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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15. 2022

중쇄를 찍을지 모른다는 희망

계속 쓰고 계속 감사하기

아마 그즈음으로 기억한다. 잠시 붙어있던 베스트셀러 딱지가 사라진 뒤. 끝없이 떨어지던 판매 순위가 아예 없어진 뒤. 여전히 알 수 없는 원리의 판매지수가 0으로 수렴한 뒤. 처음엔 허망하다가 나중엔 오히려 후련해졌다. 희미하게 가졌던 기대의 불빛도 아주 꺼졌다. 희망이 사라진 곳엔 절망도 없었다. 같은 원고가 같은 인쇄소를 다시 찾는 일은 없었다. 2쇄를 찍으면 넣으려던 기발한 에피소드가 적힌 종이 쪼가리는 구석에 처박혀 고개 들지 못했다. 증쇄를 그리던 마음은 시원하게 증발했다.


별일이 다 있었다.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생명체인 책은 어린 아기가 세상에 나와 겪듯 온갖 일을 경험했다. 책을 만든 자는 부모처럼 아이가 통과하는 사건에 감정 이입하며 여러 감정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만들어 내놓은 자의 무거운 책임처럼. 제 일처럼 알려준 곳이 있었다. 한국서 다니던 교회와 호주에서 다니는 교회가 먼저 나섰다. 처음으로 책에 사인해서 나눠 주기도 했고, 꼭 사서 보겠다는 약속을 바다 건너 전해 듣기도 했다. 마음 놓고 육아 휴직할 수 있게 만들어준 회사 노동조합에도 책을 선물했다. 넌지시 퍼지길 바라는 기대도 몰래 담아서. 소망이 읽혔는지 선뜻 구성원에게 자연스레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얼굴도 모르는 동료가 책을 사서 읽고 후기를 올렸다. 놀란 마음으로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돌아오면 사인받고 싶다는 응답에 덥석 차도 사고 밥도 사겠노라 전했다. 투고하며 만났던 출판사 중 도움이 되었던 곳에 출간 소식을 전했다. 비록 거절했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책 만드는 마음을 아는 이가 돌려준 답장은 포근했다.


초보 작가의 서평 사랑은 대단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가서 읽고 감사의 흔적을 남겼다. 따끔하게 혼나기 전까지 쭉. 읽어줘 고맙고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다는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그때마다 새로 쓰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결국 복사해서 붙여 넣는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 어느 부지런한 분께 들켜서 작가님 평판에 좋지 않을 거라는 참된 충고를 듣고는 멈췄다. 단 한 줄이 되더라도 느낀 바를 직접 적으며 소통하지 않는 건 내게 독이 맞았다. 초심을 잃고 어이없게 했던 복에 겨운 짓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후기가 뚝 끊겼다. 내 탓이라며 한탄할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독자의 감상을 목격했다. 출간 직후에는 대여보단 구매만을 멋모르는 애처럼 마냥 바랐었다. 시간이 흘러 기대가 사라져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해서 읽고 느껴주면 좋았다.


책은 살아있는 게 확실했다. 단순히 글자와 종이로만 머물지 않았다. 여러 형태로 변하며 퍼져나갔다. 전하고자 하는 본질은 같았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날아다녔다. 처음엔 독자의 글자로 변했다. 읽고 난 후의 생각과 느낌이 각기 다른 글로 남았다. 중간중간 내가 쓴 글이 인용되는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전율이 흘렀다. 육아 매거진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관심 있게 봐주고 열심히 담아주어 마음이 닳도록 고마울 뿐이었다. 얼굴을 내보이며 밤늦게 한 시간도 넘게 혼자 떠들었다. 오래 알고 지낸 블로그 이웃이 마련해준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 하고 싶은 이야길 원 없이 했다. 내가 뭐라고 귀담아들어 주는지 참 민망하고 감사했다. 나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공공 기관에서 인터뷰도 요청받았다. 변화로 요동치는 시대에 걸맞은 내 생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상의 행동을 위해 목소리를 보탰다. 인터뷰와 책을 보고 강의 요청을 종종 받았다. 몸이 멀리 있는 탓에 진행할 수 없어 아쉬워했다. 기어이 시대에 맞는 온라인 강연을 제안받았고 열심히 준비 중이다. 나몰라 아빠에서 전업 아빠로 변해 살아가는 흥미진진 업데이트 스토리를 담아서. 쓴 건 글이었고 엮은 건 책이었지만, 세상에 돌아다니는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 다채로운 모습으로 색다른 체험을 하듯이.


써낸 책의 다양한 변신 덕택에 실천하고자 했던 다짐을 꾸준히 지킬 수 있었다. 처음 쓰면서 했던 나만의 약속은 하나였다. 쓴 글이 읽히고 사랑받아 대가를 남긴다면 모두 나누겠다고. 내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고 믿었다. 단순하지만 순수한 욕심의 결여는 쓰는 데 도움이 됐다. 글을 많이 팔아 숫자로 보상받겠다는 생각을 빼버리니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기고 글로 받은 원고료, 출간 계약으로 들어온 선인세, 유튜브에 올라간 인터뷰 출연료, 여러분과 만나게 될 강연료까지. 예상치 않은 수익으로 결심했던 나눔을 풍성하게 행할 수 있었다. 따뜻한 발걸음이 쌓일수록 세상에 필요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단단해졌다.



책이 스스로 살아가며 남긴 생의 흔적



아내는 요즘 심각한 얼굴로 내게 짠하다고 한다. 틈만 나면 책을 알리려는 몸부림을 보느라.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옆에서 보는 게 민망했는데 지금은 계속 혼자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나. 그때마다 대답한다. 아무렇지 않다고. 회사 다닐 때처럼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남의 걸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다 들어있는 나만의 것을 알리고 파는 건 신나는 일이라고. 도대체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줄까 싶은 마음도 있다.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 심지어 지금은 주변을 신경 쓰느라 그나마 줄인 거라고 하면 아내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허탈하게 웃는다. 나는 정말 괜찮다. 계속된 자체 발광 덕분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팔리고 알려졌다고 믿는다. 원하고 바라는 일은 하고 만다. 행동엔 후회가 없다.


나만 바라보는 지독한 뚝심은 꼭 남에게도 이롭게 작용하진 않았다. 지겹고 지나치다며 떨어져 나간 인연이 생겼다. 다행인 건 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홍보가 싫다고 해서 개운했다. 빙빙 돌려가며 싫은 티를 내길래 단도직입으로 물어본 건 나였지만. 돌아서고 나니 찜찜했던 옛날이야기가 퍼즐처럼 맞아떨어졌다. 먼저 취업한 내가 이유 없이 불편했다는 소문을 뒤에서 들은 적이 있다. 대수롭지 않게 취업이 안 되니 된 사람이 미워 보일 수도 있겠다며 넘겼다. 무례한 질문도 주기적으로 던졌다. "너희 회사는 뭐 한다고 그렇게 돈을 많이 주냐?"라고 거침없이 말하곤 했다. 내게 꼬인 시선을 가진 자에게 책 냈다고 알리는 꼴이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고만고만하던 옆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하면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 신기해하며 응원도 하지만 낯설어하면서 오버하지 말라고도 한다. 도토리 키 재던 시절엔 비슷비슷하니 잘 지냈는데 갑자기 튀는 모습이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나쁘고 힘든 일이 아닌데도 싫은 티를 팍팍 내고 눈치를 주니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도망갈 테다. 무심한 사람도 힘들지만 못마땅한 반응은 더 괴롭다. 밝은 기운을 주고받는 관계만 챙기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발목 잡으려고 삐딱하게 보는 자에게까지 감정을 낭비할 틈은 없다. 내 삶은 소중하니까.


혹시 너무 심하게 굴어서 멀쩡한 사람도 학을 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봤다. 남보단 나를 신경 쓰는 탓에 나도 모르게 선을 넘었을 수도 있으니까. 해도 바뀌었고 해서 문득 생각나는 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가 책 많이 팔리냐며 먼저 물었다. 잘 되면 자기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주변에 많이 팔아줬다는 생색도 잊지 않으며. 관심에 고마워하며 근황을 알렸다. 덕분에 인터뷰도 했고 이번엔 강연도 한다고. 네 놈이 뭔 강의냐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릴없이 인정하며 부끄럽지 않게 준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친구는 오랜만의 안부 좋았다는 인사와 함께 마지막 한 방을 때렸다. 보내준 강의 사이트를 가리키며 "저거 결제해서 들으면 되는 거지?"라고. 화들짝 놀라며 그런 거 아니라고, 네 덕에 책 많이 알려져서 이런 것도 한다며 알린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뜨거워지는 마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심한 게 아니었구나. 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큰일을 치르면 관계가 정리된다는 말처럼 책을 낸 덕분에 관계가 깔끔해졌다. 복잡하고 너저분한 주변을 말끔히 다듬고 싶다면 책 내는 걸 추천한다.


온전한 내 것이 팔려나간 숫자를 확인했다. 바로 어제 첫 인세 정산 내역을 받았다. 첫 느낌은 '우와!'였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기대와는 다르게 꽤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저 감사했다가 곧 궁금해졌다. 누가 샀을까? 눈앞의 숫자가 진짜라면 모르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일 텐데. 냉정하게 따져서 나와 아내의 결혼식 하객수는 빼야 했다. 근데 축의금 목록의 인원을 다 빼도 남는 사람이 있었다. 굳이 지인이 일부러 여러 권씩 산 게 아니라면. 출간 직후에는 아는 사람 중에 누가 살까 궁금했었다. 강요하는 기대를 접고 나자 시들해졌다. 사 줄 사람은 살 거라며 마음을 닫았다. 이젠 모르는 사람 중에 누가 산 걸까 미치도록 알고 싶다. 날 읽어준 순수한 독자는 누구였을까. 설마 뒤늦게 찾아온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


정신 나간 마음을 붙들어 두고 감사의 자리로 돌아왔다. 누구는 선인세만큼도 못 팔아서 마이너스로 찍히기도 한다는데 놀라운 성과였다. '책 판매에 따른 작가의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라는 책날개의 문구가 민망해질 일은 없게 되었다. 경건함도 아주 잠시, 저쪽에 쭈그러져 있던 근자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지금 겨우 3개월 치잖아. 그럼 아직 할 만한 거 아냐?' 이름 아는 사람만 살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람도 샀다는 걸 알게 되더니 사라진 희망이 어느새 돌아와 자리 잡고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어려우면 스테디셀러로 가면 되잖아?' 들뜬 마음은 나쁜 마음까지 낳았다.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이 늦게 오면 좋겠다고. 그날이 오면 내 책은 쓸모없어질 테니까.


벌써 일 년이 되어가는 첫 도전이 첫 수확을 맞으며 일단락되었다. 옆에서 아내는 아직도 "누가 당신이 책을 낼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라며 놀란다. 놀라운 사건을 특유의 분석 본능으로 파헤쳐보면 뻔한 결과가 나온다. '쓰고 싶은 마음'과 '읽는 이에 대한 감사'. 결국 쓰기에서 다 줄이면 이것뿐이다. 쓸데없는 욕심이 쉴 새 없이 비집고 들어오지만,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다 보면 '중쇄를 찍자!'는 모든 작가의 희망을 이루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 계속 쓰며 계속 감사하고 싶다.


모든 첫 경험이 그러하듯 처음은 아찔하고 짜릿하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근질근질한 몸을 긁적이며 꿈틀대고 있다. 아무래도 다음 도전을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곧 두 번째 출간 도전기로 돌아오겠다. 출발하며 건넸던 처음의 부탁처럼 때로는 위로를, 어쩌면 축하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출간 도전기로 탄생한 첫째, 아내와 아들에게 선물하며 쓴 첫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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