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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27. 2021

코스트코를 가면 코스트코를 사 와요

호주 코스트코(Costco)

파랑이 한창 준비하던 공부가 일단락되었을 때. 우리 가족의 여유로운 휴식기가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첫 주말 토요일. 우리가 일어나자마자 찾아간 곳은 바다도 공원도 아니었다. 바로 다름 아닌 ‘코스트코(Costco)’였다.


차로 40분이 넘는 거리여서 평소에는 쉽게 다니지 못했다. 이번엔 편안한 마음으로 나들이 겸해서 길을 나섰다. 아주 솜털처럼 가볍게 떠났지만 올 때는 차가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무겁게 돌아왔던 그날을 기억한다.


Costco Wholesale

17-39 Cook Ct, North Lakes QLD 4509

https://g.page/Costco-North-Lakes?share




정산 결과


우선 가장 기억나는 것이 쓰고 온 돈이라서 정산부터 해야겠다. 간단하게 말해서 1주일 렌트비가 나왔다. 절대 이러려고 간 게 아니었다. 카드를 놓고 딱 쓸 만큼 현금을 찾아가라는 경험자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였다. 쇼핑 400불 + 점심 20불 + 주유 40불 = 460불(=37만 원) 계산할 때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치니 직원분께서 귀엽다는 듯이 받아치셨다.


‘이건 별거 아냐, 난 2,000불도 봤어. 알잖아, 사람들이 쇼핑에 미쳐있다는 거~’


나를 위해 생각을 재빨리 전환했다. 1박 2일로 숙소 잡고 놀러 갔다 온 셈이라고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많이 샀으니 2~3주는 따로 장을 보지 않아도 될 테니 미리 장 본 셈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우린 코스트코에서 무엇을 사 왔을까?


분명히 카트는 텅텅 비어있었는데...




득템 목록


동물 세계 지도 / 로알드 알 전집


1. 동물 세계 지도

이건 정말 마음에 든다. (가격도 착하고, 아마 7불?)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딱인 선물이었다.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세계 곳곳에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방 한쪽 벽에 붙여 두었다.


2. 로알드 달 전집 (16권)

사랑하는 로알드 달 책이어서 너무 사고 싶었지만 내려놓은 상품. 가격도 착해서 고민했지만 이미 대부분(12권)이 집에 개별 낱권으로 있는 상태여서 포기했다. 로알드 달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면 완전 강추다. 아이, 어른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BFG, 판타스틱 폭스 등등)



소룡포 / 새우튀김 / 작은 생선튀김


3. 소룡포

사진이 너무 그럴듯해서 사 왔다. 물론 사진과 실물은 달랐지만 그래도 샤오롱 빠오 맛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 맛이 그립다면 한 번쯤 추천!


4. 새우튀김

5개씩 4팩으로, 특제소스(라지만 그냥 간장)가 함께 들어있다. 내가 새우튀김 마니아라서 홀린 듯 담았던 제품. 에어 프라이로 먹어 봤는데 일반 마트 상품보다는 훨씬 나았다.


5. 작은 생선 튀김(Whitebait)

Whitebait는 작고 은빛이 도는 백색의 반투명한 치어로서 태어난 지 1년 안에 잡힌 여러 생선의 어린 새끼를 일컫는 통칭이라고 한다. 시식 코너에서 먹어보고는 바로 구입했다. 이곳에서 생선 종류들이 낯설어서 접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세 가족이 편하게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호주&코스트코 조합답게 양이 너무너무 많아서 곧 질려버렸다.


6. 짜장면(풀무원), 배추김치(한성)

사진은 못 남겼지만 인상적이었던 한인 식품들이다. 어려서 먹던 집 짜장면에 가까운 맛이었고, 김치는 가격도 싸고(1.5킬로에 11불) 맛도 좋다! 언젠가 또 간다면 꼭 사 올 제품. 결국 한국인 입맛에는 한국 식품이 맛있다.


7. 삼겹살

이제 우리는 코스트코에 삼겹살이 떨어지면 간다. 삼겹살이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든든해진다. 점점 줄어드는 삼겹살을 보면 불안해지고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땐 코스트코에 가서 삼겹살을 대량으로 사 온다. 이것 때문에 그곳에 간다. 마트에서 파는 삼겹살은 맛이 없어서 못 먹게 되었다.




푸드코트


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코스트코 푸드코트. 그날 광폭한 쇼핑으로 우리 가족은 너무 배가 고파있었다. 허기짐에 점심도 평소보다 많이 시켰다. 핫도그&음료(2불도 안 하는 착한 가격!)는 무조건 시켜야 한다. 거기에 치킨 베이크드 브레드 + 치킨 버거 + 클램 차우더 수프 + 오렌지 주스를 더했다. 이렇게 다해서 20불 정도 했었던 것 같다. 역시나 호주&코스트코 조합답게 양이 어마어마했다. 결국 클램 차우더 수프는 손도 못 대보고 집으로 가져와서 다음날 아침으로 먹었다. 입 짧은 아들도 폭주해서 맛나게 먹었다. 그럼 맛집 인정이다.




주유하기


대부분 멀리서 오기 때문에 기름을 충전하고 싶은 고객의 필요대로 바로 옆에 주유소가 있다. 코스트코 회원 전용이며 가격이 저렴하다. 우리도 밥을 먹었으니 빨강이(우리 차)도 밥을 먹였다. 어차피 넣을 기름 싸게 넣었다고 만족하고 돌아왔다.




반품, 환불, 교환하기


원래 내가 있는 곳에는 늘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생긴다는 슬픈 전설 있는데 그날도 그랬다.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진저비어 병 12개짜리 박스를 카트에서 차로 옮겨 실으려는데 소리가 이상했다. 분명히 깨진 유리조각이 박스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였다. 원래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냥 모른 척 버리고 갈까 잠깐 고민했다. (길 물어보기도 싫어해서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끝까지 헤매는 사람이 나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어서 직접 나서서 교환하러 다녀오겠다고 했다. 박스를 들고 출구로 향하니 직원분이 척보고 딱 아셨다. ‘저쪽으로 가면 교환이나 반품할 수 있어~’ 박스를 들고 고객 센터로 가니 젊은 남자 직원이 반품이냐고 물었다. ‘이거 박스 안에 유리가 몽땅 깨진 것 같아. 소리 들어봐.’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바로 다른 제품으로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교환을 마치고 자랑스럽게 차로 돌아왔다. 하기는 귀찮아 하지만 하면 잘한다. 셀프 칭찬 맞다.




방문 후기


일단 가격과 양이 어마어마해서 당분간 장을 안 볼 줄 알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 보니 코스트코에서 우리가 산 것들이 생활필수품이 아니었다. 사 온 물건은 모두 당장 없어도 상관없는 기호 식품이었다. 바로 다음날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마트를 또 가야 했다. (우유도 계란도 빵도 없고) 


그래서 그냥 여행을 다녀왔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정기적으로 갈 것이면 대량으로 필수품을 사는 게 살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는 거리도 멀고, 많이 못 먹는 세 식구여서 대량으로 파는 코스트코에서 일상 장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가끔씩 가보는 나들이로 여기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일 년에 딱 1번만 가자!



* 아빠로서 아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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