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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28. 2021

아들이 사라진 밤

고통도 결국 지워진다

오늘도 아들을 데리러 그 집으로 찾아간다. 벌써 일주일 째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들은 남의 집에 놀러 갔다 오는 줄 알고 있다. 아침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려오는 적응기간이 곧 끝나간다. 도착하니 벌써 그 집 아저씨와 아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손뼉을 마주치며 아장아장 걸어온다. 아들 뒤에 따라 나오는 그가 그날따라 유독 더 창백해 보인다. 밝은 금발을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다른 한 손에는 무언가 조심스럽게 들고 있다. 내게 다가와 들고 있는 것을 내 머리 쪽으로 향하며 말한다. 날씨가 습해 벌레가 많으니 잠깐만 참으라고. 사람에게 쏘아도 되는지 모를 그것을 한참을 내게 쏟아댄다. 점점 강해지는 살충제 소나기 속에 힘겹게 그의 표정을 살핀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 그는 다름 아닌 나를 벌레 취급하며 내 머리통에 다 쏟아부으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재빨리 아들을 안고 도망쳐 나온다. 차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쏟아진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해맑은 아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헤어지는 연습을 위해 적응기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뒤면 더 이상 데리러 갈 수 없다. 영원히 안녕을 해야 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


헉 소리와 함께 주변이 깜깜해졌다. 나는 누워있었다. 아들도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 뭐가 무언지 깨닫기도 전에 아들을 만졌다. 분명히 말을 잘하는 쑥 커버린 녀석이 맞았다. 오랜만의 악몽임을 확인하고는 긴장이 풀려버렸다. 뜬눈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있었다. 한 손으로는 아들 얼굴을 계속 어루만지며. 이렇게 자세한 설정의 헤어지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아들을 남의 집에 입양시키고 있었다. 슬픔과 고통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판단할 수 없는 기억과 생각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아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온 월요일 아침. 그날 밤의 찜찜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운동을 시작했을 텐데 괜히 소파에 앉아 빈둥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울릴 일이 없는 내 전화기가 지이잉 거렸다. 아들 학교였다. 아들이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셨다. 바로 날아가서 아들을 살폈다. 눈물 글썽이는 아들은 자신의 아픔을 설명했다. 집으로 데리고 온 뒤 파랑이 증상을 살펴서 약을 먹였다. 며칠 전 그 밤이 떠오르면서 아들이 안쓰러워졌다. 하루 종일 마음껏 쉬고 놀게 풀어주었다. 내게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늘어져 있었다. 다행히 살짝 체한 듯했다. 요즘 빠져있는 만화책 만들기에 심취해서 시즌 1부터 5까지 모두 완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놀라운 전개가 계속되었다. 햇살이 따뜻한 낮에 졸고 있는 나를 계속 깨워서 힘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날은 모두 괜찮았다. 멀쩡해진 아들을 저녁이 되어 학교에서 돌아온 파랑에게 인수인계하고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쳤다. 꿈에서의 절실함은 한나절의 붙어있음으로 쉽게 해소되었다. 아직도 그 꿈은 생생하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잊어버리기 전까진 가끔 떠올리며 아들을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만지고 할 것 같다.


아파서 푹 쉬는 아들




아들의 언어 진화는 어디까지?


1.

소풍을 다녀온 아들은 소원대로 나를 그 소풍장소로 데려가고 말았다.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와 파랑의 아침 산책코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들은 신나게 소풍 가서 보고 온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꽤 멀었다. 힘들어진 아들은 내게 안겼다. 안기자 마자 살겠다는 듯이 말했다. '휴! 이제 집에 가면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겠다!'


2.

아들은 인형을 좋아한다. 꽤 많은 인형이 있는데 모두 생일을 정해 두었다. 어느 날 우리에게 아끼는 미어캣 인형(미미)을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아빠! 이제 선물 준비해야 해. 미미 귀 빠진 날이거든.’


3.

나는 실없는 소리와 장난을 쉬지 않고 한다. 파랑이 오랫동안 받아주다가 요즘은 못 들은 채를 많이 한다. 다행히 아들이 태어나서 그 대상이 바뀌었다. 이제 아들도 커서 만만치 않다. 요즘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아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다.


4.

운전하다가 길가에 세워진 차를 보게 되었다. 타이어가 펑크 나서 갈아 끼우고 있었다. 뒷좌석의 아들이 외쳤다. '혹시 5분 먼저 가려던 거 아닐까?’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간다는 공익광고 캠페인을 알려준 게 기억이 나셨나 보다.


나와 다시 간 소풍, 그리고 홍토벤




끔찍한 악몽도 망각을 이기진 못했다. 평생 소중하게 대할 것만 같았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새로 시작한 축구 수업이 아직 많이 낯선 아들이 선생님께 인사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에 바로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새로운 곳에 혼자 있는 어색함에 눈물이 글썽이는 아들이 어떤 마음인 줄 잘 알면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들의 소중함을 알려주려던 그 밤의 자극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남긴다. 오늘은 좀 더 나아질까 해서. 나만 아는 바보가 좀 달라질까 하는 마음에.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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