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Sep 06. 2021

졸저의 기준은 무엇일까?

교정, 책 제목, 작가 소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나는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원고 문서에 한가득 쏟아부어 보내고 난 며칠 뒤였다. 처음 보는 파일을 받았다. 그동안 보던 워드 파일이 아니었다. 책의 형태를 지닌 본문 디자인이었다.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일정표도 건네받았다. 맨 위에 '3교'라고 적힌. 올 것이 온 모양이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고 나서 출간 작가의 후기를 염탐했다. 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외계 용어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1교, 2교, 3교, 그러니까 교정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하나같이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라 표현했다. 보면 볼수록 고칠 게 튀어나온다는 경험담 일색이었다. 가진 게 자신감밖에 없는 난 의아했다. 애초에 쓸 때 꼼꼼히 쓰고, 퇴고할 때 잘해두었으면 그럴 일이 있겠냐며. 교정 작업 시작과 동시에 정신 나간 생각을 반성했다.


교정은 말 그대로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행위다. 종이에 인쇄되지 말아야 할 것을 남김없이 찾는 일이다. 사전 뜻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친절한 편집자의 설명을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1교 때는 큰 틀에서 살핀다. 내용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빠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구조적인 빈틈이 없는지, 붙어있는 제목이 어울리는지 본다. 각 문장의 호응이 자연스러운지 따져본다. 2교 때는 좀 더 자세히 살핀다. 문장의 어색함이 있는지, 세세한 맞춤법 문제가 없는지 다시 본다. 3교 때는 최종 확인을 한다. 더 이상 고칠 곳이 정말 없는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본다. 팽팽한 긴장이 맴도는 사전 안내를 보고 좀 과하다고 여겼다. 설마 3번이나 봐야 할 정도로 고칠 게 그렇게나 많겠냐며.


달달 외울 수도 있겠다 싶은 원고를 또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계속 뭔가 나왔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책 모양으로 보니 어색한 게 많았다. 이대로 책이 되면 안 될 치명적 실수도 잦았다.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눈에 걸려 넘어지는 게 쏟아지자 그제야 자세를 바로잡았다. 흐리멍덩하게 대충 훑어보고 넘기려 했던 정신 상태를 고치고 앉았다. 하나하나 눈에 불을 켜고 살피기 시작했다. 워드 형태의 원고 파일을 옆에 같이 띄워 놓고 함께 비교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마음을 잡고 보니 의미와 보람이 보였다. 꼭 필요한 작업이 틀림없었다. 회사의 보고서 검토와는 또 달랐다. 그땐 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보고 받는 윗사람만 통과하면 내용이나 형식이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다. 원고 교정 작업은 전혀 달랐다. 나를 넘어서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들어야 했고 어떤 실수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내 것, 내 책이라는 상황은 작업하는 자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열심히 잡아냈다. 넘어가다가도 수없이 읽어보며 다시 돌아와 살폈다.


단순하게 글만 바로 잡는 게 아니었다. 책을 채우는 구조 전체를 조망하게 되었다. 그 자리가 딱 맞을 거로 생각했던 각 장과 글의 구성이 변했다. 교정을 진행하는 사이에 편집자의 조정 의견이 있었다. 들어보니 원래 자리 잡은 게 잘못되었구나 싶은 정도로 옳은 변경이었다. 옮기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한 탁월한 자리바꿈이었다. 한결 매끄러워졌다. 혼자서만 파고 있었다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각도였다.


고된 작업 중에 정신을 잃으면 딴생각이 찾아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참 잘 썼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멋지고 훌륭하게 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써낸 행위에 대한 '잘'이다. 이렇게 하길 참 잘했다는 칭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하기로 마음먹고 행동한 나에 대한 만족. 교정작업에 관한 정보를 찾던 중 어느 편집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교정을 하다 보면 무조건 그 원고와 책이 좋아진다.' 수없이 읽다 보면 익숙해지고 애정이 깊어진다는 설명이다. 아마 나도 그런 상태이지 않을까. 가뜩이나 제 잘난 맛에 사는데 자신의 글을 수십 번 보고 있으니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지겹지도 않게 '이걸 내가 썼다고?'를 반복했다. 끝없을 것 같던 과정이 조금씩 지나갔다. 고쳐지고 다듬어져 가며 점점 책 같이 변해갔다. 처음의 '이게 얼마나 필요하겠어'라는 생각은 '이거 3번으로 충분할까?'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책의 이름을 정하는 작업, ‘제목 짓기. 먼저 내게 생각하고 있는 후보를 물었다. 가진 게 너무 많았다. 글의 제목을 정하는  생각이 필요 없다. 글을 마치면 곧장 나왔으니까. 책은 달랐다.  책의 겉장에 박힐 그것을 떠올리면 생각이 끝이  났다. 뭐가  좋은지 정하지 못하고  던졌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느낌이 좋고. 천사 같은 편집자는 괜찮다고 계속 던져달라고 했다. 그대로 믿고 제목 회의가 있는  직전까지 마구 던졌다. 회의를 마친  결정된 제목을 알려왔다. 처음 들었을  정말 '으잉?' 했다. 뻔하디뻔한  후보와 전혀 달랐기 때문. 설명이 필요했다. 내가 설득되고 이해하기 위한 배경과 과정이 궁금했다. 논리적이고 차분한 편집자의 해설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도 뭔가  계속 찜찜했다.  그럴까.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따져봤다.


엄청 그럴듯하고 멋진 문학적 제목을 바랐다. 처음에 '에세이'라는 근사한 출판 분야를 맹목적으로 희망했던 것처럼.  책의 이름도 그렇기를 원했다. 심지어 책의 내용이나 목적과 다를지라도. 출판사에서 정해온 제목은 책을 대표하는 탁월한 제목이 맞았다. 런데도  다른  눈을 돌렸다. 바라는 '문학적' 뭔지도 모른 . 제대로 설명도  했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마치 상사의  모르겠는데 이건 아닌  같으니 다른 걸로 가져라는 식이었다.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물으면 겁나게 쌈박하고  들으면 꽂히고 긍정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하고 클래식한 느낌이라고 대답하듯이.  없는 딴지걸기를 멈추기 위한 대화가 간절했다. 때가 왔음을 느끼고 편집자와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통화는 짧지 않았다. 어색할  있는  만남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위에서 늘어놓은 솔직함을 그대로 전했다. 조용 들어주고 차근차근 배경과 과정을 설명해줬다. 직접 천천히 부드럽고 세세하게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서로 원하는 것과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바랐던  안심의 확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쩔  몰라 동동대던  잠재워줄 따뜻한 편안함을 찾았는지도.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대로 믿고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건너편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편집자뿐만 아니라 출판사 직원 모두가  '출간 도전기' 읽어봤다고 했다. 다들 엄청나게 감동했다고. 담당자가 갑자기 바뀌어서 걱정 많았을 텐데 흔들리지 않고 맡겨줘서 고맙다고. 몰래 감춰둔 간식을 들킨 기분이었지만 애써 담담한 척했다. 웃으며 그러셨냐고,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남겨가고 있다고. 앞으로도 마음대로  거라는 안내도 굳이 덧붙였다. 통화를 마치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가까워지고 믿음이 올라간 느낌이랄까. 우린 서로  편해졌고 친해졌다고 믿어버렸다.


너무 편해져 버린 탓인지, 그러고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목이 자꾸 떠올랐다. 첫 통화의 따뜻한 감상이 무색하게도. 끝내 하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직장생활에서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은 퇴근선이다. 퇴근 후에는 일로 연락하면 안 된다. 평일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은 더더욱 안 된다. 난 그 선을 넘었다. 토요일 아침 쏟아지는 생각을 막지 못하고 결국 연락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미 정해진 제목으로 표지 시안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봤자 나름의 합리화에 불과했지만. 깊은 사과와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마지막이라고 결심하며. 최종 결정되면 더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지난주에는 같은 주제로 책에 넣을 글을 3번이나 썼다. 글을    언제인데   글이냐 싶겠지만 필요한 글이었다. 나를 소개하는 '작가 소개'였다. 요청받고는 내심 어려울  있겠냐는 가벼움으로 접근했다. 호기롭게 여기저기서 끼적였던 소개글을 얼기설기 엮어서 보냈다. 수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가  나를 소개하는 글을 누가 뭐라고 할까 싶어서. 바로 퇴짜를 맞았다.  내용보다는 작가에 집중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파악한 편집자의 성향으로 미루어    정도 멘트면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음  새벽 그날의 글쓰기를 미루고 오랜만의 자소서에 집중했다. 쓰고 싶은 말을  쓰다 보니  편의 글이 나왔다. 만족하며 새벽에 기분 좋게 보냈다. 아침 일찍 편집자의 다급한 답변이 도착했다. 나의 오해를 풀기 위한 적당한 분량의 적절한 예시와 함께. 괜히 생각을 가둘까  일부러 별도의  없이 열어  거였다며. 이대로 두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나를 겨우 붙들었다.


그날 온종일 찌푸리고 있었다고 한다. 고민이 있으면 얼굴에 드러나는  보며 했던 아내의 말이다. 좋은 사람 앞에서는 웃고, 싫은 사람 앞에서는 화난 표정이니 맞다. 다른 일을  때도 머릿속은 온통 '작가 소개' 뿐이었다. 이리저리 굴리던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다. 머리로  글을 글자로 옮겼다. 그대로 보내고 곧바로 오케이를 받았다. “ 정말 좋아졌습니다!”


식판 밥을 좋아한다. 직접 고르지 않고 정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어 살아왔다. 올바른 삶으로 믿고 명문대를 가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서른 넘어 결혼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늦지 않게 남편이 됐다. 아이가 태어나며 모든 게 달라졌다. 순백의 아이를 어떻게 키워갈지 막막했다. 스스로 고민해 본 적도 결정해 본 적도 없어 당황했다. 생각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잠시 멈췄다. 직장을 쉬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매일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내 행복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한다. 담아두기 벅찬 생각을 글자로 옮긴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이제는 식판 밥을 덜 좋아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기를 즐긴다. 매일 새벽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 채우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자유롭고 밝게 키워가며 기대와 설렘 속에 지금을 살아간다. 앞으로도 계속 쓰며 살고 싶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초록Joon'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카카오 브런치 brunch.co.kr/@tometoyou
네이버 블로그 blog.naver.com/tometoyou
인스타그램 instagram.com/sukjoon_hong


아내 파랑은 요즘 걱정이 많다. 우선 까칠한 남편과 일하는 편집자를 안쓰러워한다. 회사 다닐 때도  동료와 선후배를 안타까워했다. 일을 대하는 뾰족하고 차가운 나를  알기 때문이다. 편집자에게 파랑의 걱정을 전했다. 나랑 일하느라 고생이 다며 감사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웃으며 고맙다고했다. ‘작가님 하나도 까칠하지 않아요.’라는 말은 없었으니 아무래도 정황상 확정이다.  번은 말싸움 중에 파랑이 말했다. "  쓰더니 말이 늘었다? 예전엔 이렇게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못했는데 말이야. 이젠 아예 문장이  정리되어 대구에 맞춰서 다다다 말하더라?" 들어보니 그랬다.  분을  이겨서 말도  되는 말을 어버버하며 답답해했었다.  쓰기의 좋은 점을 발견한 순간이다.


여전히 책을 만들어 가는 오늘이 어색하다. 책을 낸다고 으쓱하거나 뻐기는 마음을 가질 틈은 없다. 보면 볼수록 어렵고 이게 맞나 싶어서 헤매기도 바쁘다. 목적지를 향해가던 중 한 가지 확실한 바람이 생겼다. 내 책을 스스로 '졸저'라고 부르기 싫다. 겸손의 의미를 담은 의도는 알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쓰고 싶은 글이 담겼고 최선을 다한 책이라면 낮춰 부르지 말아야 한다. 나와 편집자, 그리고 애쓰는 모든 이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기분이다.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가 졸저의 기준은 아닐 테다. 만들고 싶은 책을 잘 만들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남은 기간이 졸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 언제나 나만 믿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나 말고 믿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