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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04. 2021

편집자 없이 해야 하는 마감

담당 편집자의 퇴사

퇴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게 영향을 끼친 최초의 퇴사였다. 어느 지인의 퇴사보다도 충격이 컸다. 함께 계획하고 맞이했던 아내의 퇴사와는 달랐다. 담당 편집자의 빈자리 남달랐다. 단순히 무언가 있다가 사라진 느낌이 아니었다.  있어야  것이 빠져서 휑하게 드러나 버린 상처 부위 같았다. 쉽게 나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라졌다. 내게 처음 다가왔던  이제 하나도 없다.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던 출판사 이름도 출간 분야의 변경으로 바뀌었다. 나를 알아봐  담당 편집자도 회사를 떠났다. 살아오며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만  일어나는 일을 많이 보아왔기에 억울하진 않다. 괜히  때문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상관은 없겠지만 원고  쓰고 딴짓했던 순간을 원망해본다.


퇴사의 이유는 어색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개인 사정.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퇴사를  먹듯이 떠올리며 다녔던 직장인이라 손쉽게 이해했다. 개인의 삶보다 무엇이  앞설  있을까. 회사는 우리를 채우는 작고도 아주 작은 부분인데. 그런데도 자꾸 내게 많이 미안해해서 내가  미안했다. 어디에선가  위해 홀연히 나타났던 그때부터였다. 처음 연락을  순간부터 나눈 이야기가 우리 사이에는  많았다. 원고의 내용과 글이 좋다는 칭찬, 함께 잡아가고 맞춰갔던 책의 방향. 출간이 무산될 뻔한 위기에서도 든든한  편이었다.  편집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손들어주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있을  없었다.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출간 계약서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후 썼던 책의 나머지 내용도 쓰이지 않았을 테다.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단지 아주 아쉬웠다. 함께 완성하지 못해서, 끝까지 가지 못해서, 처음을 함께한 사람과 마지막을   없어서. 헤어지는 인사, 나중에  책을 사서 보겠다는 말이 아련하게 남았다.


혼자 남겨졌지만 해야  일은 그대로였다. 원고를 마감해야 했다. 한쪽이   느낌이었지만 어쩔  없었다. 솔직하게 외로웠지만 가만히 멈춰 있을  없었다. 억지로라도 혼자가 차라리 편하다고 속여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오롯이 마음을 바로잡고 책에 담을 것만 생각해야 했다. 원래부터 홀로 쓰고 있던 것처럼 계속해서 써야 했다. 책을 쓰는 방식은 간단했다. 마감을 정하고 기획하고 썼다. 단순하고 당연했다.


먼저 '마감 일정'을 달력에 그렸다. 특별한 이유나 규칙은 없다. 추가 꼭지를 3일마다 쓰기로 했다. 중간중간 삶의 일정을 고려해서 조정했다. 중요한 건 3일이니 4일이니 하는 게 아니었다. 나와의 약속을 무조건 지키려는 의지였다. 핑계는 만들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내겐 허용되지 않았다. 그날은 치열하게 쓰고 남은 이틀은 즐겁게 고민하고 구상했다. 나만의 원고 마감 패턴을 ‘강약약 강약약’이라고 부르면 되려나. 물론 그 기간에도 매일 쓰기는 계속 이어갔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했다. 쓰지 않으면 그나마 잡은 감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


   위기가 있었다. 쓰기로 되어 있는  새벽까지 고민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시작도  하고 앉아있다가 머리를 싸매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웅크려 누웠다.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있었다. 고민을 핑계로 쿨쿨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왕 이렇게   오늘은 제칠까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러면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나 들여다보기에 이르렀다. 문득 다시 앉아서 쓰기 시작했다. 일정을 수정하는 노력으로 차라리   꼭지를 마감하는  나아 보여서. 결국 조금 늦었을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덕분에  이후도 어긋나지 않았다. 다짐을 저버리는 유혹은 시시각각 쉽게 찾아왔지만, 원해서 하는 일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악필로 가득한 외로운 원고 작성 스케줄

   

모든 일에는 '기획' 필요하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일도 그렇다. 책을 위한 글을 쓰면서 기획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누군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고 하는데 나는 철저하게 지양한다. 일단 준비 없이 쓰면 편하다. 해봐서 안다. 하지만 편한 만큼 놓쳐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철저한 기획 하에 쓰인 글이라도 속을 채우는  의식의 흐름이기에 날뛸 공간은 충분하다. 쓰기 전에 주제에 맞는 처음과 마지막을 정해놓는다. 들어갈 예시와 근거도 구상해 둔다. 때론 시답잖은 드립(애드리브) 떠오르는 바람에 나중에 써먹으려 챙겨두다 보면 기획의 절반을 덮기도 한다.  많은 부분을 정해놓고 시작해도 쓰면서 마구 변한다. 처음의 기획과 완전히 달라진 완성된 글을 보면 낯설지만 마음에 든다. 맨땅에 헤딩하듯 써버리면 얼어붙은 하나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변화의 시도도 없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를 글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기획을 통해 미리 써본 글이 있으면 다르다. 쓰고자 했던 글로부터 실제 쓰기를 통해 꿈틀대면서 자라난 글에는 여러 고민의 흔적이 서려 있다. 돌아보면 해왔던 일이 똑같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생각해보면 할수록 나중의 결과에는 실수가 적었고 만족감은 커졌다. 무턱대고 덤벼서 만들 때보단 이렇게 저렇게 해본 뒤가   좋았다. 어디에나 타고난 천재는 있다. 괜한  필요 없이 쓰고자 하면 걸작이 척척 나오는 사람들.  애당초 그들과는 거리가 멀다.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범인이라 인정하고 그렇게 쓴다.


마감 일정과 기획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세상일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부분도 생겼다. 우선 글이 쭉쭉 써지지 않았다. 제일 달라져서 놀랐다. 책을 쓰기 전의 글은 100미터 달리기 하듯 주르륵 쓰고 말았다. 책을 쓰기 위한 글은 장거리 계주에서 중간중간 바통 터치하듯  뛰어왔나 돌아보게 되었다. 쓰면서 쌓인 시간의 무게 덕에 글의 차이는 있었다. 아쉽게도 '글이 늘었다' 보다는 '눈치가 늘었다' 표현이  정확했다. 예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달려 나가던 방식은 전체 흐름을 놓치는 일은 없었다. 맞춤법 오류, 비문 생성, 동의어 반복이 어마어마해서 나중에 고치는 시간이  많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아가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비는 부분을 빠짐없이 채우면서 모자라지 않게 차근차근 나아간다. 속도는 더뎌지고 너무 돌아보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처음으로 돌아가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늘어버린 눈치는 단숨에  내려가는 호쾌한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늘어야 할 글은 안 늘고 양이 늘었다. 가급적 한 꼭지를 4천 자 내외로 쓴다. 쓰기에도 읽기에도 적당해서 그렇게 써왔다. 한데 책에 들어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점점 할 말이 많아졌다.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말도 넣고 싶어서 글이 점점 늘어났다. 많이 써서 책까지 쓰게 되면 글이 늘 줄 알았는데 뱉어내는 글자의 양만 늘었다. 아무리 단순하게 문장을 닦고 고쳐도 쉽지 않았다. 나와의 타협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것도 절대 빠지면 안 되고 저것도 빠지면 큰일처럼 보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추가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던 시절이 우스워졌다. 소중한 나무를 낭비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때론 계획대로 때론 예상 밖으로 이런저런 굴곡을 지나며 빈 종이를 채워갔다. 다 채워진 글자들은 방대했다. 이걸 다 내가 쓴 거냐고 놀라기 전에 언제 다시 읽고 고치냐는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벌거벗은 채 마무리할 수는 없기에 마음을 다잡고 읽어 내려갔다. 직접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움과 낯섦을 자주 마주했다. 그게 퇴고였는지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어설픔과 억지를 없애려고 애썼다. 가끔은 고치기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즐기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멈춰 서기도 했다.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니길 바라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원고를 완성했다. 그러고 보니 완성된 원고를 보낼 곳이 없었다. 보내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이미 없었다. 언제까지일지 몰랐지만 그날 하루를 묵혔다. 다음  아침 익숙한 출판사의 낯선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예정된 인연이라고 믿고 싶은 정도로 절묘한 만남의 시작이었다. 나의  번째 편집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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