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와 윤문, 그 중간 어디쯤에서 겪는 고통의 시간
내가 구두쇠인 줄 몰랐다. 무언가 내어줄 때 이렇게 아까워해 보긴 처음이었다. 조금이라도 덜 주려고 애를 쓰고 기를 썼다. 어떻게든 남겨 놓으려고 온갖 이유와 설명을 만들어 냈다. 어쩐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중요해 보여서 어느 것도 줄이기 어려웠다. 이 문단도 저 문장도 이 표현도 저 단어도. 모두 딱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야만 했다. 내 글이 너무 아까웠다. 고민과 고통으로 만들어 낸 글자 하나하나가 몽땅 그랬다.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갖다 댄다면 딱 그런 심정일 것 같았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다 내 아이처럼 소중했다. 분명 머리로는 줄이고 지워야 하는 게 맞는다고 이해했지만 쉽지 않았다. 읽어보고 또 읽어볼수록 아까운 마음만 더해졌다. 빼려고 결정한 뒤에도 다음날이면 다시 남겨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순식간에 자린고비가 되어있었다. 단 하나의 낱말이라도 살려서 재활용하려는 끝없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대단한 글 구두쇠, 글 자린고비의 탄생 비화는 이러하다.
편집자 없이 혼자서 원고를 마감했다. 바로 그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적절하게 두 번째 편집자를 만났다. 첫 느낌이 좋았다. 쓰고 싶은 글과 책의 방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좋은 책을 함께 만들게 되어 기쁘다는 인사가 산뜻하게 다가왔다. 이루어진 새로운 인연의 기쁨을 전하며 완성된 원고를 보냈다. 작년 한 달과 올해 한 달 동안 즐겁게 쓴 글 뭉치를 보내며 상상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 등장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상상력이 부족한 내게도 종이가 엮어진 단단한 물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충분해서 모든 공상, 망상을 펼칠 만했다. 첫 책이 나오는 순간을 반복해서 그리는 일은 지겹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출간 후 벌어지는 온갖 일을 계획하고 펼쳐보고 느껴보는 놀이는 해도 해도 끊기지 않았다. 혼자 놀기의 한계가 오자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다. 잠깐 쉬다가 돌아갈 거라는 생각에 완벽히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은 대화창에 멀지 않은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할 말을 정리하고 말할 곳을 정했다. 책을 낸다고 알렸다. 예상보다 더 많이 놀랐고 더 크게 응원해줬다. 오랜만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있다는 기운을 느꼈다. 내 글을 이미 읽고 있는 이도 있었고, 정말 네가 쓴 거냐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처음으로 나의 쓰는 삶을 전했다. 안부를 주고받는 따스한 시간이 좋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뻔뻔하게 추천이 아닌 강매를 미리 약속하는 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래된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를 바라보는 건 추억을 돌아보는 것과 비슷했다. 원고를 보내 놓은 여유로운 마음을 즐겼다. 지겨워지려고 할 때쯤 떠났던 원고가 돌아왔다.
누군가 내 글을 봐준 건 처음이었다. 우선 많이 놀랐다. 얼마나 많이 읽어야지 이토록 깊은 이해가 가능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쓴 의도를 오해하는 일은 없었다. 정확한 공감과 파악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 속에 나온 의견이 곳곳에 쓰여 있었다. 편집자의 정성과 시선에 감탄을 먼저 했다. 그리고 바로 부끄러워졌다.
알려준 기본 수정 원칙을 보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어쩌자는 생각에 이런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써서 보냈을까 부끄러웠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 안전 수칙을 나는 무시해왔다. 무분별한 신조어, 줄임말, 비속어, 외래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다. 격양된 감정을 그대로 글에 쏟아부어 불편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해를 돕는다는 착각으로 '이, 그, 저'를 남발했고 '아주, 엄청, 매우'로 도배를 했다. 중요한 것이 너무도 많아서 여기저기에 따옴표와 굵은 서체를 남용했다. 이 정도는 애교에 가까웠다. 수정된 부분을 보고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괄호 안에 있던 글이었다. 괄호에 들어가는 말은 대부분 애드리브에 가까웠다. 그저 혼자 웃고 즐기려고 써 재껴 낸 즉흥적이고 저렴한 나만의 유희.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책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본 규범이다. 알고 있어도 쓸 때는 다 지키기 어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있는 그대로, 쓰고 싶은 대로 편하게 쓰지 못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다만 이번에 깨달은 나의 모자람은 경우를 따지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다. 책을 쓰려고 원고를 정리할 땐 최소한 확인했어야 했다. 기본도 지키지 못한 날것을 그대로 접했을 편집자의 황당함이 고스란히 그려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정 표시에 얼굴은 달아올라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마지막 감정이 아까움이었다. 책의 흐름을 위해 통째로 날려야 하는 글이 있었다. 글의 매력을 위해 없어져야 하는 문단과 문장이 있었다. 포기하기 어려웠다. 매일매일 쓰는 만큼 좀 더 깔끔하게 처신할 줄 알았다. 글이야 언제든 또 쓰면 된다는 자세로. 뭐가 그리 아까운지 지우고 돌아서면 생각이 났다. 없어서 나아진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앞섰다. 구두쇠도 이런 구두쇠가 없었다. 가진 글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어느 것 하나 내어주기 싫어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아까웠다. 역시 양을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게 수백만 배 힘들다. 쥐어짜며 쓰면 불어나지만 내 살을 파내듯 없애는 작업은 고통스러웠다. 지웠다 살리고, 줄였다 늘리기를 지겹게 했다.
글에서 누구 못지않은 짠돌이로 지내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러다 진짜 인색한 사람이 돼버리겠다 싶은 정도로. 내 것을 지키는 데 점점 더 각박해져 갔다. 문득 얼마 전에 입금된 선인세를 떠올렸다. 주변을 모르는 체하는 야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글로 번 돈을 아낌없이 모두 나누겠다는 순수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고 바라며 마음을 전했다. 이번에도 흔들리지 않고 약속을 지킨 나를 칭찬했다. 다시 원고로 돌아왔다. 더 많은 기부를 하기 위해서는 좋은 글과 책이 되어야 했다. 꽉 막혔던 마음에서 욕심을 덜기 시작했다. 좀 더 말짱해진 정신으로 글을 다듬는 데 집중했다.
맑아진 눈과 마음으로 살펴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쓸 때는 모르고 썼던 반복되는 몹쓸 버릇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끊임없이 등장하는 ‘나’와 ‘내’를 보며 놀랐다. 쉬지 않고 나오는 걸 보며 뭐가 그리 불안했을까 싶었다. 내가 쓰는 이야기에 도대체 언제까지 '나, 내'라고 강조해야 안심이 되는 걸까 하며. 또 다른 단골손님, '것이다'도 대단했다. 여기도 것이다, 저기도 것이다. 온 사방이 ‘것이다'로 점령된 상황은 문장을 끝내는 방법을 이것밖에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부족한 어휘력은 같은 말을 쓰고 또 쓰는 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아는 말이 몇 개 없으니 했던 말 또 하고 이리 돌려쓰고 저리 돌려쓰고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부족한 것은 어휘뿐만이 아니었다. 만날 거기서 거기인 표현의 한계는 더 심각했다. 그럴듯하게 감정을 묘사하고 싶었지만 써둔 걸로는 한없이 부족했다. 차라리 어설픈 꾸밈을 없애는 게 나아 보였다. 무분별한 도치법 남발의 정황도 포착되었다. 분명 의도를 품고 순서를 뒤집으며 강조하고자 했다. 하나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중요하다니. 무책임한 거꾸로 쓰기는 글을 물구나무 세워놓았다.
자신을 마주하는 애잔하고 처연한 시간이 계속됐다. 휴직 후 처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허공에 질문을 던지며 혼잣말도 많이 했다. '퇴고'와 '윤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그 언저리인 것 같아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기웃거려보았다. 정확히 뭐가 뭔지, 그 차이가 무언지 알기 어려웠다. 결국 모두 읽기 좋은 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생뚱맞지만 오랜만에 보고서를 쓰고 고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보고서와 글을 다듬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보고서 수정이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하는 과정이라면 퇴고와 윤문은 있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느닷없이 글을 쓸 때가 제일 편하다는 출간 작가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고통스럽다고 돌아보았다. 신나는 일만 가득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도 이젠 그쪽 손을 들어주게 생겼다. 힘들게 썼던 글을 더 힘들게 고쳐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덜어지는 글을 보며 본전 생각이 났다. 이대로 책이 되어도 되나 점점 불안해졌다.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놀라운 경험은 틀림이 없었다. 앞으로 글을 쓸 것이라면, 또 책을 낼 것이라면 무엇을 따지고 맞춰봐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혼자 쓰고 혼자 좋아할 글이라면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다. 다른 이가 돈과 시간을 드릴 만한 가치를 주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그 차이를 모르고 있었다. 내게 의미가 있다면 다른 이에게도 당연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착각했었다.
번민과 고민 속에 뒤덮여 지냈다. 쓰는 게 별거인가 싶던 부족한 모습은 고이 접어두었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계속 읽고 또 읽었다. 받아들였다, 고집을 부렸다, 갈팡질팡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여기며 확연히 달라진 원고를 다시 보냈다. 이번엔 언제 답이 오나 목 빠지라 기다리던 전과 달랐다. 답이 늦기만을 바랐다. 쉬고 싶었다. 오래 그러진 못했다. 바람과 현실의 차이처럼. 바로 답이 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조심스럽게 답장을 펼쳤다. 꽤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