특함이 마구 샘솟았다. 알콩달콩  글을 인정해주는 이와의 편지 주고받기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을 지지하는 ,  구석의 자세한 부분까지 알아주며 좋았다는 , 특히 여기가 재밌었다는 . 글을 쓰면서 전해 들은 따뜻한 응원의 말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마디  마디에 마음이 녹아나고 뜨거운 기운이 넘쳐났었다. 하지만 분명히 차원이 달랐다. 어쩌면 나보다도  많이 고민해서 나온 의견을 끊임없이 냈다. 이런 방향으로 살리고 저런 내용을 보강하며 책의 완성도를 높이자고  이끌었다.  글을 이렇게까지 읽어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을 어디서 만나   있을까. 생각나는 대로 던지는 나의 부족한 의견과 아이디어도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어지간하면  좋다고 했다. 강력한 동지, 지원군 천군만마가 생겼다.


특히 나아가는 리듬감이 좋았다. 회사에서  처리할 때처럼 잡아먹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진득하게 고민할 시간을 서로 가졌다. 누가 먼저라   없이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했고, 언제까지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다. 밤이건 새벽이건 궁금함에 미쳐가며 질문을 날리는 일도 없었다. 물음에 즉시 대답하길 누구도 바라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 '' 대하는 여유와 배려가 넘쳤다. 거기에 더해 글을 쓰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원고 말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뿐이었다. 출간 일정, 마케팅 계획, 계약서 작성 두근거림 오갔다. 꿈일 가능성이 높은 나날이 이어졌다.


보들보들 포근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심각한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분명 따뜻한 편집자가 맞았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의견들이 나왔는데요. 혹 불편하실 표현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작부터 어두운 말로 가득했다. 이런 적이 없었기에 당황하거나 떨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이기 때문에 앞으로 진행에 관해 결정을 내려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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