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Oct 22. 2021

책 판매량은 결혼식 하객수를 넘을 수 없다

출간 후의 깨달음과 다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고민이 생겼다. '볼까? 말까?' 어차피 확인할 거면서 괜히 민망해서 치르는 의식이다.  온라인 서점을 순회하고 새로운 리뷰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바퀴를 돌고 나면 한숨과 함께 어제 했던 생각이 삐져나온다. '에이, 오늘은 보지  .' 나는  그럴  알았다. 진심으로 초연할  있다고 믿었다. 처음엔 신기해서 시작했다. 가까운 주변의 따뜻한 관심으로 믿기 힘든 결과가 눈에 보여서. 다음엔 어디까지 떨어지나 조바심이 나서 찾아봤다.  번을 쳐다봐도 달라질  없는 댓글 창과 같았다. 아무리 집중해서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봐도 없던 댓글이 생기거나 마음에  드는 댓글이 변하지 않듯이. 오늘까지만 보자며 매일 금연을 결심하는 흡연자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글을 쓰기 전에도 둘러보고 왔다.


평가받고 있다. 회사에 가지 않는데도 연말에 검증대에 올랐다.  글이 나이기에  책에 대한 서평은 나에 대한 평가나 다름없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후기는 극호나 극불호일 경우에 탄생한다.  정확히는 '완전한 극극극호' '뭐라도 하나 극불호' 맞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아야지만 그제야 감동을 나눠볼 마음을 먹는다. 작은 부분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적극적으로 불평불만을 담아 시간, , 정성의 손해를 되돌리려 애쓴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다, 책은 다른 물건과 다르다. 사용하기 어렵다. 책을 이용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애초에 끝까지 써본 자가 많지 않다.  써보고 나서야 겨우 나올  있는 서평의 탄생은 확률이 아주 낮다. 이런 특징 때문에 책을 제공하고 서평을 요청하는 서평단마저 존재한다. 드물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책에 대한 의견이 간간이 올라온다. 받았든 샀든 책을 통과하고 남은 마음이 전해진다. 책을 만들며 고칠 때보다  조심스럽게  글자  글자 읽게 된다. 읽어준 감동이 앞서있기에 대부분 따뜻하다. 때로는  하고 멈춰서 지난 고통을 떠올리며 눈물을 참기도 한다. 물론 모두   같지 않아서 이게 정말  책을 읽고  글인가 싶은 것도 있다. 서운하다가도   쓰지 못한  탓이겠거니 하고 만다.  어디에 공개하지 않더라도 따로 연락해주는 이도 많다. 오래 알아  그들의 마음이  귀하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상은  안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한다. 글을  때도 느꼈던 감정이지만 책에서는   크고 단단했다.  생각과 의도를 담은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동의를 받는 느낌이다. 쓰는 맛이 났다. 남이 읽어줘야 살아나는 글을 쓰는 보람과 희열을 맛봤다.  맛에 그렇게도 많은 작가가 끊임없이 계속 쓰고 있었다.


 내보니 책의 독특함을 알게 됐다. 우선 사용자가 정말 적다. 책을 읽지 않는다더니 엄살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읽는 내가 최소한의 기준인  알았다. 아예 책과 따로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책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 셈이다. 필요 없는 사람에겐 어떤 신상품도 돌멩이와 다르지 않다. 기가 막힌  그다음부터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적은데  안에서  책을 읽을 사람은  줄어든다. 분야가 나뉘고,  안에서  나뉜다. 동일한 분야에서 고만고만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 책을 읽고 쓰는 나도 구분이 어렵다. 출판계의 주요 독자는 30~40 여성이라고 한다. 쓰는 사람도 그들을 타깃으로  터이다. 아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가는 핵심 독자층의 관심사에서 육아를 빼놓을  없다. 내가  책은   터지는 육아 분야에 들어간다. 책을 내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미 준전문가 수준. 하루가 멀다고 각종 육아서가 출간된다. 아빠가 쓰거나 아빠를 대상으로  육아서는 많지 않다. 그만큼 생소하고 어색하다. 이쯤에서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러니 희소성,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희망을 나도 가졌었다. 없다, 그런  없다. 닿고자 하는 남성, 아빠 멀어도 너무 멀다. 책도 읽지 않거니와 읽어도 관심 분야가 아니다. 기정사실이었기에 진작 포기했고 희망을 버렸었다. 여성, 엄마 읽어준  전해 주길 바라는  차가운 현실을 반영한 유일한 가능성이 적확했다. 여기서도 장애물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나아 보이고 실용적인 책의 유혹이  책의 매력을 앞선다. 옆에서 변하지 않는 남의 편과 실랑이하느니 엄마표 육아를 터득하는  쉬울 테니.  와중에 내가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몹시 어렵게 닿아서 간혹 읽어주는 여성 독자에게 기도하며 바란다. 가물어 가는  중에 한줄기 빗방울을 바라는 마음으로  통해 퍼져나가는 기적을 원하며.


책은 좋다고 추천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지인과 만나서 책에  이야기를 나누는가? 맛집이나 전자제품, 의류에 대해서는 쉽게 정보를 공유한다. 사용 후기를 전하는 사람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판단이 쉽다. 책은 대화 주제로 오르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적은  여기서도 근본 원인이 된다. 상품을 사서   좋으면 얘기하고 알려줄 사람이 있어야 리뷰를 전할  있다. 책은 이야기할 사람이 별로 없다. 주변 사람    좋으니  읽어보라고 이야기할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혹시 있어도  추천은 복잡하다. 취향을 깔끔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스스로 본인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핸드폰, 신발, 가방처럼 좋아하는 스타일을 쉽게 표현할  없다. 한눈에 눈으로 보고 판단도 어렵다. 직접 읽어봐야만   있다. 정성 들여 읽고 나서도 남는 감정은 제각각이다. 실제로   후기만 봐도 전반적인 호감은 같지만, 느끼는 매력 포인트는 완전히 다르다. 이렇다 저렇다  마음을 남에게 전하기도 어렵거니와 그게 통할 리도 만무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 취향도 아직 잘 몰라 헤매는데 건너 들은 남의 의견이 귀에 제대로 들어올 턱이 없다. 추천받은 책이 손에 잡힐 확률은 희박하다. 확률을 낮추는 요소엔 물리적인 시간도 포함된다. 아무리  책을 읽고 싶어도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고 다음에 읽을 책이 있다. 밀리고 밀려서 영원히 밀려 읽지 못한 책도 많다. 이렇다 보니 하루에 한 편씩 서평을 남기는 소수의 독서 리뷰어, 인플루언서에게 다채로워야 마땅한 감상이 편중되고 있다. 책의 환장할 특징이다.


책은 두 번 세 번 계속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번 보면 끝이다. 읽고 나서 빌려보고 돌려볼 수 있다. 근처에 공짜로 빌려 가라는 도서관이 있으니 말 다했다. 출간 후에 꼭 한다는 도서관 희망 도서 신청을 할까 하다 내려놓았다. 무슨 고집인지 내 책이 손쉽게 빌려 다니는 걸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책을 개인이 사서 소유하기란 드문 일이다. 괜히 유명하고 수백만 팔로워를 가진 사람한테 출판사가 접근해서 책을 내는 게 아니었다. 확보된 팬이 있어야 알리기 쉽고 팬은 일단 사준다. 흔하디흔한 일반인은 알릴 데가 없다. 책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해 줄 최소한의 독자를 확보하기도 요원하다. 자발적으로 홍보해주는 지인에게 눈물 나게 감사한 이유다. 차가운 상황을 파악하자 나도 많이 변했다. 전엔 출간 작가가 셀프 홍보를 하면 거부감이 들었다. '좋으면 알아서 팔릴 텐데 왜 이렇게 질척대나...' 남은 태어났는지도 모를 자식을 안아 들고 다니면서 여기 이런 아이가 있다고 알리는 심정을 몰랐을 때다. 아쉬운 소리 하기를 죽도록 싫어하지만 내가 알리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냐는 생각에 미친 척하며 잊을만하면 떠들어댄다. 주는 축하와 응원에 고마워하며 그 마음이 사서 읽는 것으로 연결이 될지 조마조마 해하면서 계속 외쳐댄다. 지겨워하며 떠나갈 사람이 걱정이지만 그보단 '아 그래? 책을 냈어?'라며 돌아봐 줄 누군가라도 있을까 봐. 한배를 탄 출판사도 온갖 아이디어, 방법을 동원해서 애를 쓰고 있다. 내 책을 싸 들고 다니며 서점을 도는 모습이 짠하다. 그곳에 있었다면 같이 들어주고 싶은 심정으로.


앞선 모든 책이 가지는 한계는 작가의 역량과 책의 내용으로 단숨에 극복된다. 제한 없이 빵빵하게 어디든 틀면 나오는 광고까지 할 수 있다면 좀 더 손쉬울 테다. 처음 책을 내본 초보 작가가 경험한 차가운 책이라는 세계에 대한 한탄이 맞다. 최소한 양보단 질로는 승부를 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얻지 못한 기분이다. 공정한 심판대에 오르면 다르지 않았겠냐라는 아쉬움과 호기심이다. 문득 기막힌 생각이 스쳤다. 첫 책의 판매량은 결혼식에 축하해주러 온 인원을 넘을 수 없겠구나. 딱 내가 아는 사람만 사주겠구나. 안타까운 건 안 산 이에게 찾아가서 사 달라고 간청할 수 없어서다. 방명록이 남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더 슬픈 건 사서 읽은 이도 독자로 부르기 망설여진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친구, 가족, 지인을 벗어나기 어렵다. 어쩌면 그들의 한계가 지금 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에 꽂혀있다. 가보지 못한 서점에도 있고 바로   책장에도 있다.  책에 둘러싸인 기분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고 복잡하다. 아이에게 욱하고 나면 책이 나를 째려보는 듯하다. 이런 놈이 이런 책을 내도 되나 싶어서. 거짓말과 허풍으로 가득  책을 보면 작가를 만나 한바탕 쏴주고 싶었는데 소원을  셈이다. 자책하고 반성하는 날이면 책에게 부끄러워진다. 교보문고의 <MD 선택>으로 선정되고 꾸준히 주문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편집자에게 들었다. 단순히 아빠가 육아하는 흔하지 않은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여성, 페미니즘, 가부장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끔 알콩달콩 육아 일기로 착각하고 읽기도 하는데 제목이나 겉보기처럼 마냥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 아빠와 아빠 옆에 있는 우리 시선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고 말한다. 답답할 때는 이런 소릴 들을 때다. "저는 애가  커서요. 결혼 생각이 없어서요. 아기 생각이 없어서요.”  키워서 다른 젊은 부모가 힘들게 키우든 말든   아니라고 하면  된다. 결혼을   거라서 편하게 혼자 지낼 거니까 모른 척하면  된다. 아기 없이 지낼 거라서 키우는 사람의 노력과 정성을 외면해서도  된다. 육아를 남의 일로 여기고 남의 엄마가 어떻게든 해내는 걸로 여긴다면  사회는 그대로다. 아빠에게 전하려는 마음이 크지만 전부는 아니다. 아이가 커나가는 세상을 채우는 우리가 모두   키우는  힘든지 알아야 한다. 좁은 자신의 공간 안에서 문틈으로 대충   아니라 문을 활짝 열고 나와서 살펴보길 바란다.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없다면 부모와 본인이 겪은 어려움을   자식이, 친구가, 동생이 또다시 겪는다. 그래 봤자  일이 아닌데 뭐라 하지 말라 하면  이상의  말은 없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썼다.  위해 쓰지 않았기에  푼도 빠짐없는 기부를 마음먹을  있었다.  마음은 나와 책장에 꽂힌 초록  둘만 알고 있다.


책이라고 대단하고 특별한 건 아니다. 다른 상품도 만든 이의 철학이 들어 있듯 책도 그것 중 하나다. 잘 깎인 방망이나 맛깔스러운 음식과 책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은 내게 충분히 특별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작가로 불려봤다. 내 이름으로 된 책에 마음을 담아 아내와 아들에게 선물도 해봤다. 책 한 권 냈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수도 없이 들어왔다. 동의하기 어렵다. 세상은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고 내가 변했다면 세상도 변한 게 맞다. 책을 내면서 많이 달라졌다. 글 쓰는 자세가 더 신중해졌다. 예전처럼 순식간에 휘리릭 쓰지 못한다. 쓰고도 쓰기를 마치지 못한다.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친다. 출간을 통해 생각을 세상에 공유해본 경험 덕에 가진 의견을 차분히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어떻게 하면 오해 없이 전해질지 고민이 늘었다. 나누고 싶은 생각이 확고해지면 어김없이 또 글을 쓰게 된다.


흘러가는 방향도 속도도   없었던 무모한 도전. 여러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응원을 받았다. 모든 인연에 일일이 감사하다. " 작가님을 정말  만났어요!" 서로에게 처음이었던  같이 완성한 편집자의 소감이 진하게 남는다. "작가님의 다음 신간을 기다려봅니다." 믿을  없는 독자의 응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결심하고 행동해서 여기까지  내가 마음에 든다. 생각과 몸이 다르지 않았던 내가 좋다. 어쩐지 멈추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예감이 든다. 출산, 아니 출간 도전기는 이제 시작이다. 다음을 예고하며 또다시 감질나는 엔딩을 선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