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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Feb 25. 2022

둘째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벌써 잊어버린 첫 책의 고통

첫째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낳고 기르며 아찔했던 순간을 잊는다고 한다. 망각의 동물에게 어울리는 변화는 특히 다른 어린 아기를 보면 급격하게 찾아온다고 한다.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둘째 생각이 절로 난다고 한다. 엄마와 절대 같아질  없는 아빠답게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나온 시간을 잊지 않았다. 그때를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에 둘째 이야기를 건네는 아내의 얼굴을 믿을  없는 표정으로 매번 바라봤다. '정말 잊어버린 거야? 어떻게 그럴  있어. 말도  되게 힘들었던 그때를.'


비할 바는 아니지만 1년 동안 임신해서 나만의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고 5개월을 키워봤다. 출산의 고통은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면 전부 잊혔다.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눈앞의 빛나는 첫 아이는 예쁘기만 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필요했던 인내와 가치였다고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자식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부모의 손을 떠나 알아서 커간다. 더 이상 챙겨줄 필요가 없어지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휑해진다. 바라볼 때마다 여전히 기특하지만, 문득 허전한 기운을 느낀다. 첫 책을 내 품에서 떠나보내고 나니 아들이 클수록 느끼는 아내의 감정을 이제야 좀 알겠다. 찾아온 공허와 맞물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남의 새 책을 보면 구미가 당겼다. 톡톡 튀는 제목과 눈부신 디자인, 멋진 기획으로 꽉꽉 담긴 충실한 내용까지. 괜히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나도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는데.'


둘째를 향한 마음은 그렇게 불타올랐다. 한번 해본 경험은 힘든  뻔할 거라는 걱정보다는 아니까  잘할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불을 붙였다. 막연히  되고  거라는 믿음 고민 없이 내달리는  적격이었다. 복잡하게 따져본 뒤에도 정해진 결정이 맞나 싶어 돌아보던 숱한 지난날은 이제 멀다. 하고 싶은  일단 해보고 판단하는 지금의 방식은 삶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의지를 다잡고 다음 출산을 위한 준비물을 챙겼다. 한쪽 손엔 '도전할 용기' 들려있었고 다른 손으로 집어   '쌓아둔 원고'였다.


이 정도면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할 법도 하다며 써 둔 글 뭉치가 있었다. 바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물어봐 주는 이가 없으니 이번에도 시작하는 쪽은 나였다. 할 말이 많아 쟁여 놓은 원고는 여럿이었고 그중 한 가지를 골라야 했다. 책을 위한 원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쓸 수 있거나, 아니면 꼭 쓰고 싶거나. 가진 이야기가 풍부한 경우와 원하는 내용이라 기필코 채워보고 싶은 경우로 나뉜다. 영어로 치면 Can과 Want 정도의 차이라고 해두면 되겠다. 둘 다 만족하는 경우라면 원고의 완성은 시간문제다. 언제나 편한 길을 지독하게 찾는 난 꼭 겹치는 주제를 찾아 쓴다. 가끔 Want가 부족하면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맞춘다. 넌 이걸 간절히 쓰길 바라 왔다면서. 반대의 Can은 당장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키를 높여야 하는 쪽은 정해져 있다.


 쓰기 전문가라 칭하는 자는 사전에  시장조사를 해서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분야와 주제로 고르라고 주장한다. 좋은 의견이다. 상품을 만들고 팔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터지는 곳에 들어가 봤자 뻔하니까. 그렇지만 우연히 찾더라도 내가   없거나 쓰고 싶지 않으면 어쩌나. 나중에  말도 없고 쓰고 싶은 것도 없어진 다음에도 죽도록 책이 내고 싶어지면 몰라도. 글을 쓰는 이유는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다.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어서 글자 사이에 파고드는 상황인데 여기까지 와서 확률 싸움은 하기 싫다. 잘되면 좋은  아니냐고? 잘될  같아서  잘되면 안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니치마켓이든 블루오션이든  똑같다. 잘되면 잘되는 거고 안되면 안되는 거다. 내일을 보는 신이 아니기에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뿐이다. 이것저것 꼼꼼히 잰 뒤 하기 싫어도 이왕이면 있어 보이는 것만 골라서 하던 삶은 충분하다. 아직 그게 좋다면 언제든 예전으로 돌아가서  눈치 보며 살면 된다. 굳이 궁둥이 아픈  참아가며 자음과 모음 붙잡고 낑낑대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아니면   없는 것으로 정했다. 어제의 나도 아니고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내가.  번째 책과 같은 이유다. 육아휴직  전업 아빠로 지내며 얻은 깨달음을 담았듯  번째 책엔 회사를 쉬고 있는 휴직자로서 가진 고민과 열망을 담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에 대한 망설임과 새로운 곳을 향한 용기가 적힌 <복직과 퇴직의 저울> 집어 들었다. 10 직장생활이 들어있는 원고에는 다양한 소재와 온갖 감정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매듭짓지 못한 결정도 고스란히 풀린  남아있다. 현재만   있으며 지금 쓰고 싶은 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회사를 잠시 떠났기에 잘할  있는 이야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겪는 힘듦을 함께 나누어 끄덕이며 읽히기를 바란다. 나만 그런  아니구나 하면서. 또한 회사에 갇히지 않고 다른 시도로 변화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고 싶다. 일에 치여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지만 삶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힘을 내어보자고. 원대한 바람이 내가  글로 될진 모르겠지만 만들고 싶은 의 모습이다.


수없이 읽고 고친 글을 처음부터 다시 눈과 마음으로 읽었다. 마친  드는 생각은  가지였다. 먼저 엄청난 부끄러움이 몰려왔는데   투고할  보낸 걸레 같던 원고 때문이었다.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걸 들이밀며  만들어 달라고 외쳤을까. 검토하느라 고생한 모든 출판사에 미안했고 받아준  출판사에 감사했다. 이번 원고가 좋다는  아니고, 기본의 기본도 갖추지 않고 어디서 굴러먹던 구멍 숭숭 뚫린  쪼가리를 짜깁기해서 보낸 그때가 엉망이었다. 다음에 찾아온  한참 다듬어야겠다는 냉정한 판단. 글을 쓰고 퇴고를 마칠  이만하면 됐다고 느껴서다. 근데 다시 보면 그게 아니다. 지난번의  뜨거운 모자람과 이번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만나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했다. 쓰는 시간 이상으로 걸릴  훤히 보였다. 글을 쓰면 시간이 이상하게 흐른다. 쓰는  1이면 다시 읽고 고치는  1보다 줄어야  그렇지 않다.  번째 다시 들여다봐도 그때마다 1보다 무조건 크다. 고치지도 않고 멋모른  싸지르던 그때가  편했다. 모르는  약이라더니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보이는 지금은 어렵다. 지겹다 재밌다 찡그렸다 웃었다 하며   시간을 썼던 글과 뒹굴었다. 끝은 수준이 아닌 시간을 정해서 마쳤다. 한계를 정해 놓지 않으면  고치기는 평생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가장 싫지만 제일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이놈의 <출간 기획서> 작성. 말하지 않아도 네 놈 중요한 거 잘 아니까 보채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원고 정리가 마무리될 즈음부터 머릿속에서 바람 빠진 주유소 인형처럼 날뛰었다. 들어갈 항목은 처음과 변함없었다. '제목, 분야, 키워드, 핵심 주제, 기획 의도, 예상 독자, 차별화 요소, 저자 소개, 목차, 홍보/마케팅 전략, 유사 경쟁 도서 분석' 하나하나 마음에 구겨 넣고 며칠을 묵혔다. 정해진 날이 되어 책상에 앉아 단숨에 부러뜨렸다. 만약 기획서가 어렵다면 그 책은 애초에 구상부터 원고까지 몽땅 잘못된 거라고 몰아세우면서. 골치를 썩이는 부분은 늘 '비슷한 책과 넌 뭐가 다르냐?'인데 이번에도 막무가내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다른 책은 잘 모르지만 내 것이 제일 좋다고. 결국 이래서 저래서 잘났다고 해야 하니까. 마치 취업 면접에서 단점을 말할 때, 너무 시간을 잘 지키고 모든 일에 완벽해지려 해서 문제라고 돌려서 자신을 추켜세우듯이. 같은 분야 책을 다 읽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편으로는 애플의 아이폰도 생각났다. 이미 나와 있는 거 찾아보고 조사할 시간에 내 것이 유일하고 독보적이겠거니 마이웨이로 가는 게 멋지지 않을까. 이것보단 이게 낫고요, 저것보단 요게 나은 책을 만들겠다는 건 너무 없어 보이지 않을지.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살펴보지 않아도 내가 최고라는 말이다.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글도 쓰고 책도 내고 하는 게 아닐까 하며 스스로 두둔했다.


여기까지 준비하면서 울렁거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자신감만 가득 차서 도전했던 처음과는 다르다. 적절히 긴장도 되고 적당히 설레기도 한다. 지나온 경험 중 비슷한 순간을 꼽자면 호감 가는 이성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갈 때처럼 떨린다. 뭔지는 몰라도 엄청난 장면과 상황에 놓이고 말 거라는 느낌. 유일한 차이라면 아직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랄까. 아, 또 다른 차이도 있다. 누구랑 보러 갈지 정할 수 없다. 함께 가자는 사람이 나타나야 갈 수 있다. 할 수 있는 건 원하는 후보를 정해서 '나랑 같이 갈래?'하고 물어보는 정도다. 이번엔 누구랑 가게 될까. 아직 정해진 건 없다. 그래서 두근거리나 보다. 궁금해 죽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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