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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Oct 02. 2021

나를 처음으로 팔아본다

책은 작가를 파는 장사

 직업은 작가도 아빠도 아니다. 누가 물으면 마케터라고 답하고 소개란에도 그리 적어 둔다. 두리뭉실한 설명이지만 '상품을 기획해서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된. 시장에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찾아내 제작해서 판매하는 일을 해왔다. 돌아보니 책을 내는 일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글에 담아 책의 형태 만들었다. 함께 만들 출판사를 찾았고 같이 내놓았다.


이제 마케팅의 화룡점정인 홍보와 판매의 단계다. 역시 시작은 '지인 판매'. 가까운 사람조차 눈길을 주지 않고 평이 좋지 않다면 생판 남에게는 더욱 쉽지 않다. 예전에 App 서비스를 만들었을  주변에 열심히 다운로드를 강요했었다. 무료인데도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힘들었다. 이번엔 심지어 유료다.  이야기를 들어줄지부터 관심을 둘지, 그리고 사서 볼지까지 넘어야  산이 많다. 서운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반대로 요청받을 때의  떠올렸다.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 나중에 겨우 해주면서도 영혼이 없었다. 해본 입장이라   알기에 신중해진다. 자연스럽고 기분 나쁘지 않게. 질척대지 않지만 끈덕지게. 남들  사는  나만  사면 애매해지는 분위기로. 알리는 정성이 갸륵해서 '옜다 사줄게' 이르도록. 출판사에서 사인이 들어왔다. 이제부터 팔면 된다고 했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시작했다.


청첩장을 돌릴 때도 받는 사람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부담을 준 건 아닌가 해서. 이번엔 직접 눈과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화면을 통해 느끼려 애썼다.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참지 않고 후회 없이 시원하게 연락했다. 역시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의 기대와 예상을 모조리 뒤집어엎었다. 격렬한 반응, 놀라운 반응, 대수롭지 않은 반응, 답이 없는 반응. 마음을 열어두고 있었기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감동했지만 기절하지 않으려 애썼고, 실망했지만 주저앉지 않으려 힘주어 버텼다. 며칠 동안 짧은 인생을 한 바퀴 돌면서 정리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관계를 책을 산 사람과 안 산 사람으로 나누어 대하진 않을 거다. 투명 꼬리표가 달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겠지만. 각자의 사정과 방식이 있는 거라고 믿는다. 내가 그들에게 그러듯이.


 모르게  글을 읽고 있는 지인이 많았다. 그동안   보고 있었다며 글이 느는  보였다고 했다.  향한 한마디 한마디가 떨리게 했다. 드디어 나올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바를 모르게 설레었다.  글을 읽지 않던 친구가 " 책이 정말 읽을 만할까?"라고 단톡방에 던졌다. 읽어  다른 친구가 짧게 "석준이  좋아."라고 답했다. 책을 내기 전의 내가 그랬듯 다른 이에게도 출간은  세상일이었다. 굉장한 놀라움은  자체에 있었다. 책을 쓴다는  아무나   없는 일로 여겨.   해본 내겐 누구나   있는 일이지만. 책을 만들어낸 나의 꾸준함을 알아주고 칭찬했다. 육아일기를 끼적거리던 시절부터   이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계속하는 거라고. 그걸 해내 책을 만든 내가 놀랍다고 했다.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행동한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책의 성공에 앞서 지금의 완성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작가 소개말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3일을 고민해서 쓰고 고쳤기 때문에 보람찼다. 한 번은 지인의 지인, 그러니까 나와 전혀 모르는 분의 요청을 받았다. 작가 소개를 읽고는 마음에 무척 들어서 SNS 계정을 알고 싶어 했다. 몽땅 빠짐없이 알려드려도 된다고 하며 꼭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에게 알리는 짤막한 소개글도 반응이 좋았다. 구구절절 담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기에 짧게 담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 보이지 않는 노력이 반갑게 돌아오니 기분이 좋았다. 모른 척 아닌 척하고 지냈었는데 인정에 목말라 있었나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단단해지는 것도 한계가 있나 보다. 달콤한 말 한마디에 경계는 단숨에 풀렸다. 책 제목도 한눈에 들어와서 좋다고 했다. 꼭 바꾸고 싶다며 편집자와 출판사를 괴롭혔던 그때가 민망해졌다. 역시 잘 모르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


아직 보지 못한 사진을 많이 받았다. 책이 속속들이 도착하면서 인증샷을 보내줬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울렁이고 흔들렸다. 내가 뭐라고,  책이 뭐라고, 이런 관심을 받아도 되는지.  권이 아닌 여러 권을  사람도 있었다. 주변에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며 신혼부부, 출산 임박, 육아 초기 지인에게 전해줬다. 농담처럼 10 사야 한다고 그랬었는데 진짜 그런 분도 있었다. 역시 말이 씨가 되니 많이 뿌려놓아야 는 건가.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책과 그들의 온기는 따스했다.


기대의 미치지 않은 적도 많았다. ", 그래? 근데?"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겠다. 영혼 없는 축하와 응원도 많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 미리 마음을 준비해둔 만큼 대수롭지 않았다. 환영하는 사람을 대하느라 일일이 신경  여유도 없었다. 특히 남성의 확고한 무관심이 곳곳에 보였다.  책을 아내가 보면 큰일 난다고 자기만 몰래 보겠다고 했다. 누구는 이런 책이 나오니까 자꾸 남자들이 힘들어지는 거라고 탓하기도 했다. 황당한 반응을 접할수록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남자의 편안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연대가 분명히 존재했다. 무관심한 그들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각자의 삶이 바쁘니 나를 향한 관심이 그들 자신을 위한 것보다 높을  없다. 처음의 다짐처럼 각각의 이유를 이해하기로 했다.


어느 브런치 작가의 출간  소회가 기억난다. "제가 책을 냈는데 구독자분들은 어쩜 이렇게 요지부동일까요." 그땐 가까이 와닿지 않았다. 구독자라고  책을 사야 하느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 안내글을 SNS 올리면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입장이 되어 따져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브런치, 블로그에서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한다. 다른 이의 출간을 눈여겨보며 축하도 건네지만, 실제 구매까지는 선뜻 넘어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가까이에 있었기에 오히려  책이 책으로 느껴지지 않아서다. '너도나도 여기에서 고만고만한 글을 쓰는 사람인데 굳이 책으로까지  필요가 있을까?' 나도 한동안 그랬었다. 책을 내는 작가라 하면 저쪽 다른 세상에 존재해서 닿을  없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어야만 했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의 글을  주고 읽고  않았다.


내가 변한  책을 내기로 마음먹고 나서다. 전과 같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똑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데 누구는 책을 내고 누구는 내지 못한다. 확실한 차이가 있는  분명했다. 최근에 책을  작가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 확실히 뭔가 달랐다. 역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했다. 단순히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간 작가의 책을 보면서 우쳤. 글과 책은 달랐다. 누구에게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답게 엮을  알아야 했다.  방법은 그렇게 만들어진 책에 들어 있었다. 옆에서 함께 쓰는 사람의 책을 읽은  책을 내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을 읽는 출간 희망자는 나라는 쓰는 사람이 어떤 책을 냈는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초판의 책더미 사진을 보고 숨이 막혔다. 평면 이미지로도 전해지는 무게가 굉장했다. 속이 답답해지고 뒷걸음질이 절로 처졌다. 겨우 뒷발로 버티고 서서 마주했다.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마무리해야 했다. 꿋꿋하게 알리고  알렸다. 감격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최고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책이 올라왔을 때. 반년 전에 둘러보며 여기에  책도 있으면 좋겠다며 원고 투고를 했다.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던 장소에 이젠  책이 들어와 있다. 출간  처음으로 볼을 꼬집으며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연이어 기쁜 소식을 접했다. 영원한 사랑이 되어버린 교보문고에서 여러 일이 있었다. 최초 입고 주문이 평소의 3~4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담당 MD가 책을 좋게 보고 더 많이 노출할 생각으로 주문했을 거라는 편집자의 설명이 있었다. 정말 그랬다. <MD의 선택>, <화제의 신상품> 1위, <MD 추천!>, <주목할만한 신간>, <화제의 신간>까지 계속된 경사가 이어졌다. 초반 지인 판매 덕이라는 궁핍한 내 말에 책이 좋아서라고 편집자는 나를 바로 잡아주었다. 종로 영풍문고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연락이 왔다. 원래는 출판사에서 홍보 매대를 요청하고 지불해서 광고하는데, 역으로 먼저 서점에서 올려놓고 싶다고 했단다. 드문 일이 자꾸 벌어지니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다. 내 책이 올라와 있는 서점의 매대 사진을 보니 환상은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은 네이버 <베스트셀러> 빨간딱지도 붙었다. 이 모든 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충분히 행복하다.


처음으로 나를 팔고 있다. 이전까지는 남의 것만 팔아왔다. 내가 담긴 물건을 부끄럽지 않게 권하고 있다. 책을 팔아보니 내가 파는 건 책이 아니었다. 결국 책은 작가를 파는 거였다. 사람들은 책을 만든 사람을 보고 산다. 글에는 저자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는 당연지사 한 말이 분명 해지는 순간이다. 속임은 바로 들통난다. 그러면 책도 작가도 모두 거짓이 되어 사라진다. 그만큼 나 스스로 부끄럼 없는 자신이 중요하다. 내 책에 내가 자신이 없으면 누가 그래 줄까. 그러한 각오로 글을 쓰고 책을 냈다. 아쉬움이 없다는 게 아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끊임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결과에 무한한 자신을 가진다는 말이다. 남의 평가와 선호는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자신 있는 책을 만들었다면 자신 있게 팔아볼 뿐이다.


"작가님, 홍보 그만하시고 본업 육아하셔야죠!" 파랑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나를 팔아준 아내의 말이 맞는다. 파는 것은 내 몫이지만 사는 것은 내 손을 떠났다. 결과에 일희일비하면 끝이 없을 테다. 얼마나 팔렸을까? 어떤 서평이 올라올까? 지금 같은 마음이면 잠 안 자고 계속 들락날락거리며 확인할 수도 있다. 다행히 나름의 방책을 마련해 두었다. 높아지는 흥분과 기대를 옮겨 다음 글에 쏟는다. 책이 나와도 책이 팔려도 매일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나만의 생존 방식이다. 좋은 책이라면 알아서 살아갈 거라는 친구의 말이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오늘도 좋은 책에 담길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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