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Sep 24. 2021

청첩장 돌리는 마음으로

사전 예약 시작

지난 며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고 가며 만나고 연락 주고받는 사람 사이에서 가라앉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곧 세상에 나올 내 책 때문에. 책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했다. 먼저 꺼내 주지 않으면 괜히 서운했다. 분명히 전에 이미 여러 번 관심과 축하를 받았지만 이상했다. 어린아이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려놓고 계속 우쭈쭈를 바라는 모습 같았다. 어쩌다 출간 소식을 물어주면 그렇게 반가웠다. 덤덤하게 티 안 내며 대답하는 내가 미덥지 않을 정도로 속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우면 내 속이 궁금해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내 글을 지인이라고 꼭 읽어주길 바라지 않는다고. 글은 읽고 싶은 사람이 읽는 거라서 권하지도 않고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저 얼굴을 안다는 이유로 억지로 그들의 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그간 거짓말을 해오며 스스로 속여왔던 걸까. 사실은 누구보다도 관심받고 싶은데 실망이 무서워서 외면했던 걸까. 그땐 진심이었다면 책이 글과 달라서일까. 책을 쓰는 건 특별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동안 묵묵히 나만 바라보며 해왔던 일에 대한 보상이 다급해지기라도 한 걸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서 겪어온 나만의 고생이 돌아보니 아까워져서.


하루에도 여러 번씩 남의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내가 어색하다. 누구보다도 단단해졌다고 당당할  있을  알았는데. 바라봐주는 시선과 지나치는 발걸음 사이에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간다.   뻔뻔하게 내가 먼저 꺼내도 되지만 그것만큼은 어렵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하느라. 본인은 노력 없이 남의 정성만 바라는 마음이  같지 않아서 슬프다. 남은 어쩔  없는 존재이며 나만 옳게 굴면 된다던 다짐이 쉽게 무너진다. 혼자서 속이 타들어 가다가 괜한 불똥을  사람에게 . 누구보다도  글과 책에  응원을 주는 파랑에게도 서운할 때가 있다. 책이 나오고 나면 파랑의 지인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길 바란다. 나보다 요청과 부탁,  나아가 자랑도 취약한 그녀는  번도 시원하게 대답해  적이 없다. 아마 벌써 누구한테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덜덜 떨고 있을 테다.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옆에서 초조해하며. 파랑을  알면서도 유별난 상황이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모양이다.


바로 며칠  뒤숭숭한 마음이 갑자기 ''하고 바르게 잡혔다. 어떤 상황에 놓인  파악했다. 결혼 직전, 기쁜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돌리던 그때와 같았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주변에 알리는 설레는 순간이 지금과 겹쳐있었다.  당시 고민청첩장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줘야 하는지였다.  선배의 조언이 크게 와닿았다.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모두 주면 된다고 했다. 축하와 참석은 받은 사람이 판단할 테니. 대신 반응에 목매다가 실망하지 않도록 하라고.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으려니 이해하면 된다고. 많이 축하하고 와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의 결혼이 기쁘지 않은  아니었다. 정확히 같은 마음으로 출간 소식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이 알아주고 사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의 출간이 기쁘지 않은  아니다. 집중해야 하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 지금 기억하고 느끼는 일이다. 다른 이의 관심과 사랑은 어찌할  없다. 전하고 싶은 이에게 알릴 뿐이다. 비록 그가 관심이 없더라도.


인쇄를 기다리는 동안 편집자와 나는 또 하나의 책을 만들었다. 첫 책이 나오기도 전에 두 번째 책을 만들기 시작한 거라면 근사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책과 함께 받아볼 사은품을 제작했다. 사실 시작부터 끝까지 난 한 게 없다. 전부 편집자의 애정과 정성으로 탄생했다. 통통 튀는 센스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부부나 애인 간에 나누면 좋을 귀중한 질문이 담긴 '문답 노트'. 한참 고민해서 우리와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채웠다.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에서 낳은 동생 같았다. 내 책과 내가 더 특별해진 기분이 한껏 들었다. 회사에서 고객 사은품 만들라고 하면 예산에 맞춰 대충 쳐내고 말았는데 이번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내 이름이 걸린다는 사정은 태도를 바꾸기 충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아직 멀리 있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없었지만, 화면으로는   있었다. 손에 잡힐  느껴지며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만질  없으니 눈을 감고  장씩 넘겨본다. 제목과 이름이 박힌 앞표지. 편집자가 애써서 책을 한눈에 담아준 뒤표지. 표지 안쪽에 들어가 있는 작가 소개와 에필로그의  부분.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구. ' 판매에 따른 작가의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액 기부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먹었던 희망과 목표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글을 쓰고 싶은 순수한 욕심 말고는 모두 빼고 싶었다. 다른  남는다면 약하디약한 내가 흔들릴  분명하니.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쓰고 싶었다. 이기적인 나는 나를 위해서 포기했다. 내가  글은 읽어주는 독자의 힘으로 생명을 얻는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욕심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얻은 기운만큼 다른 이에게 힘을   있으면 좋겠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책이란 이렇게 세상을 바꿔 가는  아닐까 하며 혼자 뿌듯해 본다. 출판사는  마음을 알아주며 단단하게 책에 새겨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청첩장을 돌리는 마음으로 알리고 또 알리려 한다. 나답지 않은 후회는 하지 않도록. 단 한 명의 숨은 독자도 놓치지 않도록. 초고 완성 후, 고민 끝에 썼던 수줍은 소개말로 이 책을 추천한다.


아빠란 어떤 존재일까요?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그리고 아빠는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요? 이 수많은 질문에 마주 선 막연히 ‘좋은 아빠’의 꿈을 꾸었던 한 아빠의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왜 아빠는 육아를 외면하고 모른척하며 엄마에게 모두 미루어 두는지 몰랐습니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라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내 아이에게 그저 그런 이름만 아빠인 사람으로 불리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행동했습니다. 이제는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덜 어색해졌습니다. 제 이야기가 당신에게 고민의 시작을 열어주길 희망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순간까지 읽히길 바랍니다.


이전 16화 나무를 뿌리째 뽑을 각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