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의 날
아, 지겹다!
전날에도 이미 10시간 동안 붙잡고 있던 책을 또 읽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책도 2번 읽는 일이 없는 내겐 고역이다. 심지어 편하게 책장만 넘기는 게 아니라면 더욱. 고칠 점을 찾는 읽기라서 평소의 독서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가진 모든 정신과 신경을 한 곳에 모아서 쏟아붓는 노동의 현장이다. 남의 글이 아닌 내 글을 수없이 반복하며 읽는 건 없던 부끄러움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적당히 여러 번만 읽으면 익숙해져서 이 정도면 되겠구나 싶어 진다. 이 구간을 지나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읽다 보면 상황이 변한다. 죄다 바꾸고 싶고 뒤집어엎고 싶고 아예 다시 쓰고 싶어 진다. 다행히 그날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오후 4시에 인쇄소에 넘긴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더 샅샅이 낱낱이 뒤져가며 찾아내면 정말 끝이다. 정해진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은 해방의 희망도 주었지만 초조와 불안도 함께 몰고 왔다.
내가 정신줄 겨우 잡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는 어땠을까. 모든 게 처음인 나보다는 경험이 있을 테니 좀 여유로웠을까. 꽤 먼 곳에 떨어져 있기에 전달감이 다소 떨어질 뿐 느끼기엔 충분했다. 모든 과정을 이끌어준 나의 진실한 파트너가 최선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는 지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책과 글의 구성을 고민했고, 더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문장을 다듬었다. 노력과 몰입의 한계가 있는 나인지라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끝내버렸을 테다. 혼자였다면 애초에 이게 끝이라고 합리화하고 던져버렸을 테다. 더는 못하겠다고 외치며 바닥에 쭉 뻗으면서. 그는 침착하게 나의 정신없는 주문도 척척 잘 받았다. 은근히 다가오는 마감의 순간을 함께 맞이했다.
바쁜 와중에 데자뷔가 펼쳐졌다. 정확히 똑같은 기분 속에 파묻힌 적이 있었다. 시간에 쫓기느라 마음은 쫄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 익숙하게 떠오른 상황은 회사에서 보고서 마무리할 때, 일명 '초치기'였다. 보고 시간 직전까지 급하게 서두르며 고치고 또 고쳤다. 딱 마감 전의 내 모습이 그랬다. 글을 바라보며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을 옆에 두고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애썼다. 전날만 해도 안 보이던 게 신기하게 다시 보면 나왔다.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시간이 있으면 있는 대로 끊임없이 나오겠구나. 처음 쓸 때 더 잘 써놓을 걸 그랬다는 어색한 후회도 흘러나왔다.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만큼 가슴까지 차오르는 급박함과 조바심은 의미 없는 뒤마저 돌아보게 했다.
더는 내용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그가 외쳤다. 맞춤법, 띄어쓰기가 건드릴 수 있는 한계였다. 15분, 10분, 5분. 끝났다. 이제 더 읽고 싶어도 의미가 없었다. 끝난 뒤 눈에 띈 부분은 마음에 남겼다. 갑자기 떠올라 넣고 싶었던 에피소드도 나중을 기약했다. 인생의 마지막처럼 책을 쓰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가 주르륵 가슴을 스쳤다. 과정이 끝나 안도하며 후련했지만, 어쩐지 모를 떨림이 오래 남았다. 자르르한 요동은 잠이 드는 순간까지 머물렀다. 드디어 내 책이 완성되었다.
많이 무딘 편이다.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특히 그게 나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잠잠하고자 노력한다. 격한 반응이 낯설고 부끄럽다. 감정이 무너지면 다시 담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버틴다. 딱딱한 나를 무너뜨린 일이 최근 세 번이나 있었다. 처음은 표지에 적인 내 이름을 보았을 때.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3글자는 내 이름 석 자다. 어느 소란 속에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고, 수많은 이름 가운데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 표지에 거짓말처럼 박혀있는 그것을 본 순간, 잠시 모든 게 멈췄다. 현실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모든 게 그저 꿈이 아닐까 싶었다. 내 이름이 들어 있는 부분만 어색했다. 어색함이 너무 어색해서 그땐 감격인 줄 몰랐다.
두 번째 무너진 순간은 원고의 마지막 장을 펼쳐 들 때였다. 책에 대한 정보가 실려있는 페이지다. 제목, 초판 1쇄 발행일, 출판사 정보, ISBN, 가격, 저작권. 독서만 할 때의 나에겐 절대 들여다볼 일 없고 갈 일 없는 외떨어진 장소다. 이번엔 하나하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마음이 쿵 하며 멈춰버린 곳은 내가 아닌 다른 이름이 적혀있는 부분이었다.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동안 몰랐다. 편집자 한 사람만 알고 있었기에 이 책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는 줄은. 한 권을 위해 쏟아진 그들의 관심과 정성이 다양한 감정으로 살아났다. 고마움, 부끄러움, 민망함, 부담감, 책임감. 내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이름에도 각각의 무게가 실려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는 책에서 가장 무거운 곳이었다.
나머지 순간은 조금 달랐다. 앞서 느꼈던 감동이나 감격과는 차이가 있었다. 인쇄가 시작된 다음 날 저녁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인쇄소에 방문해서 감리를 마쳤으며 책이 아주 잘 나왔다고 했다. 사진과 영상도 보내줬다. 물성을 지닌 종이의 실체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진짜로 내가 쓴 글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책이 되고 있었다. 온몸과 마음이 떨리는 시간이 잠깐 찾아왔다. 그날은 그게 다였다. 다음날은 뭔가 답답했다. 도대체 뭘까 싶은 찝찝함. 외면하면 안 되는 걸 놓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달고 다녔다. 불현듯 인쇄소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게 맞았다.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종이의 더미가 쌓여있는 무게에 눌려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나무가 쓰였을까. 내가 쏟아낸 말들이 담겨서 세상에 나갈 가치가 있는 걸까. 그저 내 욕심으로 필요 없는 글자들이 쓸데없이 배출돼버린 것은 아닐까. 거침없는 생각을 막아서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헤매다 찾아낸 건 바로 '각오'였다. 사라진 나무와 그만큼 쌓인 종이를 마주하기 위해선 나만의 각오가 있어야 했다. 나무를 뿌리째 뽑을지라도 쓰고자 하는 생각을 꼭 전하고 말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계속 쓰면서도 이날의 각오를 잊지 않겠다.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은 상상뿐이다. 처음으로 잡아든 순간의 느낌은 어떨까. 소중함에 한 장도 넘겨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떨쳐내지 못한 습관으로 오탈자를 찾으려 애쓸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중 책을 내기로 마음먹던 어설픈 처음이 떠올랐다. 남이 전해준 출산에 비유한 출간의 고통을 겪어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떠들던 그때. 지나고 나니 고통이었는지 모르겠다. 한순간도 떨리지 않고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 비록 매 순간 힘들고 괴로웠을지라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고통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벌써 다음번 고통을 기다린다. 혹시 나 중독되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