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이란 이런 걸까?
내가 없어도 될 만큼 아들은 많이 컸다. 이른 아침 독감 예방접종 주사를 씩씩하게 맞은 아들과 등교 시간이 좀 지나서 학교 사무실에 도착했다. 교실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혼자 갈 수 있는지 아들에게 물어봤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아쉬움에 망설였지만 웃으며 아들을 꼭 안아주고 들여보냈다. 자기만 한 가방을 등에 메고 넓디넓은 학교를 야무지게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은 묘했다. 한 번쯤 뒤돌아 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결국 내가 중간에 불러 세워서 인사를 한 번 더 했다. 잠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다시 앞만 보며 걸음을 떼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돌아섰다.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날 아침이 그랬다. 혼자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가도 그 광경이 괜히 짠하고 슬펐다. 작던 아이가 내 손을 벗어나는 기분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들이 그랬다.
마음이 요동쳤던 그날은 그만큼 아들에게 잘하지 못했다. 학교에 늦은 탓에 해야 할 과제를 마무리해야 해서 과일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아들의 그 설명을 이미 들은 뒤에도 깜빡하며 실수를 했다. 집에 돌아와 도시락 정리를 하면서 까맣게 잊은 채 '왜 과일 남겼어?'라고 또 물어봤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러이러해서 그랬다고, 아까 이야기했는데 왜 기억하지 못하냐고 서러워했다. 다급하게 사과했지만 주사로 컨디션이 안 좋은 아들은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자기 전 씻을 때도 눈물을 글썽였다. 접종 맞은 부위의 밴드를 떼는 것을 직접 하겠다고 했다. 힘차게 떼어내고는 내게 와서는 울먹였다. 아빠가 거짓말을 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모기 물리는 거만큼만 아프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아팠다며. 까먹고 있다가 밴드를 떼면서 주사 맞을 때의 순간이 생각났나 보다. 좀 억울하긴 했지만 유독 힘들어했던 그날의 아들을 안아주고 달래서 재웠다.
아들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잘 지낸다. 어제 학교에서 첫 소풍을 다녀왔다. 다 같이 걸어서 갔다 왔다고 했다. 진흙 가득한 자연을 맛보고 왔다. 물에서 사는 맹그로브 나무, 꽃게, 바다 달팽이, 길 건너는 귀여운 오리 가족까지. 얼마나 신났는지 학교 마치고 데리러 가니 지금 바로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보고 온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어 하는 아들의 눈빛이 초롱거렸다.
지난 토요일 겨울 성경학교를 가면서 아들이 우리에게 경고했다. '나 빼고 놀면 안 돼~!' 같이 나서는 나와 파랑의 설렘이 느껴졌었나 보다. 눈치 빠른 녀석. 아들을 하루 종일 맡아주신 목사님, 사모님 덕분에 오랜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거의 2년 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파랑의 배려로 세상에서 가장 큰 팝콘과 콜라를 만났다. 만난 작품은 '블랙 위도우', 훌륭했다. (충분히 다 알아 들었다고 믿습니다) 아침에만 해도 혼자 들어가기 힘들어하던 아들은 데리러 간 우리를 만나고도 한 시간을 더 놀다 왔다.
코로나 백신 1차를 맞고 온 파랑이 하루 종일 아픈 팔로 고생했다. 팔이 아파서 못 움직이겠다고 앓는 소리를 하자 아들이 움직였다. 씨익 웃으며 안 움직인다는 팔을 잡아 들어주었다. 제 딴에는 아픈 엄마를 위로하며 움직이지 않는 팔을 움직여 준 것이다. 자유의지와 능청이 섞여가는 아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크는 아들을 보면 아쉽기도 하고 붙들어 놓고 싶기도 하다. 괜히 예전 사진, 영상에 눈길이 가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지금의 녀석을 봐도 충분히 작고 어린데도 마음이 그러하다. 조금만 더 머물기를 바라면서도 성장의 순간들에 환호하게 된다. 내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과 상관없이 쑥쑥 자라난다. 혼자서도 잘하는 모습에 스스로 행복해하는 아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내 이런 마음을 알면 뭐라고 하려나.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서른 즈음에는 정작 모르고 살았다. 이제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며 그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며 산다.
깜짝 놀랄 말들을 많이 한다. 한 번을 말을 '엄마 아빠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했다. 밥 먹느라 수고했다고 하니 말했다. '나 수고한 거 아니야. 맛있어서 먹은 거야.'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좋은 소식이 있어! 정원에서 콩을 따서 먹었는데 맛있었어. 나 이제 콩 좋아해. 콩 먹고 싶다!' 엄마보다 나랑 차 타고 가는 게 좋다고 했다. '아빠가 내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거든~' (엄마는 다 알면서 안 해준다고...)
먹는 것으로 장난쳤다가 하루 종일 속상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캐러멜 껍질을 벗겨 달라는 부탁에 안 까주고 이런저런 딴소리와 딴짓으로 시간을 끌었다. 당장 먹고 싶은 마음에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잠자리에 누워서 말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려. 나 화 풀어줄 거야? 말 거야?' 깜짝 놀라서 하고 싶은 것 다해주고 잠들었다. 먹는 것으로는 장난치지 말자.
아들은 요즘 말의 절반이 속담, 명언이다. 내가 자기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아빠가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지난번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를 알려줬다. 그 이후 입을 벌려 입안에 있는 가시를 좀 보라고 한다. 그 가시를 없애기 위해서 책을 읽고 싶다며 책장에 있는 책들을 마구 읽는다.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지만 배운 것을 바로바로 즐기는 모습이 예뻐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말이 늘어간다. 내가 늘어가는 순간들이 이랬겠구나 짐작하며 바라본다. 아이를 통해 몰랐던 내 자람을 흐릿하게 엿본다. 너의 성장은 내게도 의미가 많다. 오늘도 자라날 너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