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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l 13. 2021

예상 밖으로의 성장

이런 식의 자람은 예상치 못했다

결국 파랑이 눈물을 보였다


아들과 밖으로 나선 내가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난 방법이 없었다. 자신에게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말아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내 나름의 여유를 가지면서 보냈던 지난 시절은 이제 모두 끝났다. 어느새 커버린 아들의 논리와 요구는 벗어나기 어려웠다. 문제의 발단은 수영장 옆에 놓인 안내, 아니 경고 메시지였다.


' 핸드폰 보지 말고 아이를 보시오.'


아이들이 수영 수업을 받을 때 모두가 약속한 듯 핸드폰에 빠져있는 부모에게 안전과 참여의 의미로 던지는 캠페인이다. 아들은 이제 혼자서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커버린 아들 덕에 그날은 한 눈을 팔지 않았다. 아예 폰도 책도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아들만 바라보고 가끔 물멍을 때렸다. 수업이 끝나고 칭찬을 기대하며 아들의 젖은 온몸을 타올로 감쌌다. 하지만 돌아오는 아들의 냉정함.


'아빠다른    봤잖아!' (아, 그냥 때려치울까. 심각한 현타)


사실이다. 아들이 코스를 마치고 선생님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가끔 먼 산 바라보듯 눈을 허공으로 향했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본 아들이 내게 뭐라고 하는 말이다. 내 사정을 설명하고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줄기 아래 아들을 집어넣은 후에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파랑에게 상황을 전하자 그동안 외롭게 혼자 걱정했던 그녀가 안심의 눈물을 흘렸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는 동안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으니 그럴만했다.


아들은 자라며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 하고 싶은 욕구. 그때그때 우리는 놀란다. 어느 것도 우리 예상 안에 있지 않다.


여유 넘치는 아들



하루는   많은 누나와 함께 놀았던 날이다우리 집에서 지내며 나와 같이 점심을 셋이 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두었는데 중간 광고가 흘러나왔다. 


누나가 말했다. '이런 광고는 어떻게 작용하는 거지? 아이들이 엄마한테 거기 가자고 조르는 건가?' 무슨 어린이 테마파크 광고였던 것 같다. 아들이 깨달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그들이 돈을 버는 방법이야!.' 누나가 이해가 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말이 되네.'


내 앞에서 주고받는 이 친구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하고 살짝 멍해지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의 사고방식과 수준은 짐작하기 어렵다. 부모와 있을 때는 한참 아이 같지만 늘 크고 있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아이가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고 여기며 부모 노릇을 하듯이.


아이들의 세계



추워진 날씨에 두툼한 후디를 하나  장만하려고 마트에 갔다어쩐 일인지 아들이 어벤저스 토르 디자인을 골랐다. 캐릭터 옷을 잘 고르지 않는 아들이 신기했다. 신나게 사 와서 집에서 여러 번 입어보며 패션쇼를 진행했다. 궁금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였는지. 바로 이야기를 안 해주는 아들은 좀 시간이 흐른 뒤 살짝 내비쳤다.


'이번엔 친구들이랑 같이   있겠다!'


작년에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의 캐릭터 복장을 입고 가는 날이 있었다. 그때 아들은 피터 래빗(100년 넘은 고전 소설, 만화) 복장으로 등교했다. 그날 어벤저스 영웅 복장의 친구들이 서로 편 갈라서 하던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땐 내 복장이 안 맞아서 못 놀았는데 이번엔 할 수 있겠다.' 어찌나 흐뭇해하던지.


그동안 내심 그 아쉬움을 꽁꽁 싸매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이상은 전하지 않으니 알 수 없었다. 전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조금씩 많아진다. 이런 게 아이의 성장이라면 조금 당황스럽다.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싶은 내 희망과 점점 멀어진다. 이런 식의 자람은 예상치 못했다.






축구는 브라질이지


생각과 마음이 커지는 만큼 요즘 유독  에너지가 넘친다약 2년 동안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운동을 하나 배우자고 꼬셔왔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아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각종 정보를 종합해서 시험 수업(Trial Lesson)을 신청했다.


본인 입으로 이야기했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 아침부터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설레어했다. 멋지게 운동복으로 차려입고 실내 운동장에 도착했다. 초반의 쭈뼛쭈뼛을 지나 혈기 왕성하게 즐기는 아들의 모습은 멋졌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많이 들떴다. 이름부터 '브라질리안 스킬즈 사커'로 믿음이 갔었는에 명불허전이었다. 숨 가쁜 수업을 마치고 우리에게 돌아온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빠우리 바로 축구하러 가자!'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차고 축구(가라지 사커)를 개시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제도 했다. 며칠은 이어질 것 같다. 브라질 축구에 빠져버린 아들이다.


정지 화면은 역시 폼이 난다



아들의 표현


1. 이상한 사용 

속담과 고사성어, 관용구를 만화책으로 즐겁게 익히고 있다. 호시탐탐 사용할 기회를 노린다. 사탕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사탕을 찾는데 못 찾게 되자 외쳤다. '... 말이 씨가 돼야 하는  이상하네.' 100번도 더 왔던 길이다.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길에서 멈춰 서며 말한다. 아는 길도 물어가야 !’ 음... 뭔가 많이 잘못되어 돌아가는군.



2. 아빠의 꼼수 발견

아들의 머릿속은 바쁘다.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이 내게 꺼내는 말들에 깜짝깜짝한다. 한 번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내게 부끄러워하라는 듯이 말했다. '아빠저번에 나랑 노는 중에 화장실 가서 쉬고    알아.' 헉. 숨이 막혔다. 볼일까지 거짓은 아니었지만 가서 좀 앉아있다 온 것은 맞았다. 이 녀석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이제 농땡이 칠 곳이 없다. 회사보다 더 심하네.



3. 아들의 새로운 소원

며칠 전 밤 아들이 소원을 툭 던졌다. 엄마 아빠 체력이  많아지면 좋겠네 많이 놀게.’ 그날은 정말 쉬지 않고 놀았던 날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했었나 보다. 그 소원은 시간을 역행하는 거라 어려울 거야. 이제 너와 우리의 체력은 반대로 흐르니까. 운동을 거르지 말아야겠다. 놀아달라고 할 때, 놀아줄 수 있을 때 많이 함께 해야겠다.


뭘 해도 되는 파랑과 아들, 그리고 네 잎 클로버



파랑에게 말도  되는 일이 벌어졌다대박, 기적, 은혜. 어떤 말로도 충분치 않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제는 아들의 개학한 첫날이었다. 세 가족이 학교에서 함께 돌아오는 길에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파랑이 순식간에 찾아냈다. 뭘 해도 되는 파랑의 요즘이다. 난 그동안 네 잎 클로버는 다 뻥이라고 믿었었다. 행운과 행복모두 가진 나는 무엇을  부러워해야 할까?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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